[Opinion] ≪김씨표류기≫ 표류를 통해 표류에서 해방되다 [영화]

글 입력 2018.06.20 23:5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jpg
 

실패한 삶을 이기지 못해 한강에 몸을 던졌는데, 눈을 떠보니 무인도다. 발길 닿는 이 없는 밤섬이란 무인도에서 처절하게 살아남는 김 씨의 생존기를 멀리서 바라보는 또 하나의 김 씨. 그녀 역시 무인도다. 너무도 닮은 두 명의 김 씨는 망원경을 통해, 또 흙바닥에 크게 적은 메시지를 통해 소중히 소통한다. 서로가 유일한 둘은 표류를 통해 표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들에게 표류란 무엇일까?


표류 ;

1. 물에 떠서 흘러감.
 ¶ 난파선이 ∼하다.
2. 정처 없이 돌아다님.
 ¶ 고국을 떠나 이국 땅에서 ∼하다.
3. 목적이나 방향을 잃고 헤맴. 또는 일정한 원칙이나 주관이 없이 이리저리 흔들림.

 


표류란 무엇인가?


이 영화는 ‘표류’를 다른 방향에서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영화 제목 속의 ‘표류’를 남자 김 씨의 원시적인 무인도 생존기라고 여기지만, 표류의 사전적 정의를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남자 김 씨가 무인도에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가? 목적이나 방향을 잃고 헤맸는가? 무인도에서 김씨는 그 어느 때보다 투철한 생존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간다. 오히려 자살을 결심하기 이전, 여기저기 빚을 내며 무기력하게 방황했던 모습이 표류에 가까워 보이지 무인도에서의 그의 삶은 안정 그 자체이다.

   
95bbc354e375f57d25c071b73d47697d.jpg
 

같은 맥락에서, 여자 김 씨의 표류에 대해서도 다른 방식으로 접근 가능하다. 여자 김 씨는 바깥을 두려워하며 수년 동안 자신의 방 밖을 나가지 않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이다.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집 안에서 전혀 위험할 데 없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표류와 멀어 보이지만, 사실은 표류 그 자체이다. 자아를 잃은 채 자신을 둔갑하는 다른 여성들의 정보 사이에서 그는 끝없이 표류하고 방황한다.



짜장면과 옥수수


결국, 이 영화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표류를 경험한 두 명의 김 씨가 남자 김 씨의 무인도 생존 과정을 통해 표류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표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목적을 갖는 것이었다. 그들은 평소에 가지지 못했던 내면의 사소한 고민을 통해 표류에서의 해방을 시작한다.

남자 김 씨는 무인도를 떠나기 싫어한다. 구출의 기회가 여럿 있었지만, 애써 본인을 숨기며 무인도에 정착하려고 한다. 목적을 주체적으로 설정하여 스스로 이뤄가는 경험을 무인도에서 처음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삼시 세끼의 수렵 및 채집을 고민해야 했고, 적절한 잠자리를 찾아내야 했으며,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위해 재료를 골똘히 생각해내야 했다. 무인도에서의 생활처럼 그가 온전히 바라서, 그에 대한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적이 있었을까?


김씨표류기_NonDRM_HD.mp4_004789289.jpg
 

짜장면은 그의 목적과 값진 고민을 상징한다. 짜장면을 먹고 싶었던 그는 면을 만들기 위해 농사를 짓고 각종 채소를 재배한다. 그 광경을 망원경으로 지켜본 여자 김 씨가 짜장면을 배달해 주지만, 그는 거절한다. 짜장면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온전히 스스로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자 김 씨의 목적은 어떤 형태로 제시되는가? 옥수수이다. 가공되어 밀폐된 채 감정 없이 쌓여 있는, 마치 그가 살아가는 방식과 닮은 옥수수 통조림을 기계적으로 먹었던 지난날과 상반되게 생옥수수를 직접 키워보기로 한 것이다. 그가 생옥수수라는 목적을 갖게 되면서 표류에서 해방되는 과정은 영화에서 탁월하게 표현되는데, 수년 간의 은둔 생활로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던 엄마에게 생옥수수 씨앗을 부탁하기 위해 김 씨가 직접 방문을 여는 장면이다. 옥수수를 키움으로써, 그 사소한 목적을 스스로 갖게 됨으로써 얼마나 극적인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표류에서의 해방


다운로드.jpg


두 명의 김 씨가 표류에서 해방되는 과정이 순탄히 이루어지나 했더니, 끝에 가서 그들의 세상은 파국을 맞는다. 그들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남자 김 씨는 여자 김 씨에게 'WHO ARE YOU'라 물었고, 여자 김 씨는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한다. 평소처럼 다른 여성을 사칭하여 자신을 알리려 하던 여자 김 씨는 그만둔다. 진정한 자신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를 폭로하며 자신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미니홈피에 올라오고 아픈 과거가 모두 드러나 버리자 그의 세상은 무참히 무너진다. 남자 김 씨는 폭풍우를 맞은 후 폐허가 된 자신의 세상에서 관리원들에게 발각되고, 결국 밤섬에서 쫓겨난다.
   
두 가지의 세상이 무너졌지만 둘은 상반된 삶의 전개를 이어간다. 남자 김 씨는 안정된 삶에서 추방당하여 또다시 표류를 하게 되었고, 여자 김 씨는 타인의 삶으로 얼룩진 허황된 삶이 무너진 끝에 오히려 자신을 찾게 된다. 김 씨는 자살을 하러 가지만 여자는 그런 그를 만나려는 힘찬 목적을 가지고 세상 밖으로 나와 죽을 힘을 다해 뛰기 시작한다. 여자 김 씨에게 남자 김 씨는 목적이다. 남자 김 씨에게 여자 김 씨는 희망이다. 마치 그들의 짜장면과 옥수수처럼 말이다.

 

진정한 고립과 유대


images.jpg
 

그들은 왜, 고립되고 소외된 서로의 유일한 편이 되어줄 수 있었을까? 그들은 편견 없이 서로를 정의했다. 남자 김 씨는 여자 김 씨가 얼굴에 흉터가 있는,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저 자신이 목적을 이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방인이다. 여자 김 씨에게 남자 김 씨는 빚을 견디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자살을 선택한 실직자가 아니라, 외계생명체이다. 서로가 이방인, 외계인이지만 편견 없이 자신을 대한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고 연결된 느낌을 받는 것이다. 또한, 타인과의 얽히고설킨 관계없이 홀로 고립된 그들의 모습은 서로를 더욱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게 한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우주에 홀로 남은 산드라 블록이 미지의 외국인 ‘아닌강’과 소통을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말도 통하지 않고, 서로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지만, 고립 속에서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 그들은 애틋한 중력으로 서로에게 이끌린다. 아무런 편견 없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소통의 가치가 빛나는 순간이다.

   

Opinion


이 영화는 표류에 대한 오해에 도전한다. 우리의 삶이 계획과 규칙을 갖는다고 해서 표류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반대로 이리저리 길을 찾고 방황하며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표류라고 할 수도 없다. 또한, 아무리 많은 사람 사이에 있어도 그 관계가 편견으로 점철되어 있다면 그것은 고립이라고 할 수 있고 또 각각의 고립된 섬에 남겨져 있는 둘만의 관계가 가장 각별한 유대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어딘가에서도 표류와 고립의 역설이 갖는 가치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김 씨'들이 있을 것이다. 표류하고, 고립된 그들에게는 어쩌면 또 다른 의미의 표류와 고립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KakaoTalk_20180531_003537013.jpg
 

[조현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