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엔나의 프라이드 페스티벌 [해외문화]

조용해보이던 비엔나도 역시 유럽이었다
글 입력 2018.06.1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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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예술의 도시 비엔나에서 며칠 전 다채롭고 생기 넘치는 페스티벌이 열렸다. 지난 주 토요일 비엔나 교환학생 생활을 마무리할 시기가 다가와서 비엔나 시내를 다시 한 번 둘러보려 지하철을 탔는데 여기저기서 무지개색을 보았다. 프라이드 페스티벌임을 직감하고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을 불러모으고, 갖고 있는 옷 중 가장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맥주 한 캔을 들고 비엔나 시내로 향했다. 내가 무지개색을 목격한 곳은 비엔나의 제일 중심가인 오페라하우스 근처였는데 그곳으로 가니 행사가 끝난 듯 청소차가 거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절망한 우리는 흔적이라도 찾고자 음악 소리가 나는 곳, 인파가 많은 곳으로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걷다보니 퍼레이드 차량을 마주할 수 있었다. 비엔나 시내는 서울의 4대문처럼 과거의 왕궁이 있던 시내중심부를 링처럼 동그랗게 된 도로가 감싸고 있다. 알고보니 퍼레이드 행렬은 링을 따라서 돌고 있었고 시내 전체가 페스티벌을 위해 교통이 통제되고 있었다. 퍼레이드 중간중간에는 무지개색 깃발을 꽂은 엠뷸런스가 따라가고 있었고, 엠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면 흥겹던 인파가 빠른 속도로 길을 비켜주었다. 한국의 프라이드 페스티벌과 비슷했을 때 비엔나의 프라이드 페스티벌은 엄청난 규모임이 틀림없었다. 오스트리아도 다른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가톨릭국가인데 한국의 프라이드 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는 종교간 대립의 현장은 퍼레이드를 따라 링을 2바퀴 도는 동안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비엔나의 모든 남녀노소가 나온 듯한 인파들이 신나게 페스티벌을 즐기고 었고 곳곳에서 페스티벌을 후원하는 기업들의 깃발과 행사트럭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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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의 대표음료브랜드 <암두들러>가
행사를 후원하는 트럭을 제공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친절하긴 하나 활기찬 사람들은 아니다’가 비엔나 교환학생 생활을 하며 내가 갖고있던 생각이었는데 다들 오늘만을 기다린건지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자신을 표현하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분장을 한 모습을 보니 내가 알던 오스트리아 사람이 맞나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신체를 노출하는 것 이상으로 거의 나체인 사람도 있었는데 자신의 신체를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는 것도 하나의 자기표현으로 느껴졌고 신나는 축제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그들은 머뭇거리는 나에게 다가와 먼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LGBT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하고싶은 개성 넘치는 화장을 한 걸 보면서 비엔나의 프라이드 페스티벌은 기존의 고정관념들과 겨루며 모두가 당당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체와 레즈비언을 그렸던 에곤실레가 주민들의 신고로 인해 경찰에 체포되던 20세기의 비엔나로부터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걸 새삼 느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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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넘치는 분장을 한 사람들


LGBT는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낯선 단어지만 내가 자랄 때는 다양한 LGBT컨텐츠가 등장하던 시기라 나 역시 그들에 대해 선입견 없이 자라왔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관람한 전시회 중에도 ‘LGBT를 금지해야 한다!’라는 팜플렛을 펼쳤더니 LGBT들이 가기 좋은 바(bar)나 커뮤니티 정보가 있어 어리둥절하면서도 유쾌하게 관람했던 기억도 있고 최근에 본 워쇼스키 남매의 미국드라마 ‘센스8’도 커밍아웃을 고민하는 게이 배우와 부모님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이었다. 과거에 비해 LGBT들이 장롱 속에서 세상으로 많이 나왔지만 전자의 컨텐츠들이 함의하는 바와 같이 아직은 LGBT들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차가운 편이다. 이번 퍼레이드에서 프리 허그 팻말을 든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 중 한 명과 포옹을 하면서 그들에게 냉정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그들이 멋있게 느껴졌다.  또한 당당하게 연인과 키스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치열하게 고민했고 고민 끝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그들이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비엔나라는 도시를 시끌벅적하고 즐겁게 만들 수 있는 그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감동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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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양식의 시청과
다채로운 색채의 퍼레이드가 조화를 이룬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점보다는 다른 점에 집중해서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려고 한다. 하지만 하나의 색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무지개빛 색깔로 표현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존중하고 공감해주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규모의 도시축제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올해가 23번째 비엔나 프라이드 페스티벌이었고 한국의 프라이드 페스티벌은 올해가19주년을 맞이한다. 햇수로는 얼마 차이가 나지 않지만 아직 유럽과 비교하기엔 LGBT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인식자체가 다르고 사회적으로 합의할 쟁점도 많아 한국의 프라이드 페스티벌이 유럽, 미국과 같이 모두가 즐기는 축제가 되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축제란 인간 본능을 억압하는 것의 폐기, 그리고 해방을 향한 문화다. 한국의 프라이드 페스티벌이 LGBT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이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져보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축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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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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