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전 편집자의 매력적인 일상을 엿보다 - 책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글 입력 2018.06.1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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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책상 앞에만 있을것만 같았던 사전편집자의 일상은 생각보다 다채로웠으며 다이내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물론 하루종일 책상 앞에만 앉아 있긴 했다. 다만 문장과 문장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를 골몰하고 매끄럽게 다듬어가는 그녀 머릿속의 일들은 피상으로 표현되는 단어 그 이상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그런 단어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제 몸을 불린다. 생각해보면 그리 놀랍지는 않은 일이다.

세상을 이루는 것은 결국 의미이고 의미를 담는 그릇이 단어라면 결국 단어로써 표현되는 세상이란 어쩌면 사전과 닮았다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을 그대로 본뜬 머릿속 풍경에 그녀 특유의 위트 넘치는 상상력이 더해져 독자는 그녀가 들려주는 일상 이야기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을 무엇보다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사실 그녀가 구사하는 강력한 필력에 있다. 아주 작은 일상의 일들을 서술하더라도 중심을 꿰뚫는 듯한 예리한 표현을 사용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계속 집중하게 만든다. 하긴 사전 편집자라는데, 그걸로 말 다한 셈이다. 그녀는 단어를 통해 추억을 되새기고 단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며 단어를 통해 세상을 읽는다.

한 대상이 지닌 뜻을 정밀하게 해석하고자 몇시간이고 매달리는 그녀를 보니 존경에 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쓸때 골몰하며 찾아헤매는 모든 단어가 한번쯤 그녀의 머릿속에서 정의내려진 것이라 생각하니 소름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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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읽고 보고 쓰고 느끼는 일련의 단어는 매우 예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매우 로맨틱하게 다가온다. 사랑, 결혼, 음악, 일상 등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그래서 금방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갈구하게 되는 몽글몽글한 단어들. 그녀의 시선으로 이 단어들을 바라볼 때 나는 내가 삶의 소중한 가치를 얼마나 가벼이 다뤄왔는지 통감하고 말았다.

그녀는 가차없이 꼬집어낸다. 겉으로는 완벽해보이는 매일의 나날 속 작은 빈 틈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빈 틈이란 내 삶에서 버려둔 단어들이다. 삶을 구성하는 낱말들이 가벼워져서는 안된다. 잊고 지내던 혹은 무시하고 싶었던 조그마한 의미들이야말로 건조해진 마음에 감동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조용히 곱씹어본다. 삶, 사랑, 음악, 친구, 세상. 읊조릴수록 가느다란 빗줄기 같은 무언가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사전 편집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소재 자체도 무척 매혹적이지만 일상의 단어가 전하는 소중함을 되새기게 해 더욱 가치 있었던 책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건 우리 모두가 사전 편집자라는 것, 각자 제 나름의 세상을 만들어가며 의미를 차곡차곡 쌓고 있다는 것, 그렇게 삶의 기록을 두터이 해나가고 있다는 것, 그 행위의 가치를 늘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우리는 모두가 삶의 사전 편집자로 살아가고 있다. 재미있게 읽기에도, 천천히 음미하기에도 참 좋은 책이었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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