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글쓰기가 어렵지만 재미있는 이유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글 입력 2018.06.18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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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전에 익숙해진 우리 세대에서, 아직도 사전을 인간이 손수 편집한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 사전을 몇 십년 동안 어문학에 인생을 바친 학자들이 아닌, 꽤나 평범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만든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사실이다.

그들은 굳이 찾아보지도 않을 take와 같은 단어에 한 달을 쓰고, run을 정의하기 위해 아홉 달을 보낸다. 단어의 의미, 발음, 문법, 예문을 올바르게 정리하기 위해 수 십, 수 백 페이지의 자료를 뒤지고 또 뒤진다. 그렇게 만든 사전을 출판하자마자 그들은 쏟아지는 독자 편지에 답을 보내고, 다음 판 사전을 만들기 위해 다시 책상에 앉는다.

그 중 한 사람이 많고 많은 업무의 틈을 비집고 책을 써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대단하다. 글을 많이 쓰고 다룬다고 해서 글쓰기가 절대 쉬운 것은 아니니까, 날마다 그렇게 많은 글자들을 보면 질릴 만도 한데 어떻게 이 사람은 한 권 분량의 글을 써냈을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일반인이 읽기에 아무 문제가 없는, 보통의 에세이와 같은 글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를 하며 내 분야에 관련된 글을 쓸 때면 항상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과 독자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격을 조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프리뷰에서 이야기했던 데리다의 차연에 대한 부분은, 적절한 예시가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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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글을 계속 쓰다보면 늘 같은 단어들을 반복해서 쓰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나는 특히 미술과 관련된 글을 쓸 때면 '다양한'이라는 말을 매 문단마다 넣는 버릇이 있는데,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하기엔 매우 부족한 단어라 지양하고 싶지만 별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대로 넣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때로는 어느 정도 적절한 단어를 썼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기도 한다.

저자는 여기에 딱 적절한 슈프라흐게퓔(Sprachgefühl)이라는 단어를 소개한다. 슈프라흐게퓔은 "쉽게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용법 차이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머릿속 기묘한 윙윙거림"을 뜻하는 말로, 언어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모국어 뿐만 아니라 외국어를 사용할 때도 느껴지곤 하는데, 프랑스어와 영어를 함께 배우고 있는 나에게 참 재미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영어의 'Excuse me'라는 말은 프랑스어의 'Excusez-moi'와 비슷하고, 'Pardon'이라는 단어는 스펠링조차 같다. 그런데 흔히 양해를 구할 때 프랑스어에서는 'Excusez-moi' 대신'Pardon'을 사용하고, 'Excusez-moi'는 사과의 의미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 슈프라흐게퓔 때문에 비슷한 언어들도 제대로 구사하기엔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는 일은 즐겁다. 내가 예술학과에 입학했을 때 'Kunstwissenschaft'(독일어로 예술학을 뜻하는 단어)라는 말을 얼마나 되뇌였는지, 지금은 독일어 번역기를 쓰지 않아도 이 단어만큼은 철자를 정확히 쓸 줄 알게 되었다. 글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지루해보일 수 있지만, 이런 강렬한 인상과 발견의 희열이 가끔씩 찾아올 때면 어떤 다른 일보다 즐겁게 된다. 그렇기에 저자가 이 일을 "끝내주는 일"이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마친 것이 아닐까,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황인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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