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출산 기계가 아닙니다! [사람]

글 입력 2018.06.1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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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논의되었던 낙태 합법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먼저 피임과 낙태의 합법화를 주장하고 아이의 생명만큼이나 여성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린 3명의 인물을 알아본 뒤 pro-choice(낙태 찬성)와 pro-life(낙태 반대)의 대립구도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 할 것이다.



#Jane Roe(Norma McCorvey)


1970년, 이미 3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혼자 힘으로는 4번째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다고 판단한 노마 맥코비는 낙태를 결정한다. 하지만 당시 그녀가 살고 있는 텍사스 주에서는 낙태가 불법이었으며 생명이 위태롭거나 강간에 의한 임신이 아닌 이상은 낙태를 할 수 없었다. 노마 맥코비는 이러한 낙태 금지법은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준비한다. 소송을 제기하고 3년이 지난 1973년, 대법원은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기준으로 낙태 합법화 판결을 내린다.

대법원은 임신의 개월 수에 따라 낙태 가능 여부를 결정했는데 아이를 임신한 후 6개월까지는 아이의 생명보다는 아이를 임신한 여성의 생명과 권리를 더 인정해야 한다며 낙태를 허가했다. 하지만 7개월부터는 아이가 의료기술의 도움을 받아 엄마 없이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독립적인 생명체로 인정해야 하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므로 낙태를 해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이 바로 미국의 역사적인 판결 중 하나로 손꼽히는 Roe v. Wade 사건이다.

내가 놀랐던 것은 노마 맥코비가 4번째 아이를 출산했다는 점이었다. 1970년에 소송을 제기하고 3년이 지난 1973년에야 낙태가 법적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노마 맥코비는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 자신을 위해 제기했던 소송이지만 정작 본인은 이 판결에 적용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의 신변 보호를 위해 Jane Roe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까지 소송을 진행했던 이유는 자신과 같은 또 다른 여성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여성혐오가 만연하던 1970년대 미국에서, 그것도 아이 대 엄마의 생명이라는 대립구도로만 낙태를 생각하던 당시 사회 속에서, 또 다른 여성 피해자의 발생을 막기 위해 목소리를 냈던 노마 맥코비의 용기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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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 맥코비 (사진 좌측)
 


#Betty Friedan


베티 프리던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여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결혼하여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던 여성이었다. 전원주택에 살며 자애로운 어머니로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이상적인 중상류층 미국 여성의 삶을 살던 베티 프리던은 언젠가부터 가슴속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러한 불만을 분석하기 위해 대학 동기들에게 연락을 한 베티 프리던은 자신의 동기들도 모두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불만을 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미국 중산층 가정주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이 문제를 이름이 없는 문제(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라는 이름을 붙이고 모든 여성이 겪는 이 문제를 분석하며 몇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1. 여성은 늘 어머니로서의 자애로운 이미지와 남편과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희생적인 이미지로 규정된다. 현모양처로서의 역할만을 요구받는 것이다.
2. 위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여성은 창녀나 요부와 같은 타락한 여자로 여겨진다. 여성은 극도로 신비화된 여성과 타락한 여성이라는 2가지 유형으로만 존재한다.
3. 때문에 여성은 여성 개개인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여성은 항상 남성을 도와주거나 방해하는 보조적인 위치에 머무르며 남성과 같이 배움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는, 자신만의 주도권을 갖지 못한다. 이는 교수님께서 예시로 들어주신 남성 성장 소설은 있지만 여성 성장 소설이 없는 우리의 사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베티 프리던은 자신의 책인 The Feminine Mystique에서 신비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반박하며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평등을 요구했다. 여성이 가정에만 제한되지 않고 사회에 진출하여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또 이러한 사회 진출을 위해 자신이 언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을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낙태 합법화를 주장했다.
 
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한 가족계획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신이 주신 생명을 어떻게 인간이 막을 수 있겠냐며 피임조차 법적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피임도 낙태도 금지된 상황에서 아이만을 낳고 키우며 살아야 했던 여성들이 가정을 벗어나 사회로 진출하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사회 진출을 위해 무조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고 낙태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모성애를 당연시하며 아이 양육과 가사노동을 여성의 전유물로 여기던 사회 분위기 속(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2018년인 현재에도 유효하다)에서 출산이 여성의 사회 진출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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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garet Sanger


마거릿 생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여성 운동가이다. 그녀는 간호사로 일을 하면서 임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 여성을 많이 보아왔는데 과거에는 신이 주신 생명이라는 이유로 피임을 법적, 제도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다. 남편은 힘들어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도 종교적, 사회적인 이유로 임신을 종용했으며 종교와 사회는 이를 방관했다. 또 가난으로 인해 매춘업에 종사하면서 피임을 하지 못해 임신을 하는 여성들이 많았으며 많은 여성들이 뒷골목에서 불법적으로 낙태를 하다가 세균에 감염되거나 사망했다. 마거릿 생어는 이러한 끔찍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 당사자로서 산아 제한 운동, 피임 운동을 시작한다.

그녀는 <산아제한평론>을 발간하거나 산아제한진료소를 여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산아제한 운동에 나섰고 결국 미국 산아제한연맹이 결성되고 의사가 여성에게 피임기구를 제공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또한 의사들이 무제한으로 피임처방권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여성이 먹을 수 있는 피임약이 개발된다. 마거릿 생어의 투쟁이 결실을 이룬 것이다. 그녀는 산아제한운동의 선구자로서 여성인권의 신장에 한 획을 그었다.
 
과거에 비해 그나마 여권 신장이 이뤄진 21세기인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데 약 100년 전인 당시에는 얼마나 그 정도가 심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이를 낳는 것은 여성의 의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 받은 수많은 여성들의 죽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또 잘못된 사회 인식을 고치기 위해 투쟁했던 마거릿 생어의 노력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여성으로서 우리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더욱 더 연대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어머니가 될 것인가 되지 않을 것인가를 뜻대로 선택하게 되기 전까지는 어떤 여성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마거릿 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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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choice vs pro-life


용어부터 설명하자면 pro-choice는 낙태를 찬성하는 입장, pro-life는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낙태 합법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사람들은 pro-choice와 pro-life로 나뉘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을 부르는 명칭에서부터 이미 사람들이 낙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하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단어만 놓고 보았을 때 choice와 life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가치처럼 보일까? 나는 교수님께서 이 질문을 하셨을 때 순간 멍한 기분이 들었다. choice라는 단어 하나가 여성들이 지금까지 어떤 고통을 겪어왔고 왜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는지를 감춰버리고 life(생명)를 버리고 자신만을 위한 choice(선택)을 하는 이기적인 여성의 이미지만 남기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고 여러 사람들의 사고가 모여 사회분위기가 형성된다. 동등하지 않게 보이는 가치를 내포하는 choice와 life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낙태에 대한 거부감과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할 수 있기에 이미 잘못되었다.

사람들을 pro-choice와 pro-life로만 구분하면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사람들이 낙태를 여성 대 아이의 대립적인 구도로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간에 아이의 생명이냐 엄마의 선택이냐의 논의로만 이어지기 때문에 같이 아이를 만든 남편이나 여성의 출산문제를 함께 고민해야하는 국가의 책임은 부재한다. 아이는 여성이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여성이 혼자 기르는 것이 아니다. 남편은 임신과 출산을 아내와 함께 고민해야 하며 국가는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고, 가난 속에서 출산을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빈곤에 처하지 않도록 도움을 줘야한다.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를 오롯이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남성과 국가의 무책임한 태도는 지탄받아 마땅하며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다.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우리나라에서도 낙태 합법화를 촉구하는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작년 10월 23일 1차 시위를 시작으로 올해 6월 10일에 14차 시위가 이뤄졌으며 이들은 “my body, my choice”라는 구호를 외치며 임신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여성의 연대를 매우 지지하며 우리의 연대가 여성과 아이 모두에게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낙태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주제에 대해 용기 있게 논의하는 자세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오랜 기간 임신과 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방관했던 남성과 국가는 여성들의 요구에 올바른 답변을 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며 불편한 용기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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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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