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라이트≫ 평범한 불행을 살던 소년을 비춘 달빛 조명 [문학]

글 입력 2018.06.0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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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흑인 빈민가에서 불우하게 살아가던 주인공이 수년 동안 떨어져 있던 친구를 우연히 만나는 이야기. 요약하면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는 이 단순한 이야기를 영화관에서 마주했을 때의 울림을 잊을 수 없다. 일상적인 불행에 익숙해진 소년을 비추는 푸른 달빛은 조명이 되어 그를 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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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빈민촌의 열악한 환경과 더불어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는 마약에 중독되어 아들을 돌보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따돌림과 폭력을 당하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성장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 ‘샤이론’의 척박한 환경이나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여 현실감을 살리는 동시에,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특성을 활용하여 인위적인 요소 역시 가감 없이 표출한다.
 
 

추상과 메타포로 뚫어놓은 서사의 구멍


영화의 내러티브는 크게 역동적인 구조를 갖지 않는다. 이 영화의 배경은 서구권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빈민촌이며 한국인이 봐도 큰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배경에서 영화라는 가상이 줄 수 있는 재미와 카타르시스는 느끼기 어렵다. 그 전개 방식 역시 흥미를 집중적으로 끌어내려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아주 많은 상징을 곳곳에 설치해 놓음으로써 이야기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그러한 상징들은 영화에 깔리는 색채나 인물들의 대사 몇 줄에 불과한 매우 추상적인 것들이라 단시간에 관객이 정확히 짚어내기 다소 어렵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 방식은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와 거리감을 유지한 채 이야기를 곱씹게 하는 효과를 낸다. 이야기를 추상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감상의 깊이를 더하고 관객에게 해석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한다.

예를 들어, 정신적 지주가 되는 ‘후안’으로부터 샤이론이 영향을 받는 과정이나, 어머니가 마약에 빠지게 된 계기, 또는 친구 ‘케빈’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 등 인물의 서사에 나름의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아주 간략하게 제시된다. 만약 기승전결의 뚜렷한 구조로 이야기가 제작했다면 재미는 있었겠지만 감상이 비교적 일시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개에 있어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압축하여 관객이 다양한 구조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한다. 평평한 전개 속에서 적재적소에 뚫어 놓은 서사의 구멍은 영화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든다.

 

구멍을 채우는 연극적 요소


시각적 연출을 통해서는 영화의 연극적 요소가 드러난다. 이 영화는 세 부로 나누어 유년기의 샤이론과 청소년기의 샤이론, 그리고 성인이 된 샤이론을 보여준다. 각 부의 제목 및 주제와 상징하는 색채도 모두 다르다. 영화를 세 부로 분절하고 성장 과정 사이에 휴지를 줌으로써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각 부의 제목과 상징색은 그 부의 주제를 시각적·미술적 요소를 통해 효과적으로 예고하며 또 되새기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한 부 안에서도 다양한 색의 상징이 제시되며 인물의 상황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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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각 부의 제목은 각 시기 동안 샤이론이 주변 인물들에 의해 불리는 이름을 제시한다. 유년기를 보여주는 1부의 제목은 ‘Little’인데, 이는 샤이론을 따돌리는 주변 또래들이 키가 작은 그를 놀리듯이 부르는 별명이다. 이때 샤이론은 그렇게 작고, 볼품없고, 가난한 소년으로 규정된다. 검정색은 흑인 빈민으로서의 열악한 상황을 빗대어 표현하는 색으로 제시되는데, 이 때문에 1부에서 샤이론은 유독 하얀색과 많이 대비된다. 하얀색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며 그의 검정색 피부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한 ‘검정색’ 삶을 살아가던 샤이론에게 ‘후안’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나타나고, 그의 영향으로 샤이론은 ‘푸른색’ 삶을 열망하게 된다. “달빛 아래서는 흑인 아이들도 푸르게 보인다.”라는 영화 속 인용문이 의미하는 것처럼 푸른색은 여기서 희망을 상징한다. 마지막 부분에선 검은색 화면에 1부의 상징색인 푸른색 등이 깜빡이며 1부가 끝나고, 희망의 등장을 암시한다.
 
2부의 제목은 ‘Chiron’으로 샤이론의 이름인데, 후안이 죽고 샤이론은 친구 케빈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주도적으로 규정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또래들의 집단 따돌림은 심화되고, 어머니는 마약을 사기 위해 얼마 없는 돈을 뺏고 협박하는 등 샤이론의 불행한 일상은 지속된다. 후안으로 인해 잠시라도 가질 수 있었던 희망은 사라지고 그는 자신을 괴롭혔던 급우에게 복수의 폭력을 가함으로 인해 소년원에 들어간다. 1부의 마무리와 마찬가지로 검은색 화면에 적색 등이 깜빡이며 2부는 끝이 난다. 1부에서 샤이론은 푸른색 신호등이 켜진 듯 희망을 향해 전진했지만, 2부에서의 샤이론은 적색 신호등이 켜진 듯 그 발걸음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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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절망의 연속이 끝난 후 성인 샤이론이 맞이한 현실은, 3부의 제목인 ‘Black’의 의미와 맞닿는다. ‘Black’은 후안과 똑같이 마약상의 길에 들어서 흑인 빈민가 속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샤이론의 상황을 나타냄과 동시에 케빈이 붙여준 별명이기도 하다. 흑인 밖에 나오지 않는 이 영화에서 가장 흔한 이름임과 더불어 가장 특별한 이름이다. 성인이 된 샤이론은 케빈을 만나고, 또다시 특별한 관계를 약속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번에는 등이 켜지지 않고 달빛 아래 푸른 몸을 한 채 위를 올려다보는 유년 시절 샤이론의 모습이 나온다. 소년원을 나와 마약을 매매하며 마치 3부의 상징색인 검정색 같은 삶을 이어가던 샤이론은 케빈을 다시 만나게 되어 특별한 ‘Black’으로 거듭난다.
   
이렇게 분절된 영화의 장면들은 마치 연극을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하면서도, 샤이론의 성장 과정 전체를 제시하지 않고 유년기와 청소년기, 성인기 간에 휴지를 넣어 관객이 그 간격 동안 있었던 일을 추측하게 하면서 성장의 전반적인 흐름을 능동적으로 짐작하게 한다.
 


Opinion


추상적인 서사와 흥미로운 메타포, 그와 대조되는 화려한 시각적 요소들의 조합은 여타 영화들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그것을 얼마나 균형 있게 배치했는지는 영화의 완성도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균형이 특히 인상 깊은 이유는 그 장치들의 조합 자체가 서사의 모양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가정의 보호가 없는 환경에서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소년원에 들어가고, 마약상이 되어 후안의 길을 똑같이 걷고 있던 샤이론은 그저 흑인 빈민의 평범한 불행 속을 전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 조명을 비춘 건 케빈이었고, 희망이었고 달빛이었다. 그로 인해 샤이론은 가장 드라마틱한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이 된다.
 

"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
달빛 아래서는 흑인 아이들도 푸르게 보여


이 영화는 어린 시절의 샤이론이 푸른 몸을 하고 스크린 바깥의 달을 응시하며 끝이 난다. 푸른색 삶을 동경하던 어린 샤이론의 삶을 그린 1부의 끝에 깜빡인 푸른색 등은 마지막 장면에서의 푸른색과 조금 달라 보인다. 푸른 달빛을 쐰 샤이론의 몸은 동경하던 것과는 또 다른, 자신만의 푸른빛을 낸다. 시종 달빛과도 같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이지만 마지막까지 달은 스크린 너머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가 보내는 따뜻한 시선은 결국 빛을 내는 달보다, 달빛이 있다면 누구나 나타낼 수 있는 가지각색의 푸른빛 가능성을 향하고 있다. 소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 성장 영화의 결말은 희망과의 만남인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기를 요구하며 달을 바라볼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세상에서 빛을 받지 않아 바래고 있는 별들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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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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