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 순간의 소중함을 만끽하는 방법 - 2018 봄에 내리는 젠틀레인

글 입력 2018.06.0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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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뿌옇게 차오른 날씨. 하늘은 적당히 흐리고 햇볕은 따가울 정도로 강했다. 영화든 음악이든 무엇을 즐기기에는 오히려 좋은 날씨였다. 갑작스레 찾아온 여름의 뜨거움을 잊어버리고 도피할 곳이 필요했으니까. 녹사평역에 내려 용산아트홀 소극장 가람으로 향하는 길이 참 길었던 것 같다. 내리쬐는 태양볕이 곤욕스러웠다. 그리고 곧 도착한 소극장에서 맞이한 젠틀레인의 연주는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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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피아노, 김호철의 콘트라베이스, 서덕원의 드럼으로 구성된 젠틀레인은 2004년 결성돼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재즈 트리오 그룹이다. 재즈란 어렵고 지루한 음악이라는 오해를 풀어주고자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한국식 재즈를 선보인다고 전해들었는데, 이 뜻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그들이 작곡한 곡을 중심으로 구성돼 아이덴티티 듬뿍 담긴 노래를 맛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밝고 매끄러운 사운드의 곡을 감상할 수 있었던 공연 중 특히 인상깊었던 점은 곡들의 제목이었다. 연주곡이기에 곡의 분위기를 해석하거나 느끼는 방식은 청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젠틀레인의 곡은 그 주제가 확실해 한 편의 이야기를 듣는 듯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제목을 통해 곡의 주제를 분명히 드러낸다. 특히 그 주제가 일상 속 여러 모습, 행동, 감정, 생각 등 주변에서 익숙히 경험한 것들을 담아내고 있었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율임에도 불구하고 풍부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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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를 이끈 Happy Birth Day, Hoya는 그들의 가족, 아이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포근한 가족의 품을 떠올리듯 잔잔하게 이어지는 음색은 왠지 모를 사랑스러움과 감동, 생명에 대한 작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이후 이어진 Lemond, Some, Best Wishes 등의 곡 역시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멜로디라 마치 입맛을 돋우는 에피타이저처럼 내게 스며들었다. 공연의 중반을 지나 Cinema Paradiso, Air On G Strings, Cavatina를 편곡한 곡을 연주했는데, CF나 영화에서 들었던 음악이라 귀에 쏙쏙 들어왔다. 특유의 경쾌함으로 편곡한 곡들은 익숙하게 들렸다가도 톡톡 튀는 새로운 음율을 보여줘 듣는 내내 흥미로웠다.

이후 공연의 마지막으로 접어들면서 젠틀레인의 유려한 테크닉적 면모를 엿볼 수 있었는데, Clap CLap Clap과 Circus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Clap Clap Clap은 곡의 리듬감이나 멜로디가 마치 박수의 그것과 똑 닮아 있었는데, 경쾌하고 신나는 멜로디가 다채롭게 변주되며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게 만들었다. 서덕원 드러머의 초반부 독주가 정말 인상적이었던 Circus는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는 드럼 독주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가, 이후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가 합류하면서 반짝거리는 서커스 풍경을 놀랍도록 재치있게 그려냈다.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정말 매끄러웠다. 곡을 밸런스 좋게 구성한 프로그램 덕분에 각 연주가 더욱 빛을 발했다고도 느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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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마친 후 밖으로 나오는데 트리오 분들의 앨범 판매와 더불어 싸인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수줍은 마음에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찍이 지켜봤다. 꽤 오랜 기간 활동한 팀임에도 팬들을 직접 만나는 게 어색한지, 일렬로 앉은 젠틀레인 멤버들의 미소는 쑥스러워하는 소녀의 웃음을 닮은 듯 했다. 귀여운 아저씨들이다, 생각하며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의 신나는 음악을 되새겼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도 반쯤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좋은 음악에 마음이 풍요로우니 일상이 더욱 눈부시다. 저물어가는 해, 길게 늘어진 그늘,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 모를 풀들이 트리오의 그것처럼 완벽하게 조화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고, 문득 생각했다. 다음에 젠틀레인의 공연을 또 들을 일이 있다면 탁 트인 하늘 아래서 부드러운 공기를 느끼며 즐겨도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더없이 완벽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겠지. 공연을 듣고 다시 일상 속 거리를 거니는 지금 이 순간의 기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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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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