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담 프루스트가 들려주는 Vis Ta Vie!(네 인생을 살아라) [영화]

글 입력 2018.06.0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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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구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의미하는 것 같다. 우리는 기억 속 추억을 떠올리며 안정감을 갖기도 하며 때론 지우고 싶은 기억 때문에 고통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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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 폴은 기억의 한 파편으로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그 파편은 자신의 아버지인 아틸라 마르셀이다. 폴은 아버지와 관련된 악몽을 반복적으로 꾸고 있다. 자신을 사랑스럽게 말을 거는 어머니, 어머니의 부름에도 무관심하게 반응하는 아버지의 뒷모습, 마지못해 뒤를 돌아 자신에게 소리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끝나는 꿈은  매일 폴을 괴롭게 한다. 꿈 속 어린 폴은 이제 막 말문을 트려 하지만 현실의 폴은 말문을 닫아버렸다. 두 살 때 부모님의 죽음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졌기 때문이다.

폴의 일상을 살펴보면 그가 겪은 트라우마는 적절히 치유되지 못한 것 같다. 귀족적 문화에 집착하는 이모들, 반강제로 시작된 피아노 연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에서의 폴은 인간이 아닌 로봇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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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일상에서 프루스트 부인과의 만남은 폴에게 변화를 가져온다. 프루스트 부인은 기억을 수면 아래 숨어있는 물고기에 비유하며 낚시 바늘을 이용해 숨어있는 추억들을 건져내지 않겠냐고 권유한다. 쓴 차와 달콤한 마들렌을 낚시 바늘로 드리우고 미끼로는 음악들이 사용되는데, 모두 폴의 어린 시절과 관련이 있는 음악이다. 신생아 때 사용하던 모빌의 음악을 들으며 폴은 자신이 받았던 가족들의 따스한 사랑을 기억해내고, 아이스크림 오르골을 통해서는 어머니와 해변에서 행복했던 추억을 회상한다.

행복한 추억도 있지만 종종 고통스러운 추억도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것 같은 기억의 한 순간, 부모님이 거대한 피아노에 깔려 죽게 되는 장면과 같이 자신이 잊고 싶어 내면 깊숙이 가둬놨던 기억들까지 프루스트 부인의 비밀정원은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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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떠올리면서 폴에게 몇 가지 변화가 찾아온다. 우선 폴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비밀정원에 방문한 이후로 폴은 종종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 변화다. 폴은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꿈이나 초창기 기억에서는 이런 무의식이 반영된 듯 아버지는 가정에 관심이 없는 듯이 그려지고, 마치 어머니를 폭행하는 것 같은 장면도 등장한다.

하지만 폴은 기억을 찾아가며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끼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그의 감정 변화는 부모님의 사진을 잘라 어머니와 아버지로 분류했던 폴이 잘라진 사진을 다시 하나로 붙이는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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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변화 역시 큰 변화이지만 폴에게 가장 크게 나타난 변화는 폴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폴은 이모들에 의해 만들어진 삶을 살아왔다.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지루한 모임에 이끌려 다닐 뿐이었다. 하지만 폴은 기억을 추적하면서 주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연주회에서 다른 합주자들과 전혀 맞지 않았던 연주를 펼쳤지만 그 연주는 폴이 유일하게 웃으며 연주했던 음악이었다. 피아노로 인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을 알고 피아노의 뚜껑을 자신의 손에 내리쳐 다시는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손을 만들기도 한다. 이모들이 그렇게 경멸하던 중국인 여성과 결혼을 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우크렐레 강사로 활동하는 폴의 모습은 그 어느 때 보다 가장 행복해 보인다. 그의 행복을 말해주듯 마지막 장면에서 폴은 다시 말을 되찾고 자신의 아이를 다정하게 부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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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찾는 과정은 폴에겐 고통스러웠다. 쓴 맛의 차를 먹는 것부터 시작해 자신이 가둬두었던 잊고 싶은 기억들과 대면하는 것은 트라우마를 헤집어 놓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립지만 다신 만날 수 없는 부모님의 모습과 만나는 것 역시 슬프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폴은 자신의 상처와 직면했고, 그 과정을 통해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쓰디쓴 차가 달콤한 마들렌으로 중화되듯 폴도 기억을 찾는 슬픈 과정을 거치자 그 슬픔을 잊게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다는 vis ta vie(네 인생을 살아라)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부모님의 유서라고도 생각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영화 속에 삽입된 음악들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음악이 의무였던 폴은 음악으로 인해 기억을 되찾고, 치유 받으면서 나중에는 진정 원하는 음악을 연주한다. 그 음악으로 누군가는 또 다른 치유를 받을지도 모른다. 때론 말보다 음악이 더 좋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가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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