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몬순_편혜영 [문학]

단정하고 확신할 수 있는 것
글 입력 2018.05.2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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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고 확신할 수 있는 것
- 편혜영의 「몬순」을 중심으로


One swallow doesn't make a summer: 제비 한 마리 왔다고 해서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작은 조짐 하나를 심각하게 확대해서 보지 마라.

우리는 종종 성급한 판단을 내린다. 그 판단에 정확한 근거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대략의 개연과 약간의 의심이 제공된다면 나름 논리적인 이 ‘판단’은 아주 쉽게 진실로 탈바꿈한다.「몬순」속 태오와 유진이 겪고 있는 문제는 이 성급한 판단에서부터 시작했다. 불화의 표면적 이유이자 시작점은 자식의 죽음이다. 소설 어디에도 아기가 죽은 이유가 무엇인지, 어느 시점에서 죽었는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의 책임은 모두 아기를 혼자 둔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남편인 태오마저 아내에 대한 신뢰를 점점 잃어간다. 그 날 dance 바(bar) 주변에서 본 아내, 태오에게 식사를 권하며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 말하는 아내, 아이 때문에 생긴 돈을 찾기 위해 보험 증권을 내미는 아내를 보며 태오의 불신은 점점 확신이 되어간다. 그러나 태오 자신도 이들이 확실한 근거가 되지 않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해하기보다 화를 내거나 분노하는 것이 쉽다. 이미 그는 자신의 확신을 되돌리기가 두렵다.

‘그게 이상했다. 누구도 그날 여기에 오지 않았다는 것. 여기에 왔었던 것은 자신뿐이라는 것. 자신만이 분명치 않은 걸음에 홀려 아이를 두고 홀로 이곳에 왔다는 것’

아내 유진이 근무하는 과학관의 관장은 외부의 시선에서 아내를 바라보고 태오에게 이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관장은 영문학을 전공한 이로, 과학관의 관장임에도 풍향이 바뀌는 이유 따위의 유치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이는 그가 과학의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면모와는 조금 먼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근무하는 과학관에서 재현불가능하고 애매한 과학은 가치가 없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관장은 전시될 수 있는 과학이 과학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인생은 과학 이상이기 때문에 ‘단정하고 확신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라 말한다.

나는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모든 것을 단정하지 말라'라 생각한다. 관장이 그 메세지를 태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오는 관장의 말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의심을 바로잡기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줌파 라히리의 「일시적인 문제」라는 소설이 있다. 편혜영의 「몬순」과 「일시적인 문제」의 설정은 상당히 유사하다. 아이를 잃은 부부의 불화, 의심. 그리고 그들에게 ‘단전’이라는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 그러나 ‘단전’이라는 모티프를 사용하는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인다.「일시적인 문제」의 쇼바와 슈쿠마는 부부로 자식을 잃고 소원해진 부부이다. 소설의 도입에서 「몬순」과 마찬가지로 단전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쇼바와 슈쿠마는 이 단전을 계기로 어둠 속의 대화를 시도한다. 단전이 일어나는 동안 그들은 평소와 달리 양초를 켜고 함께 식사를 하며, 숨겨둔 비밀에 대해 털어놓는 게임을 한다. 그렇지만 이 게임의 결말은 이별이다. 단전 마지막 날 쇼바는 이별을 고하고 슈쿠마는 평생 지켜야겠다고 다짐한 비밀을 털어내 버린다. 더 이상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없다.

모든 일이 해결됨으로써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었다. 「일시적인 문제」에서 ‘단전’이 갈등의 해소를 이끌어 낸 것과 달리「몬순」에서는 대화 자체가 시도되지 않는다. 태오는 단전을 통해 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단전은 일시적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그 시도조차 두려워 태오는 단전된 아파트에 유진을 남겨두고 나온다. 아파트를 바라보며 단전이 끝나길 기다리는 태오는 그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단전’의 의미를 「일시적인 문제」와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소설의 제목인 몬순, 엄청나게 거대한 바람인 이 계절풍은 방향이 바뀌기 전에는 정확한 풍향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저 등압선을 보고 최선을 다해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버리면 그뿐. 세상에 단정하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할까.


[김새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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