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잊고 있던 낮은 목소리, The murmuring [영화]

글 입력 2018.05.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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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선한 바람이 부는 봄밤을 채운 "이화 그린 영상제"가 지난 목요일 막을 내렸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개최된 "이화 그린 영상제"는 대규모 야외 상영회로 이화여대 캠퍼스 곳곳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미디어아트 작업들과 영화들을 상영한다. 이번 영상제는 크게 미디어아트 전시인 EMAP와 국내외 영화들을 초청 상영하는 EFF로 구성되었다. 어둠이 내리고 캠퍼스 곳곳에 자리 잡은 야외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너무 운치 있고 평화로워서 필자는 영상제 기간 내내 캠퍼스 곳곳을 누볐다.

 기상 악화로 영상제는 하루 연장되었고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영화 "화차"로 유명해지신 변영주 감독님의 특별전이 열렸다. 사실, 영상제 전까지는 부끄럽게도 변영주 감독님이 누구신지, 어떤 작품들을 만드셨는지 몰랐다. 우연히 찾아가 본 작품이었지만 뜻깊은 경험이 되어 변영주 감독님과 그녀의 작품들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한국의 여성 감독, 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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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맥스무비 인터뷰

 
 1966년 출생한 변영주 감독은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작품으로 1993년 데뷔하였다. 감독은 이후 한 여성을 만나고 그녀가 일본군 위안부였던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매춘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계기로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다룬 영화를 촬영하기 시작한다. 1995년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은 다룬 그녀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가 제작되었고 이후 <낮은 목소리 2>, 완결편 <숨결>을 제작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다룬 삼부작의 영화를 완성시켰다.

 이후 변영주 감독은 독립영화뿐만 아니라 "화차"와 같은 상업영화로도 큰 성공을 거두며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넘나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잊고 있던 낮은 목소리, The Murm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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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서사가 끌릴 때도 있지만 대게는 조금 역동적인, 혹은 영상미가 아름다운 영화들을 즐겨보는 편이었다. 그래서 사실 변영주 감독님의 특별전도 친구 손에 이끌려 갔다. 상영관에 들어가 초반까지만 해도 좋지 않은 화질, 알아들을 수 없는 할머니들의 대화로 '나가서 다른 작품 구경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그녀들의 삶이 너무도 가슴을 먹먹하게 해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앉아있다 나왔다.

 필자가 보았던 작품은 <낮은 목소리> 삼부작 중 두 번째, <낮은 목소리 2>였다. 작품은 위안부에 동원되었던 할머니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담담하게 위안부 생활을 했던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이후, 그리고 현재 그녀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영상과 내레이션을 통해 보여준다. 이 작품은 특히 1997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강덕경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는 부탁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할머니들의 삶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할머니들의 삶을 너무 애처롭게, 불쌍하게 과장해서 그려내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함께 농사도 짓고,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를 보듬어주며 살아가고 계셨다. 하지만 과장되지 않은 사실적인 표현과 내용에도 그 어떤 슬픈 상업영화를 보았을 때보다도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할머님들께서 모여 도란도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장면이 있었다. 그 누구도 울지 않았고 오히려 화기애애하게 "나는 다시 태어나면 남자가 되어 군인이 되련다. 여자하고 자려고가 아니고 군인이 되어서 꼭 복수를 하고 싶다", "나는 바라는 것 없이 그냥 평범한 여자로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아이 하나 숨풍 낳아 가족 이루고 살아보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지난날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사실은 그 낮은 목소리들을 잊고 살았음에 죄송스러웠다.



잔잔한 강물에 돌 던지기

 <낮은 목소리 2>의 제작을 부탁하셨던 김덕경 할머니는 영화의 마지막, 폐암으로 숨을 거두시기 전 "이 영화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위안부의 피해가 알려지면 좋겠다. 그래서 꼭 사과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자료로 남아 기억되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영화가 제작된 1997년으로부터 약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 무엇이 바뀌었는가. 사과 답지 않은 사과. 할머니들에 대한 외면. 여전히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시위.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사실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든 가지지 않든 해결될 문제라면 해결될 거라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잊고 있으니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적어도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잔잔한 강물과 같았기에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상제에서 본 변영주 감독님의 <낮은 목소리>는 잔잔한 강물을 출렁이게 만드는 돌과 같았다. 잔잔했던 나의 세계를 출렁이게 만들어 그동안 저편 깊숙이 묻어두고 외면했던 문제를 마주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것이 누군가의 삶과 아픔을 사실적으로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할이자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은 잊고 있던, 외면하고 있던 낮은 목소리. 이제는 그 목소리를 가슴에 새기고 조금은 출렁이며 살아보려고 한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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