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들의 따뜻한 이웃, '오베라는 남자' [영화]

글 입력 2018.05.2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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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우리 동네에 한 명 쯤은 있을 법한 그런 사람, 자살을 꿈꾸는 남자.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그가 평생을 사랑했던 아내의 사별과 그가 청춘을 바치며 일했던 직장에서의 정리해고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게 된 남자였다. 그는 그의 집, 차고에서 자살 시도를 하지만 번번이 그의 이웃들이 그를 방해한다. 삶의 이유를 잃은 그에게 이웃들은 어떻게 그에게 삶의 이유를 불어 넣었을 수 있었을까? 과연 그는 평안히 죽을 수 있을까? 삶에 대한 진한 여운과 메세지를 남겨주는 영화, '오베라는 남자'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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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주의


 그의 첫 자살시도는 먼저 그의 집 안이었다. 목을 메고 죽으려던 순간, 이웃집 아이들의 방해로 그는 죽는 데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차고에서 가스로 인한 질식사를 하려던 그 때, 하필이면 죽음의 문턱 앞에서 아내와의 첫 만남 그리고 사랑을 했을 때의 모습을 보게 된다.

 기차에서 처음 보게된 그 날, 무임승차에 들킨 그를 대신해 돈을 대신 내어준 그녀에게 젊은 오베는 그녀에게 멋진 식사를 대접해주고자 레스토랑에 그녀를 데려간다. 하지만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은 얼마 없었고 결국 그는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수프만 먹고 그녀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준다. 그녀가 왜 먹지 않냐고 하자 그는 저녁을 먹고 왔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고 결국 그는 솔직하게 그녀에게 말한다. "돈이 그것 뿐이었거든요. 당신에게 꼭 사주고 싶었어요." 그의 말에 감동을 받은 그녀와 그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고 아이까지 갖게 된다. 하지만 행복은 잠깐이었다.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던 그들은 음주 운전자로 인해 버스가 전복되고, 사랑하는 아내 소냐는 뱃속에 아이를 잃고 걸을 수도 없게 된다. 오베는 그 일을 기점으로 아내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을 원망하고 멍청한 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로 인한 오베의 변화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람들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이 크게 다치고 자신의 아이까지 잃고 만다. 하지만 그는 끝내 다시 그녀와 함께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영화에서는 그 모습을 짧게 보여줬지만 그 이야기가 실제였다면, 그들의 새로운 시작은 생각보다 어려웠을 것이고 그 시간이 짧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는 장애인들에 대한 복지가 많이 늘기는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인 오베와 소냐가 20대였던 그 시절에는 장애인에 대한 복지가 많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정말 무수히 많은 인생의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냐는 그토록 원했던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얻게 되고, 오베 역시 직장을 얻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소냐는 오베에게 있어 인생의 버팀목이고 삶의 제일 큰 이유였다. 하지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운명은 이들을 냉정하게 갈라놓는다.

 소냐가 암 선고를 받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오베는 그로 인해 삶을 사는데 제일 중요한 이유를 잃고 만다. 사실 직장을 잃은 것은 부수적인 이유였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소냐의 부재가 그에게 있어서는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가난하게만 살았던 그를 열정으로 가득차게 인생을 살게 해줬던 희망의 빛이 되어주었던 그녀가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으니 말이다. 그녀는 그에게 그렇게 말한다. "죽지 않으려면 죽을만큼 버텨야 해." 오베가 죽음과 점점 가까워질 때쯤 그녀의 말이 또 한 번 그를 살리게 하고 만다. 결국 또 한 번 그녀가 그를 살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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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오베는 꽤나 정의로운 남자다. 사람들을 모두 멍청이처럼 여기고 무시한다해도 결국 그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불길이 거센 이웃집 속을 들어가 아이와 할아버지를 구출해내고, 기차가 오고 있음에도 그는 직접 기찻길에 뛰어들어가 사람을 구한다. 이웃집 여자가 운전과 베이비시팅을 부탁해도 그는 처음에만 싫다고 하고 결국엔 그녀의 부탁을 다 들어준다. 일명 '츤데레', 처음엔 튕기지만 결국 다 들어주는 남자였다. 항상 일찍 일어나 동네를 순찰하고 사람들을 돕고, 아이들을 사랑해준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이웃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삶의 이유를 얻게 된다.

 하지만 운명은 정말 잔인했다. 그는 얼마 안 있어 본인의 건강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에게 시간의 제약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다시 세상을 살고 싶어졌는데 시간은 그를 허락해주지 않았다. 분명 다시 아내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그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기분은 싱숭생숭해졌는데 자신을 병원까지 데려다 준 이웃집 여자의 출산이 갑자기 임박해진다. 새로운 생명이 그 날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는 그의 이웃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했다. 그 장면이 아마 필자가 택한 가장 슬픈 장면이지 않았을까 싶다. 너무나도 운명의 잔인함을 보여준 것만 같아서 많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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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에서는 이웃들 간의 교류가 많이 사라졌다.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로 인해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굉장히 그런 사회 모습이 안타까웠다.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먼저 이웃들에게 말을 걸 용기는 영화를 봐도 나지 않는다. 필자 또한 경계심이 많은 사람인지라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끝에는 '나는 과연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였다. 과연 내가 죽어서 누가 나의 죽음에 슬퍼하고 서러워할까. 솔직히 말하면 아직 그런 생각을 하기엔 아직 필자는 필자 자체가 어리다고 생각한다. 아마 조금 더 성장하고 나서 이 영화를 한 번 더 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어리기에 더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많이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다 한 명에게라도 인생에 있어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 아닐까 하고 느낀다. 

 요새 바쁜 생활을 지내면서 마음이 많이 헛헛해진 때에 본 영화라 그런지 정말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 그만큼 마음에 위로도 되고 따뜻해지기도 했다. 아마 조금이라도 지치거나 힘들 때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필자처럼 힘이 나지 않을까 한다. 아니, 힘이 났으면 좋겠다. 정말 이 영화는 너무나도 따뜻하다 못해 포근한 영화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혹여 마음의 구멍이 난 것마냥 외롭고 헛헛한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이다. 일부러 끝은 스포일러를 하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은 정말 텍스트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것이 더 많은 감정을 끌어올려줄 것 같아서였다. 지금까지 '오베라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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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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