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글 입력 2018.05.19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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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뜻일까,
고민하지 말고
그냥 실컷 웃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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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샤뮈엘 베케트는 관객들에게 '그냥 실컷 웃으라'고 하는데요, 웃기는 것 같으면서도 슬퍼지고, 슬픈 것 같으면서도 웃음지게 하는 것이 그의 의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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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녀왔습니다.

연극 중간중간, 앞 좌석에 앉은 20대의 밝은 웃음소리가 29년전의 필자의 공감대였고, 시간의 간극을 넘어 다시만난 작품의 감흥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웃음보다는 슬픔이 더 보였다'라 하겠는데요, 부조리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변함이 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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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아트 앤 크래프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아카이브 전시'가 소극장 2층에서 무료로 전시되고 있었는데요, 관람전 둘러보시면 연극과 함께한 시간의 기록들과 만나실수 있습니다.





20세기, 유럽의 정신적 파멸을 부른 "신(神)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묵시론적 선언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처참하게 현실이 되었고, 인간이 소외됨에 따라 인간 개체와 개체 사이의 소통은 길을 잃었습니다. 이성에 의해서든 신앙에 의해서든 수천 년 동안 믿어왔던 수많은 유의미한 가치들들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증발해버렸으며 안타깝게도 새로운 가치들이 다시 움트기에는 인간 존재의 정신이 너무 황폐해 버렸습니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에 가장 민감했던 작가들은 너도 나도 전통문학의 관습적 형식과 내용과 작별을 고했는데요, 연극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으며 소위 부조리극 또는 번역극이 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조리가 없다’라는 뜻의‘부조리’라는 말은 불어 압쉬르디테(absurdit)를 번역한 일본식 조어인데요,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엉뚱함’, ‘당혹스러움’ 정도의 의미가 되며, 부조리극을 조리있게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입니다.

영국의 문학비평가 마틴 에슬린이 지적한대로 "부조리극이란 통합된 원칙을  잃고 분열된 세계 속에서 느끼는 인간 존재의 우주적 상실감을 표현하고자 하는 연극"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실감으로 인해 작가들은 극중 인물로부터 성격을 빼앗아버렸고 사건과 사건 사이의 논리적 인간관계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났으며 교훈이나 계몽 혹은 재미로 관객들의 꾸미나 돋우려는 시대착오적인 시도를 경멸하게 된 것입니다.

1950년대 유럽 부조리문학의 중심지였던 파리에 두 명의 전위적인 작가가 있었는데요, "인간은 길을 잃었다. 즉 그의 모든 행동은 의미 없고 부조리하며 쓸모없게 된다"라고 말한 외젠 이오네스코와 그 말에 더할 나위 없이 부합되는 작품,<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샤무엘 바케트었습니다. 두 작가 모두 유럽 연극계에서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랐고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야말로 부조리극의 신화가 되었습니다.

샤뮈엘 베케트(Smuel Beckett) (1906,04,12~1989,12,22) 가 더욱 궁금해졌는데요, 사뮈엘 베케트는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로, 현대 연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극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사뮈엘 베케트가 쓴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간의 삶을 단순한 기다림으로 정의하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의미 없는 대사와 단편적으로 축소된 인물, 배경, 내러티브 등을 통해 보여 준 것으로, 오늘날 현대 연극의 대명사로 통용됩니다. 이 작품으로 베케트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과 희곡으로 현대인의 빈곤을 변형하여 표현, 승화시켰다."라는 평을 받으며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1906년 아일랜드의 더블린 근처 폭스 로크에서 부유한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난 베케트는 초등학생 때부터 프랑스어에 능통하여 오스카 와일드의 모교이기도 한  포트라 로열 스쿨에 입학하여 학업은 물론 스포츠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라 지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1927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 파리에서 정착해 작품 활동에 전념합니다. 모국어인 영어와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베케트는 1952년 파리의 미니사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프랑스어로 출간했고 이 작품은 1953년 몽파르나스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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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프랑스에서만 330회 이상 롱런했고 이후 세계 50여 개국에서 공연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초연될 때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가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라고 묻자 베케트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테지요" 이 말은  베케트에 대한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전문적인 연출자에게조차 낯선 부조리극이지만 세계의 수많은 관객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조리극의 신화입니다.

다음은 국내 극단 '산울림'에서 공연되었던 연극 포스터 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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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우리나라에서도 1968년 공연되었는데 이는 현대극의 새 지평을 연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극단 '산울림'은 연출가 임영웅(林英雄)을 중심으로 김인태(金仁泰)·김무생(金茂生)·장종선(張鍾善) 등이 창단하였습니다. 1969년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작의 '고도를 기다리며'로 창단공연을 가졌는데 수차례 재공연되면서 국내외에서 정평을 얻었습니다. 이 공연을 통하여 1970년대 한국연극을 현대극 중심의 공연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로 1989년 국내 극단 최초로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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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둘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틀 동안의 사건을 다룬, <고도를 기다리며>의 줄거리는 단 한 개의 단어 '기다림'입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에스트라 공과 블라디미르, 이 두 명의  부랑자가 '고도'라는 하는 한 인물을 기다립니다. 고도가 누구인지 이 둘은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사건은 오직 기다린다는 사실 하나인데요, 작품 곳곳에서 반복되는 이 둘의 다음과 같은 대사가 독자와 관객들은 실소(失笑)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에스트라공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가면 안 되지"
에스트라공   "왜? "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베케트는 이 작품의 무대를 "시골길 나무 한 그루 서 있다"라며 무미건조하게 제시해 놓았는데요, 그 어떤 적극적 선택이나 결단도 없이 오직 '기다림' 만을 사건으로 하는 이 작품의 황량한 길과 이름 모를 마른 나무 한 그루는 실상 '무대의 부재'를 의미하며, 이 무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언어들은 '의미의 부재'를 외치는 듯합니다. 한편 에스트라 공과 블라디미르에게서 어떤 정형성을 찾을 수 없고, 그저 나무 밑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서로 엇나기만 하는 말장난과 광대놀이를 일삼을 뿐입니다. 또한 포조와 러키라는 불가사의한 이름 없는 인물들이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허튼소리와 광대 짓만 늘어날 뿐이고, 이름 없는 소년은 뜬금없이 나타나 오늘이 아니라 내일 고도가 온다며 에스트라 공과 블라디미르의 기다림을 하루 더 연장하는 역할만 할 뿐 그들은 여전히 기다림에 묶여 있습니다. 작품 말미에 "그럼 갈까?" "가자" 하고 마지막 대화를 주고받지만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하는 지문과 함께 <고도를 기다리며>는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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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는 오는 20일까지 며칠 남지않았는데요, 삶을 함께 바라볼 작품으로 추천드립니다.

소박하고 고집 센 자코메티가 느껴졌던 무대위의 나무한그루, 시대를 견뎌온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이어갈 영원의 작품이 되길 기대하며!


[김은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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