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슬라임 열풍, 어른들의 원초적 감각을 깨우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5.16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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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필자의 관심사는 ‘슬라임’에 집중되어 있다. 슬라임이란 물풀과 붕사를 섞어 만든 액체와 고체 사이의 점토 형태 장난감으로, 국내외를 불문하고 SNS와 유튜브 등의 온라인 매체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며 유행하고 있는 놀이 문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액체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아동이 주요 소비자의 일원을 이루며, 나이를 불문하고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시대에 걸맞게 그들의 슬라임 관련 콘텐츠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양산되고 향유된다.
    
알록달록 예쁜 모양의 슬라임을 구경하거나 슬라임을 가지고 노는 영상을 보고, 또는 직접 슬라임을 만들어서 가지고 노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슬라임 문화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조작하고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일반적인 장난감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특이한 것은, 이것이 성인들 사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동을 주 소비자로 목표한 장난감이라고 해도 성인 역시 향유할 수 있으며 특히 이것은 해외에서도 널리 유행하고 있는 문화이니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슬라임 콘텐츠는 해외에서도 괄목할 만큼 발달되어 있는 수준이다. 콘텐츠의 조회 수는 만 단위를 넘어서 인기 있는 콘텐츠의 경우 십만 단위가 넘어가고, 해외 콘텐츠 제작자들은 우리나라의 콘텐츠를 수시로 주시하고 참고한다. 가수 아이유가 개인 SNS에 슬라임을 가지고 노는 영상을 올린 후 유행이 본격화되었지만, 일반적인 유행과 달리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다양하고 체계화된 문화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슬라임 문화는 왜, 어떻게, 특히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성인들 사이에서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사감만족(四感滿足)


슬라임 문화의 향유자들은 슬라임을 ‘사감만족’의 장난감이라고 부른다. 미각을 제외한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의 네 감각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감각은 예부터 그것을 통제하는 이성에 밀려 등한시된 경향이 있다. 특히 그것은 어린아이의 것으로 한정되며 어른이 되면 감각의 추구는 더욱 지양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이루는 가장 기본 단위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욕구 충족의 경로이다. 감각이 지나치게 충족되지 못한다면 이는 곧 심리적 결핍으로 이어지며 더 나아가서는 삶의 질이 저하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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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은 너무나도 쉽게 현대인의 감각적 욕구를 해소해준다. 슬라임이 갖는 매력은 예쁘고, 향기가 나고, 느낌이 좋고, 가지고 놀면서 나는 소리가 좋다는 것뿐이다. 이 이상의 조건은 필요 없다. 특히 청각적인 만족은 불면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에 편안한 소리를 들려주며 인기를 끌었던 *ASMR이 유행한 맥락과 상통한다. 한 사회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그 사회에 결핍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감각의 터부시는 만족의 결핍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그를 충족시켜줄 문화에 대한 어른들의 욕구를 자극하였다. (*AS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감각 쾌락반응)

문화는 다양해질 대로 다양해졌고 향유 경로 역시 풍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 감각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문화가 풍부해질수록 역설적으로 문화의 기준이 각박해지는 사회에서 슬라임은 문화의 기준을 폭넓게 허용한다. 무언가를 만지는 행위를 통해 심신의 휴식을 취하고 색색의 물풀이 섞이는 모습에서 시각적 쾌감을 느끼며 재료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음악적 안정을 느낀다. 집이든 학교 및 회사이든 슬라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놀이터가 되고 쉼터가 된다. 누가 이를 문화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향유자가 된다


슬라임은 문화의 범위와 함께 향유자의 범위도 폭넓게 확장시킨다. 감각만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곧 이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슬라임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지식적 수준은 없다. 슬라임을 직접 구매해서 체험해 보고 평가하는 콘텐츠 제작자들이 견지하는 기준은 저 ‘사감’이 전부이다(이 역시 모두 충족할 필요는 없다).
   
좋은 재료를 사용할수록 양질의 슬라임을 만들 수 있겠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문방구에서 파는 물풀, 약국에서 파는 붕사(렌즈 세척액이 대체재가 되기도 한다), 물감이나 비즈 등 꾸밀 거리만 있다면 누구나 슬라임을 제작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본인의 마음에 달려있다. 감각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으며 그 정도나 수준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슬라임 문화 안에서는 누구나 ‘나름의’ 문화와 콘텐츠를 창출할 수 있다. 슬라임은 향유자가 즐기는 것, 향유자가 감각으로 느끼는 것, 향유자가 쾌감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모든 것을 문화로써 인정한다.


  
온라인 네트워크


앞에서 언급했듯이 슬라임 문화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주요무대는 SNS와 유튜브이며 마켓 역시 온라인에 개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슬라임 문화의 특성은 인터넷의 순기능과 연관 지어져 문화 발달의 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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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인터넷의 익명성은 평등한 문화 향유의 환경을 이룩하였다. 유튜브에서 ‘슬라임’을 검색하면 첫 번째 페이지를 장식하는 주요 콘텐츠의 제작자들은 주로 초등학생이다. 그들은 평소엔 ‘초딩’이라고 불리며 사회에서 괄시받고 문화를 향유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얼굴이나 신상을 노출할 필요가 없는 온라인 특유 익명성을 활용하여 어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슬라임 문화를 향유한다. 아동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문화가 그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실은 채 네트워크를 타고 널리 퍼져 어른들의 흥미를 자극한 것이다. 슬라임 문화에서 어른과 아이의 경계는 없다. ‘Kid(아이)’와 ‘Adult(성인)’의 합성어로 성인 대상 장난감을 이르는 ‘키덜트’라는 개념이 더 이상 의미 없게 느껴질 정도이다.
   
어린아이의 콘텐츠를 예로 들었지만, 슬라임 문화 하에서 익명성은 누구에게나 보장된다. 슬라임을 가지고 노는 손 이외에는 자신의 신상을 노출할 필요가 없다.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하는 주체에 대한 편견을 배제한 순간 문화의 가능성은 상상 이상으로 다채로워짐을 보여주는 일례이다.

이 평등성은 SNS 위주로 조직되는 슬라임 커뮤니티의 특성으로부터도 보장된다. ‘#슬라임’을 검색하면 줄지어 정렬되는 콘텐츠들은 국내외 다양한 슬라임 문화의 흐름을 한눈에 보기 쉽게 제시한다. 물론 검색 결과에는 조회 수 등의 수치로 만들어진 위계가 존재하긴 하지만, 영향력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의 간극은 그다지 크지 않다. 게시물 등록순으로 정렬된 검색 결과를 보면 팔로워 수나 조회 수와 상관없이 눈길을 사로잡는 콘텐츠들이 즐비하다.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면 향유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필터링 없이 검색 결과로 쉽게 노출되는 제품 리뷰는 수많은 소비자의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문화 향유의 평등성이 갖춰진 상태에서 제작자들은 이름값 콘텐츠 그 자체로만 정면승부를 해야 하고, 문화의 질을 높이는 데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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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더의 이름과 정보가 생략된 채 정렬되는 검색 결과
 


Opinion


감각을 자극하는 장난감들은 무수히 많았으나 이렇게 성인의 취향까지 폭넓게 포섭한 경우는 흔치 않다. 그 원인은 장난감이 갖는 특성에도 있겠으나 현재의 어른이 갖는 특성에서도 도출될 수 있다. 그들은 본연의 감각을 억제당하고, 문화의 수준을 재단하는 전문적인 평가 기준에 얽매이고, 영향력의 위계가 발생하는 인터넷에서 익명으로도 가리지 못하는 박탈감을 느낀다. 슬라임 문화는 그 모든 속박을 타파하며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허문다. 향유가 자유로워질수록 문화 풍토의 질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의 것을 탐하는 것이 아니다. 감각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슬라임은 감각을 넘어 문화를 누릴 자격까지 박탈당한 어른들이 찾은 해답이 아닐까 싶다. 어른과 아이, 그리고 이 외 다양한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해 그들이 향유해야 할 문화의 범위를 제멋대로 규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문화는 더욱 많은 사람을 품고 성장할 수 있다. 다양해졌지만 왠지 갈수록 다양해지지 않는 것 같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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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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