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리의 꿈, 말의 편자 [기타]

텅 빈 레이스장을 바라보며
글 입력 2018.05.1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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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는 순진한 얼굴로 호감을 사지만, 필사적으로 물장구를 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나도 오리 떼 중 한 마리다. 다른 오리들처럼 물장구를 친다. 가끔 하늘로 날아가는 다른 오리들을 바라본다. 발장구 말고 날갯짓하는 그들을 멀거니 바라본다. 나는 못하는데, 저들은 잘도 한다. 열심히 노력했겠지, 피나게 노력했겠지. 근데 나는 이것조차 힘겹다. 알량한 자존심은 눈부신 날갯짓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안일한 위안과 제 능력에 대한 자위로 발장구만 치고 있다. 발장구마저도 치지 않으면 호수에 빠져 죽으니까, 나름의 필사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육지에서 안주하기엔 삵이 무섭고. 오리, 나. 순진한 얼굴을 하면서 발장구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순진한 얼굴을 해야 한다. 그래야 오리떼 한구석이라도 차지할 수 있다.

'작가하면 되겠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은 내가 운 좋게 탄 상 몇 개로, 날 쉽게 작가로 만들어줬다. 나는 정말 재능이 있는 줄 알고, 내가 하고 싶은 줄 알고 책을 읽으며 작가를 꿈꿨다. 거짓된 꿈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도 않은 채로 대학에만 매달렸다. 그마저도, 어른들이 만들어준 꿈마저도 없는 친구들은 목적도 꿈도 없는 채, 주변 어른들의 대학가야 지, 공부해야지라는 채찍질을 맞아가면서 공부해나갔다.

'작가는 나중에 언제든지 도전해도 되니까, 다른 직업과 병행해도 되니 놓지 말렴.'

내가 꿈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마다, 어른들은 안일한 생각으로 내게 당근을 골라 건넸다. 그전에 먹던 맛 좋은 유기농 당근 (그나마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했던)을 빼앗고 내게는 맛도 없는,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당근을 건넸다.

'선생님 하면서도 할 수 있고, 비슷한 계열이니 국문과를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큰) 학교를 가기 위한 학교에서 십몇 년 공부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 공부하라고 하고, 공부해야 했던 학교에서 고 3이 되자, 선생님들은 과보단 학교를 먼저 더 정해줬다. 그전에는 애들을 성적으로 급을 매기다가 대학 발표가 나면서 대학으로 급을 매겼다. 무엇보다 아이들 대학을 보내면 얻을 수 있는 특별 보너스를 노렸다. 대학을 안 가겠다는 아이들을 설설 달래고 어르면서. 선생님들의 특별 보너스는 아이들의 대학 등록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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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이제 슬슬 과를 정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우리는 과를 위한 꿈을 찾아야 했다. 명확한 꿈이 있었던 극소수를 제외하고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어른들이 어렸을 적 버렸던 꿈들을 찾아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쓰레기를 뒤적거렸지만 그렇게 해서 이미 한참 전에 버린 꿈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뭐라도 건져온 애들은 그나마 다행이고, 그마저도 없던 애들은 꿈이 없냐는 은근한 시선을 받으며 추천받은 소위 취업 잘 되는 과, 아니면 보편적인 과들을 골랐다. 사실 뭐라도 건져온 애들도 경멸 받은 아이들과 다를 것 없는 과를 골랐지만 나름의 그럴듯한 이유를 대서 그런지, 그런 시선에서 면제받았다. 십수 년간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공부하다 온 애들이 반년 안되는 시간 동안 꿈을 못 찾아오면 모자란 아이로 낙인찍혔다.

'너는 그래도 꿈이 있잖아.'

이렇게 위안 아닌 위안을 받고 있을 땐, 품에 쥐고 있는, 살점이 다 발라진 닭의 갈비뼈를 버리고 싶었다. 위로 따위를 해준, 아이 얼굴에 던지고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너무나 아이 표정이 지독해 그럴 수 없었다.

'너 OO대 갈 것 같아.'

라고 응원해주던 제일 친했던 친구는, 뒤에서 걔 OO 대 못 갈 것 같은데? 하며 그제서야 진심을 내뱉었다. 참느라 안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까지 제일 친했던 친구인데, 언제부턴가 걔는 날 견제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초록불까지 확인하면서 내 건강을 염려해줬고 저는 꼭 10분 더 공부했다. 지금에서야, 그 나이 때는 다들 대학이 중요하고 사회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애를 이해하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관계 회복을 위해 연락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당했던 지독한 것들은 아직도 남았다. 시간은 그 애에 대한 감정은 다 없애줬지만 그 자리는 뻥 뚫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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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어떻게 레이스를 벗어날 수 있을까? 누군가 박아 넣은 편자로는 흰 선 사이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패배감과 허무함, 익숙함. 서점 자기 계발서 코너에서 만 원으로 용기를 배우는 법을 살 순 있었지만 정작 배울 순 없었다. 만들어준 레이스는 안주하긴 편했으므로 계속 달렸다.

대학을 입학하고 성인이 되고 레이스 선들은 희미해져갔다. 미성년이라는 타이틀을 앗아가고 성인이라는 프레임으로 책임, 의무 따위와 자유, 권리를 줬다. 안락함을 앗아간 때문인 걸까 당황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달려왔던 레이스 선들을 계속해서 달려가면 안락함과 비슷한 무언가라도 얻을 수 있을까 달려보지만, 자꾸 이상한 곳으로 튀게 되었다. 더 이상 응원해주는 사람, 관중이 없는 레이스장은 레이스라고 부를 수 없었다.

선을 지우면서 편자도 제거해줬다. 여린 속살로 내걸은 첫 발걸음은 무척이나 생경했고 아팠다. 나는 편자와 같이 닭뼈도 보내줬다. 발이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걸을만했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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