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평범한 기적, 손없는 색시

글 입력 2018.05.1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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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평범한 기적, 손없는 색시


어릴 때 인형극을 본 적있다. 아주 어렸을 때 였는데, 아마 초등학교 1학년 쯤이었던 것 같다. 큰 극장은 아니었고 정말 작은 무대에서 열댓명의 친구들과 함께 보았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단편적으로 남아 있어서, 인형극의 스케일은 열댓명 작은 소극장 정도였다. 사실 직접 연극을 보기 전까지 인형극 컨셉을 내세운 <손없는 색시>는 대체 필자가 아는 서울 남산센터에서 공연된다기에 그 방식이 궁금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인형극의 방식으로는 넓은 공연장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술하겠지만, 극단은 분명 다양한 형태로도 인형극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양한 감상의 결과로, 인형극을 감상하고 돌아온 지금은, 남산예술센터의 실험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처의 감각>으로 충격을 준 남산예술센터의 이미지가, 이번을 통해 더욱 확실해진 느낌이다. <처의 감각>이 인간 모두의 꿈이었다면, <손없는 색시>는 나의 꿈같이 느껴진다. 달콤한 꿈에서 막 깨어난 지금, '나'는 어떻게 이 감상을 이야기 해야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필자가 감상한 <손없는 색시>는 정말 평범한 이야기였다. 평범한 동화였고, 인형술사의 거대한 손이 만들어낸 작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평범하다는 것은, 결코, 흔하고 쓸모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연에 대한 감상으로 글을 남기는 지금, 이런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음 꼭 말하고 싶다. 글자 하나하나에 머뭇거림이 서려서 글자가 흰 공간에 채워지는 오랜시간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못한 연극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연극이 가지는 가장 특별한 점은 인간 모두가 가지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특성'을 관객 개개인들의 일화를 건들인다는 점인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인 색시와 붉은 점도 그렇다. 그들은 정신적인 상처와 불완전한 탄생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별일 없이 늙고 제 멋대로 컸고, 세상은 고요했다. 이야기의 끝이 이럴 수 있는 것은, 결국 이렇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인간 개개인들이 모두 겪어서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삶은 거대한 우주고, 그 우주를 모두 품은 세상이 바로 지금이다. 그래서 평범하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다른 한편으로 상처를 견뎌내는 일이다. 우리는 자주 상처의 크기를 비교하고 그 영향력을 마음대로 단정지어 버린다. 하지만 사람은 종이에 살이 살짝 갈려도 피가난다. 굳은살이 생기면 상처가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린왕자의 장미가 세운 장미의 작은 가시처럼 굳은살은 그 자신을 완전히 보호하지 못한다. 불안과 공포로 가득찬 삶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을 보호하기에 급급하다. 자신의 마음과 상처로부터도 그렇다. 그래서 필자는 색시가 죽음을 선택한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죽기를 바랬다. 언제 한번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의 유서를 많이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죽음이라는 결론을 위해 달려가는 그 사람 중 정말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그냥, 더 나은 삶을 바랬을 뿐이다. 자살은 늘 차악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인간의 존재는 그렇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형태의 상처를 견뎌내야하고, 상처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것과 같다. 애당초 상처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기대와 삶이 위협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상처를 받는 것도 삶의 일부다. 그것이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극복도 할 수있는 것이다. 그것은 평범한 기적이다.

<손없는 색시>에서는 그 복합적인 의미를 손으로서 표현했다. 손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손이 없는 인간은 아무것도 만질 수 없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손은 인간의 유능성과 생명의 상징이다. 사실 손이야말로, 우리의 역사를 가장 생생히 대변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이 손으로 타자를 치고 그림을 그렸다. 이 시간에도 나와 같이 누군가는 자신의 손으로 눈물을 닦고,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를 만지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삶의 중심에 손이 있기에, 손은 그 인간의 개성을 뚜렷히 보여주고 있다. 연극은 인형극이라는 특성에 맞춰 다양한 손을 관객들에게 보여줬다. 인형극은 다양한 오브제를 배우들의 손으로 구현된다. 짧은 지면에서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인형극이라는 특성을 재해석한 모습도 그 안에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손의 상징적인 연출이 돋보이는데, 연극의 손은 가면 갈수록 거대한 오브제로 변한다. 밭 주인과 노인, 땅까지, 손은 주인의 특성을 대변한다. 손은 다양한 형태로 색시와 붉은점을 대면한다. 밭의 주인은 조금 강압적인 모습으로, 노인의 손은 따뜻하게 감싸주는 모습으로, 땅은 거대한 역사를 녹여낸 모습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손없는 색시는 감히 그런 것들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뱃속에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선택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과는 반대로, 아이가 태어나버린다. 손은 붉은점은 어린아이의 생기를 잃은 존재처럼 보이지만, 재기발랄한 성격으로 색시의 손이 되어준다. 필자가 봤던 가장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는 붉은 점이 색시한테서 젖을 먹는 두 장면이다. 그는 색시의 하얀 젖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오줌누기에서 밭의 주인을 이기고 나무에 꽃을 피운다. 그 모든 것은 색시로부터 젖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이 특히 감동스러운 이유는, 붉은 점을 늙게 만들고, 손이 없어 죽음까지 결심한 색시가, 붉은점이라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그를 살아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녀의 손은 마지막 순간 붉은점의 헌옷을 벗기고 젊은 육체라는 새옷을 입혀주었다. 손없는 그녀는 손없는 연약한 존재이면서 죽음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가장 힘을 가진 존재였다. 그녀의 얇은 가지같은 손에서 하얀 꽃이 피어난 이유는 이처럼 그녀 안에 존재하는 거대한 생명력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손없는 색시>는 영웅서사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녀는 시련을 맞서고, 사람들을 돕고, 땅과 같은 거대한 존재에서 인정을 받는다. 그녀는 우물에서 마지막 시련을 통과하고 진정한 영웅으로 재탄생한다. 마지막 시련은 그 어떤 것보다 괴롭다. 하지만 색시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는 자신의 상처와 정면으로 맞선다. 손 없는 그녀는 온몸으로 붉은점을 구한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손이 없음을 비관해 자살까지 선택한 색시였는데, 우물을 통해 손이 없음을 자각하고 손을 마주한 순간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필자는 마지막 시련이 우물에서 나타났다는 점을 집중해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기 위해 깨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우물은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비춘다. 그대로를 비추기에 괴롭다.

색시는 붉은점과 여행을 하는 동안 성장했다. 그녀는 이제 손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똥도 마음대로 못닦고, 눈물이 흘러도 참아야 해서 손이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자주 괴롭히겠지만, 그녀는 이제 손없는 색시로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에너지를 가진 색시이기에, 붉은 점이 새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우물은 어떤 점에서 그녀의 자궁과 매우 비슷한 느낌을 준다. 색시가 끈을 입에 물고 온 힘을 다해 아이를 구해내는 장면은, 다른 한편으로 출산을 떠오르게 한다. 붉은 점의 늙은 몸이 그녀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태어난 결과라면, 두번째는 그녀의 적극적은 선택이 만든 결과다. 새로운 생명을 출산한다는 것은 분명히 가장 감동적인 일이다. 손이 없는 그녀가 손없이도 만들어낸 새로운 생명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는 또다른 삶의 시작이 되었다. 그 삶을 붉은점과 함꼐 이어갈 것이다. 그 순간 이후로 색시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 평범한 영웅이 된다. 힘들겠지만, 손이 있는 남들만큼이나. 평범하지만 평범한만큼 행복한 새로운 삶의 시작인 것이다.

위트가 넘치는 대사와 아름다운 연출, 메시지로 가슴이 얼얼한 동화였다. 필자는 아름다운 작품은 심장에 박혀 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경험이라기보다 흔적이고, 새로운 것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이 도드라진 것이다. 그리고 필자한테는 그것이야말로 정말 '좋은 작품'이다. 사실 필자는 책을 잘 사지 않는데, 뭔가 홀린 듯이 희곡집을 사뒀다. 여운이 가시지 않는 작품을 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동안 멍하게 바라봤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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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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