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체홉이 고민했던 삶의 문제 - 공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체홉이 고민했던 삶의 문제
글 입력 2018.05.12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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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이 고민했던 삶의 문제"


공포
- 제39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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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내용에 앞서


"대작이다, 이건 정말 대작이야!" 공연을 마치고 나오면서 남자 친구와 함께 계속해서 이야기한 말이다. 공연이 모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진한 여운과 긴장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제39회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인 극단 그린피그의 <공포>. 인터미션 없이 135분이라는 러닝타임으로 진행되었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아니, 아마도 지루할 것이고 지루하다고 느끼겠지만 '차마 지루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연극이라기보다 어쩌면 소설에 가깝고, 한편으로는 인간의 속성에 대한 탐구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남자 친구도 100% 만족하는 연극이었다. 그가 만족해서 더욱 기분이 좋았는지 모르겠으나, 확실히 이번 공연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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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을 통해 삶을 대하는 방식을 돌아보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인 '안톤 체홉'은 인간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작가다. 인간의 어두운 면, 밝은 면 혹은 숨겨진 면을 포착하여 글을 쓴다. 체홉은 작품을 통해 늘 '인간의 삶과 행동의 문제'를 지적해왔는데, 이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며 아직도 지금의 우리에게 새로운 시험의 순간을 제공하고 있다.

1890년 체홉은 사할린 섬으로 새로운 창작의 전기를 마련하러 떠난다. 그 여행을 바탕으로 <사할린 섬>을 발표하고 짙은 파도소리를 곁들인 <공포>를 펴낸다. 이 연극은 소설 속 화자인 '나'를 '안톤 체홉'으로 설정하여 새롭게 희곡으로 구성하였다. 즉, '체홉식'으로 풀어낸 연극이다. 그래서 1장부터 7장까지 체홉은 한 번도 퇴장하지 않는다.

산다는 것 자체에 공포를 느끼며 아름다운 아내 마저 마음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농장주 드미트리 페르토비치 실린, 남편의 친구 체홉을 사랑하지만 표현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실린의 아내 마리야 세르게예브나, 자신의 죄를 드러내지 못한 채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는 신부 조시마, 누군가를 동정해 자신의 삶까지 버려야 했던 하인 까쟈,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인 까쟈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하인 가브릴라, '신은 자신을 만끽하고 있을 뿐'이라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선에 대한 의지뿐인 것을 아는 신부 요제프.

인간의 속성과 본질이 각각의 캐릭터를 통해 나누어서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담담히 지켜보고 듣는 체홉의 입장이 되어 되돌아보게 된다. '작가도 삶의 어느 부분에서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해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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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을 풀어내는 듯한 디테일한 대사


희곡에 버금가는 풍부한 대사가 이번 공연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장마다 등장하는 시편94편, 잠언, 이사야 등의 글귀와 배우들의 대사 때문에 아마 열심히 눈으로 좇고 귀를 쫑긋 세우며 들어야만 한다. 다음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았던 대사이다.


"(중략) 나는 공상 속에서 암울하기 그지없는 수천 개의 장면을 만들어냈고 이것들이 나를 고통스러운 광란으로, 한마디로 말해 지옥으로 이끈 적도 있어요. 하지만 단언컨대 그것이 현실보다 더 무섭지는 않았어요. 유령이 무서운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현실도 무섭습니다. 친구, 나는 삶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두려워해요."

"정확히 뭐가 무서운 겁니까?" 내가(극 중 안톤 체홉이) 물었다.

"모든 것이 무서워요. 나는 천성이 심오한 인간이 못 되는지라 저승 세계니 인류의 운명이니 하는 문제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요. 뜬구름 잡는 일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다는 얘깁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진부함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내 행동들 중에서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가려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하게 만들어요. 생활 환경과 교육이 나를 견고한 거짓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놓았다는 걸 나는 압니다. 내 일생은 자신과 타인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한 나날의 궁리 속에서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나는 죽는 순간까지 이런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습니다. 오늘 나는 뭔가를 하지만 내일이면 벌써 내가 왜 그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됍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가 나는 겁을 먹고 이리로 왔지요. 그래서 농장 경영에 손을 댔지만 역시 겁이 납니다. 내 생각에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매일 실수를 저지르고 옳지 못한 짓을 하며 서로 비방하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겁니다. 사는 데 방해만 되는 불필요하고 시시한 짓거리들에 우리는 자신의 힘을 소진합니다. 이게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친구, 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두렵습니다. 나는 농부들 보기가 두려워요. 무슨 대단하고 고상한 목적이 있기에 저들은 괴로워하는지, 저들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만약에 인생의 목적이 쾌락에 있다면 저들은 불필요한 여분의 인간들입니다. 만약에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가난과 절대적인 무지 속에 있는 거라면 이런 가혹한 심판이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저 인간을 한번 보세요!"


그의 두려움이 마치 나의 두려움이 되는 것 마냥 드미트리 페르토비치 실린의 두려움에 함께 이입하게 되고 동조하게 된다. 그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두려워하였으며 그 두려움을 그동안 어느 누구에도 이야기하지 못하다가 '나의 질실한 친구'라고 부르는 체홉에게 서로 허물없이 말을 털어놓음으로써 그를 압박하는 비밀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함께 느끼는지를 함께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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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밑바닥인 자로부터 깨닫게 되는 선(善)



체홉 : "(절규하듯) 도대체 인간에게
선이란 무엇입니까?"

(발걸음을 멈추는 요제프.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요제프 : "선이란 마음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40명의 순교자'라는 꽤나 이상한 별명으로 통하는 가브릴라 세베로프는 술과 방탕에 찌든 사내이다. 한때 신부인 아버지와 귀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특권층의 자제였지만, 지금 그의 모습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그에게서 마지막 술을 나무 아래에 숨겨두었으며,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필사의 의지라며 울부짖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 체홉.

사할린 섬에도 다녀오며 자신이 끊임 없이 고뇌하고 사색한 인간의 속성과 삶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고잘 저런 사내의 입에서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일까. 이 일로 파생된 이후의 일(체홉과 마리의 관계)을 다시끔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이란 참 예측하기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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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간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마리야 세르게예브나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체홉이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거나 그에게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면 체홉은 즐겁게 듣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그녀가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고 있으며 그 남편은 나의 친구이고, 그녀 또한 나를 남편의 친구로 여긴다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야 세르게예브나는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실린에게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정숙한 아내가 되겠어요."라고 하였지만 사실 이미 그녀의 마음은 체홉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었을까 의심해보게 된다.


저는 편히 자고 싶지 않은걸요...
만약 편히 자게 된다면
나는 오늘 밤을 저주할 겁니다.


매력적인 체홉의 로맨틱한 대사다.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실린의 아내, 마리야 세르게예브나와 불륜 관계인 체홉은 '인간적으로 가장 성숙한 인간이자, 문학적으로 가장 성숙한 위치에 있던 작가이자, 인간을 가장 잘 이해했던 작가이다. 그런데 그러한 체홉이 흔들렸다면, 다른 인간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의 행동은, 아니 인간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경계에 놓여있다.

이 극에서 실린과 체홉이 느끼는 공포는 19세기 말 ~ 근대라는 문명의 전환기가 깨어 나오는 고통일 것이다. 그 알을 깨는 아픔과 고통은 21세기 초, 지금 우리에게도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 이 장면에서 원작에서는 '모자'이었지만, 극 중 '겨울 털신'으로 등장한 중요한 소품. 저 털신이 없다면 이 소설은 좀 심심한 소설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털신의 존재 그 자체로는 아무 힘도 없지만, 그것이 그냥 거기에 놓여있다는 것 만으로도 어떤 긴장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 마지막 부분이 너무나도 긴장감 있고,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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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소리와 상자 속 물건은 무엇이었을까?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실린은 극중 이따금씩 이명소리를 들으며 괴로워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연출이 너무나도 신선했다. 관객들 마저도 멈칫하게 만드는 이명소리는 마치 고뇌하는 존재에 대한 무시무시한 울부짖음 혹은 비웃음 같이 들렸다. 하지만 이 이명소리의 정확한 의미를 공연이 끝난 뒤인 지금도 잘 모르겠다. 더불어 드미트리가 집으로 들고 온 상자 속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많은 요소가 함축되어 있는 연극인만큼 여러 의문과 궁금증이 남아있다.


[장혜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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