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너의 상처를 보듬어 내 마음을 치유한다 - 손 없는 색시

글 입력 2018.05.0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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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낫게 하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상처낸 자국이 아닌 이상, 어딘가 찢기고 멍든 흔적은 모두 외부의 환경 혹은 타인에 의한 것이다. 내가 원해서 낸 상처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원할 때 나을 수도 없다. 쓰라린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오로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그 긴 과정을 홀로 인내하고 참는 것 역시 너무 가혹한 일. 다소 가볍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사실 빠른 회복법이 존재한다. 모두 다 알고 있는 당연한 얘기다. 슬픔은 나눌 수록 작아지고, 아픔도 나눌 수록 작아진다. 해결할 수  없이 고름을 안고 있는 상처가 있다면 단지 주저앉아 울고 있기보다, 어쩌면 다른 이가 지닌 짓이겨진 흉을 함께 들여다 보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그리고는 내 상처도 같이 꺼내 보이며 가만히 서로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멍 투성이의 일그러진 얼굴을 묵묵히 바라보며. 공감이라는 참 흔한 말에는 이런 잔잔한 바다 같은 힘이 담겨져 있다.

남산예술센터에서 진행중인 인형극 <손 없는 색시>는 바로 이런 공감의 힘에 대해 되새기게 만든 연극이었다. 색시가 잃어버린 손을 찾기 위해 아들과 여행을 떠나는 과정 속에서, 상처난 마음을 치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통에 남편을 잃게 된 색시는 크나큰 슬픔에 잠겨 두 손으로 끊임없이 제 가슴을 어루만진다. 슬픔을 어서 거둬가라는 양 계속. 그러던 중 아픈 가슴만을 쓰다듬는 데 지친 색시의 양 손이 덜컥 떨어져 그녀로부터 도망가게 되고, 색시는 손을 잃은 고통 속에서 목을 매달으려 한다. 그러나 그 순간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녀의 슬픔을 먹고 자랐기 때문인지 갓 태어난 아이임에도 얼굴은 노인의 것을 하고 있다. 그녀의 손에 있던 것과 같은 붉은 점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 아이의 이름은 붉은 점이 되었다.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손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처음 만난 사람은 살구나무 밭 주인. 밭 주인과 아이가 오줌 멀리 누기를 겨루는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아이가 지닌 의미가 드러난다. 아이의 소변을 맞은 땅은 생기를 띄며 시들었던 살구나무를 다시 싱그럽게 만든다. 아이는 생명을 살리고 기운을 불어넣는다. 그저 홀로 슬픔에 휘청일 뿐이던 색시에게 아이란 남편에 대한 슬픈 기억보다 기쁜 기억을 더 떠올리게 하고, 미래를 위해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존재였다. 삶을 함께 나누고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존재.

그 다음으로 만난 묘지 할멈. 할멈은 전쟁으로 인해 아들을 잃고 매일 묘지로 나가 아들의 유골을 찾아 헤매이고 있었다. 색시는 그런 할멈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할멈의 아들 역할을 해준다.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색시와 할멈은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잠이 든다. 할멈은 늙고 쭈굴쭈굴한 큰 손을 살포시 들어 색시와 아이를 따스하게 안아준다. 서로의 눈에 같은 슬픔이 배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들은 아주 조금씩 서로의 상처를 덜어 대신 들어주었다.

그 이후 땅을 만나게 되는데, 땅은 전쟁으로 인해 잔뜩 피폐해진 얼굴을 하고 가슴에 박힌 총알을 꺼내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장소에서 남편이 죽었음을 상기하던 색시는 이내 괴로움을 이겨내고 능동적으로 땅의 상처를 치료해주기 시작한다. 전쟁으로 인해 잔뜩 박힌 대포, 총 등 여러 모난 잔해를 치우고 나서 땅은 조금쯤 편안한 얼굴을 한다. 가장 깊숙히 박힌 총알도 꺼내게 되는데, 아이가 지니고 있던 피리를 삼킨 땅이 불쑥 총알을 뱉어낸다. 남편의 흔적이 깃든 피리를 통해 땅은 온전히 나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 이르러, 우물에 도착한 색시는 손을 찾아 헤매이다가 그만 아이가 물에 빠지고 만 것을 발견한다. 이 때 등장한 손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색시의 팔목에 다시 붙으려 하지만 왠일인지 손은 붙지 않는다. 색시의 상처가 이미 다 아물었던 것. 결국 손이 날아가 아이를 구해주지만, 손은 사라지고 그 대신 붉은 점의 모습이 다시 어려진다. 색시는 말한다. 이제 손이 필요없어졌다고. 그녀에게는 삶을 함께할 붉은 점이 있고, 혹여 눈물이 나더라도 닦지 않고 그저 흘려보내면 된다고 말한다. 그녀의 마음은 여행을 통해 단단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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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깊은 스토리라인을 독특한 비유와 상징으로 풀어낸 점이 인상적인 이 연극은 이야기 뿐 아니라 연출 면에서도 매우 완성도 높다. 극에 등장하는 인형을 다채롭게 표현했는데, 인형의 크기를 각기 다른 스케일로 연출하거나, 상황에 따라 손수건으로 절벽을 표현하고 손그림자로 묘지를 표현하는 등 센스 있는 표현이 극을 풍성하게 했다. 또한 인간의 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점이 독특한데, 여기 등장하는 손은 각 인물들이 지닌 내면의 욕구와 때로는 인물 그 자체를 대변하기도 하며 극을 이끈다. 묘지 할멈의 크고 마른 손, 큼직하게 펼쳐진 땅의 생동감 넘치는 손 등 각 인물에 맞게 손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생생한 질감과 독특한 입체감을 살린 여러 무대 소품은 극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무대 위 등장하는 인형은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 인물이 지닌 감정과 느낌 그 모든 것을 한 표정에 집약해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 모든 극 요소가 어우러져 다이내믹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인물들의 이야기, 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이 든다. 스토리, 연기, 구성, 연출 그 모든 것이 완벽한 인형극 <손 없는 색시>는 관람객 모두에게 생기 넘치는 모험과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인형극이지만 이 무대가 품은 내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작은 여행이 끝나갈 즈음엔 나조차 모르던 내 안의 상처에 볼록 새 살이 돋아나 있는 것을 느낀다. 또한 신기하게도, 한껏 따듯해진 가슴으로 누군가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싶은, 삶을 나누고 싶은 기분이 든다. 어른이든 아이든 나이에 상관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손 없는 색시>. 모든 이에게 이 인형극을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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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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