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원을 말해봐 [기타]

글 입력 2018.05.03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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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所願)
「명사」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람. 또는 그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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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는 소원과 관련된 수만 가지 이야기가 있다. 대표적으로 아라비아 문학의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야기인 <알라딘과 마법의 램프>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알라딘과 마법의 램프>에서는 알라딘이 램프를 문지르면 그 속에서 요정인 지니가 나와 램프를 문지른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 소원과 관련된 이야기는 비교적 최근에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일본 만화인 <드래곤 볼>이다. <드래곤 볼>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소원을 이뤄준다는 용을 만나기 위하여 용을 만나기 위한 재료인 일곱 개의 드래곤 볼을 모으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는 언제부터 소원을 빌게 되었을까? 소원은 어떤 일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말한다. 우리는 크게 ‘복권에 당첨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해 ‘내일 늦잠 잤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다양한 일을 꿈꾼다. 소원은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부터 인간의 힘으로 닿을 수 없는 것에까지 그 범위가 방대하다. 하지만 그 바람 자체에서 무언가를 원하고 갈망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를 비춰 보았을 때, 인간은 사고를 하는 순간부터 소원을 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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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 소원을 빈 것은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지낼 때였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가끔 부모님과 함께 함양의 지리산 부근에 사시던 외할머니 댁을 찾아가고는 했는데, 그곳은 도시와 달리 매우 공기가 맑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해가 지면 어김 없이 나는 외할머니와 엄마의 손을 잡고 밭 근처에 가서 돗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시골 하늘은 도시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저 위로 가득했다.

 그러던 중 엄마는 내게 떨어지는 별을 가리키며 소원을 빌라고 했다. 나는 처음엔 왜 소원을 빌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엄마의 말에 급하게 소원을 생각해 내 빌었던 기억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살면서 소원을 빈다. 간절히 바라는 게 있다면 간절한 만큼 소원을 열심히 빌 것이고,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었다면 그 소원조차 잊을 것이다. 소원은 무수히 많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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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는 소원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가 있다. 케이크 초에 불을 끄기 전 소원을 빌고, 돌을 쌓아 탑을 만들며 소원을 빌기도 하며 산 정상에 있는 바위에 동전을 붙여 소원을 빌기도 한다. 또 분수에 동전을 던져 작은 바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로마의 트레비 분수 같은 유명한 곳엔 정말 많은 양의 동전이 모인다고 한다.

 나는 소원을 비는 것 자체가 자신을 치유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 소원을 들어주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소원을 통해 원하는 것을 갈망하게 되고 자신의 내면에서 꺼낼 수 있다.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또한 중요하지 않다. 물론 이루어진다면 행복을 느끼고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소원을 비는 행위가 앞으로 나아감을 의미하기 때문에 소원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판단 또한 중요하지 않다. 그저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소원을 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바라온 소원들은 그저 혼자 태어났다가 소멸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생산해낸다.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의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조상들은 기우제를 지냈고, 큰 나무 앞에 물 한 그릇을 떠놓고 소원을 빌었으며 소원을 담아 풍등을 날려 보냈다. 이렇듯 사람들의 소원은 다양한 문화를 태어나게 했다. 혼자만의 기도로,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케이크 촛불을 불기 전의 소원으로, 지역의 축제로 자랐으며 혹은 문학으로, 그림으로 자라기도 했다. 그것이 작든 크든 가볍든 무겁든 생활 속에서 다양한 문화로서 소원은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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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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