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편의 시와 같은 이야기, 인형극 '손 없는 색시'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연극]

글 입력 2018.05.0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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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없는색시_포스터_ver.2.jpg
 

<손 없는 색시>
-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작/경민선  연출/조현산

2018.04.26 ~ 05.07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손 없는 색시 연습 사진 (10).jpg
▲ 연습사진 (1)


떨어져 나간 색시의 손을 좇는 여정이
상처와 불행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이 되길.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슬픔 때문에 손으로
항상 자신의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는 색시.

어느 날, 색시의 손은 더 이상
색시의 아픈 가슴을 만지기 싫다며
스스로 떨어져 나와 떠나 버린다.
  
역시 색시의 슬픔 때문에
늙은 채로 태어난 아들, 붉은점.
색시는 노인네 아들 붉은점의 수의를 직접 만들어주기 위해
손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데...



*


  재밌고 유쾌하게 보고 온 연극 <손 없는 색시>. 기대한 만큼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점도 있었고 내심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다. 남산예술센터 시즌프로그램답게 기발하고 독특하고 실험적인 요소가 많았다. 항상 유익하게 보고 오는 것 같다.

  이번 연극은 인형극이 기반이 되는 극이라고 해서 흥미가 갔다. 인형극이라니, 꼭 어린이가 된 것 같은 기분. 어른이 돼서 보는 인형극은 어떨까 괜히 설레기도 했고, 어렸을 적 인형극을 보면서 느꼈던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기도 했다. 사람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나 손으로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인형'이 주는 느낌 자체가 색다르니 말이다. <손 없는 색시>는 그런 점에서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흥미로운 무대를 꾸몄다. 나무기둥과 천장에 엮인 도르래들, 무대를 꾸미는 간단하지만 상징적인 소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사다리가 집이 되었다, 다리가 되었다 했고, 긴 천이 바다가 되었다, 절벽이 되었다 했다. 이러한 소품의 효과적인 사용들이 자칫 난잡스러울 수 있는 인형극의 분위기를 깔끔하게 잘 잡아준 것 같다. 인형만 나오는 게 아니라 인형과 사람이 함께 이야기 속에 등장했는데, 인형과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과 연기하는 사람 간의 흐름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스토리를 전달했다는 게 이 극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다. 인형을 조종하는 자는 인형의 목소리와 배우로서의 목소리를 넘나든다. 그게 굉장히 유쾌했던 것 같다. 조종하는 자를 관객들에게 다 드러내며 연극을 진행시킨 것도 인형이 전달할 수 없는 감정의 선을 조금 더 효과적이게 전달한 기분. 인형의 목소리를 내었다가, 그 인형의 마음을 설명하는 배우의 목소리를 내었다가 한 것이 유머포인트로 작용해 자칫 무거울 수 있었던 설화의 이야기를 현대적이게 잘 풀어갔다. 다만, 이 극의 대상이 누구인지 조금 더 명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전에는 '어른들을 위한 인형극'인 줄 알았다. 그랬기에 더욱 궁금했던 거기도 하고. 그리고 다 보고나서 충분히 어른들을 위한 인형극이라는 타이틀을 달아도 괜찮을 거라 동의했다. 왜냐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과 어른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점이 분명히 있고, 극은 후자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러나 아이들이 굉장히 많았다. 마치 아이들 인형극처럼. 극 중에 부모님에게 질문하는 아이들, 시끌벅적한 잡담들, 그런 것들이 섞여 극의 집중을 깼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극이었다는 점에서 장점이나, 양날의 검처럼, 그랬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어른 혹은 아이를 대상으로 택했다면) 것처럼 보이는데도 무난을 택한 것 같아 아쉬웠다. 어느 쪽이든지 좀 더 파격적이어도 재밌지 않았을까!

  손 없는 색시는 설화를 배경으로 한 극이다. 남편을 잃고 그 슬픔에 자꾸만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던 아내의 손이 어느 날 도망간 이야기. 단순한데 묵직하고 플롯이 간단한데 그 상징이 대단하다. 설화이기에 필연적으로 묻어나오는 판타지를 인형극으로 잘 담아내었다. 엄마 뱃속에서 슬픔에 못이겨 나온 아이가 마치 노인의 행색을 했다는 것이나, 손이 사라져버린 아내의 모습이 개구지고 또 확실하게 등장해 이해를 도왔다. 없어진 손을 찾는 과정에서 커다란 손 모양의 땅에서 허우적거리고, 절벽이 등장했을 땐 손바닥 만한 인형으로 그 절벽을 건너는 흉내를 내던 극 중 연출들에서 아주 다채롭고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이 보였다. 그래서 매 장면을 들뜬 마음으로 보았다. 또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 무엇이 부풀고, 무엇이 올라가고, 도르래를 통해 무엇이 전달되고, 얼마나 크고 작은 가면들이 나올까! 하며. 전체적으로 연출이 무척 재밌었고 그래서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대사는 전달하려는 작의에 비해 그 무게가 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보는 내내 들었다. 유머를 위해 넣었다지만 자칫 선을 넘어간 대사들. 가장 갸우뚱 했던 건 아들 캐릭터였다. 외모가 노인과 같이 태어난 아들인데 그런 아들과 그의 엄마인 아내를 마치 남편이나 불륜 등으로 엮는 듯한 대사들을 들을 때마다 불편했다. 모자관계라는 걸 아는 관객들로써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외적인 모습이 그렇다해도 이를 아내와의 관계로 확인시켜야 했을까? 손을 찾겠다며 떠나려는 아내에게 바지를 입히고 남장을 시켜준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중간에 만난 사내들이 아내에게 무례하게 건넸던 대사들도 같다. 왜 엄마여서, 여성이어서 그 길이 위험해 남장을 해야했던 것일까? 왜 아내는 그걸 고마워하고. 이는 페미니즘적인 시선이라기에도 부끄러운, 너무나 기본적인 성역할에 대한 고민이었을 텐데 이루어지지 못한 듯한 아쉬움.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관객의 일부라면 그들이 받아들일 시선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일었다. 만약 필자가 그 맥락을 잘못 짚은 거라면 작의를 위해서라도 다른 방식을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 극이 참신했고, 그 시도가 반가웠음은 확실하다. 인형극이라는 하나의 분야가 더 심도있어지고, 그 장점을 살려 더욱 퍼졌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분명 이만이 전달할 수 있는 방법들이 존재하니까. 이로서 더 다채로운 색의 무대가 펼쳐졌으면 좋겠다. 빈 무대 위에서 펼쳐질 수 있는 세계는 무한하다. 어떤 걸 사용하든! 그 살아 숨쉬는 세계가 좋아 무대를 찾는 이들에게 <손 없는 색시>와 같은 무대는 환영받지 않을 수 없다.


*


손 없는 색시 연습 사진 (9).jpg
▲ 연습사진 (2)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손 없는 색시>


[김지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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