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의무감과 내면의 감정 그 사이에서 - [도서]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그리기에서 시작된 그의 고통, 그리고 치유까지
글 입력 2018.05.03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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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가난하고 헐벗은 채로 간다> - 고야
 

“이미지는 사상이며,
단어들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다”


 고야는 규칙을 잊어야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원리 원칙이 중요하고, 대대로 이어져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고방식과는 다르다. 그는 똑같은 것을 공부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예술을 배우는 젊은이들에게 큰 장애물이라고 했다. 진정한 예술가를 높이 평가하며 존경하되, 예술가의 방법을 학생에게 강요하거나 강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재능을 자유롭게 펼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인 영향도 있었다. 개인의 선택에 대한 사회적인 질서가 느슨해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칙을 없앤다고 그것이 그림의 최종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단지 그리는 ‘방식’과 ‘과정’에 관련되어있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규칙없음>이며 <개성추구>이지 그것이 그림의 최종적 목표는 아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 규칙과는 동떨어진 선과 색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태양과 그림자 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규칙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희생과 편견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에서 나흘을 산다면, 
자기 
취미에 따라 사는 것이 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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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블랑카 백작>- 고야
 

 이 책을 읽고 고야의 이 한 마디가 인상 깊었다. 고야는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사교계 화가가 되었고 그가 만나고 접하는 사람들은 계몽된 엘리트에 속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계몽주의 사상에 호희적인 정치적, 문화적 인물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가 고야를 변화시킨다. 사파테르에게 쓴 편지에서 그것이 드러난다. 자신은 이 편지에서 끊임없는 화가에 대한 의무와 갈등을 겪으며 고군분투한다.
 
 자신의 취미에 따라 살아야한다는 그는 편지에선 그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소명이 그를 붙잡는다. 그 자체는 계몽주의에 속하지만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려하진 않았다. 그는 환경적으로는 계몽주의와 그의 영향을 꾸준히 받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림에 드러내기까지에는 많은 충격을 입어야만 했다. "이 자유주의적인 열혈분자는 설명 불가능한 비일관성으로 자기 나라의 모든 왕을 열성적으로 섬겼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이해할 수 없고 비난 받아야 마땅한 것인가?”

 전쟁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잔인하게 만든다. 예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평탄하고 조용한 사회에서 어떤 그림이 탄생할 수 있겠는가? 19세기 초, 고야의 시각에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이 변화는 인간의 사회적이고 공적인 행동과 관련된 것이다. 정치적 사건들이 생겨나며 내부에서도 계몽주의와 반계몽주의의 충돌이 일어난다.

 또한 스페인 저항세력, 최초의 조직적 저항군인 게릴라와 나폴레옹의 군대가 맞닥뜨린다. 게릴라전은 1808년부터 1813년 까지 계속된다. 약 5년간 계속되었던 이 전쟁은 잔혹함은 이미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들의 인권조차 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가는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 책의 다음 구절을 읽기 전 예술가라면 당연히 이러한 현실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야는 1808년 12월 마드리드로 돌아와서 다른 가장들과 마찬가지로 애정과 충성을 맹세해야했다. 예술가는 자신의 생존에 대한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자신의 사상과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 정치인과 달리 예술가는 자신의 성향과 판단을 포기할 수 없다 해도 선의 힘만큼 이나 악의 힘도 이해하고 표현해야한다. 예술은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런 대담한 용기에는 ‘전제’가 필요한 것이었다.


전쟁의 참화들, 평화의 참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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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어머니> -고야


 이 그림을 보면, 데자뷰 현상이 떠오른다. 이 그림을 어디선가 봤던 것 같다. 지구상의 수많은 전쟁,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잔혹한 장면들. 죽어가는 한 여자를 안고 가는 세 명의 남자, 그리고 그들을 울면서 따라가는 한 아이. 고야의 전쟁의 참화들은 완전한 사실을 나타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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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고야


 하지만 폭력은 어느 방향에서 잔인하고 가혹한 행위이며 부조리한 것이다. 그는 “이것은 차마 볼 수가 없다”라고 말하지만, 고야는 우리에게 이를 직시하라고 얘기한다. 고야의 그림은 잔혹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냉정함까지 가지고 있다. 냉정함이란 어쩌면 죽음에 대해 무뎌질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책에서는 이라크감옥에서 찍힌 악명 높은 사진을 예시로 든다. 잡아먹히기 직전의 맨 몸의 사람들을 통해 잔인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그 사람들 뒤로 미국 군인 남녀들의 입가의 미소를 통해 인간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극한의 감정을 나타낸다. 미소 속의 냉소적 행동은 사람들의 죽음이 그저 당연하고 웃기는 일로 묘사된다. 고야의 그림 <여기서도 마찬가지다>에서 이 냉정함이 나타난다. 잔혹함은 교수형에 처한 사람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의 프랑스 군인의 침착한 태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죽음이 웃음이 되는 사회는 어떻게 까지 망가져야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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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5월 3일> -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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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5월 2일> - 고야


 평화의 참화들이라는 챕터에서 소개된 이 책의 표지의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2일>, <1808년 5월 3일>이다. 첫 번째 5월 2일은 나폴레옹 군의 용병을 공격하는 하층민을 그렸다. 이 그림에서는 단지 ‘공격성’과 같은 감정이 나타날 뿐, 명확한 선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러한 불분명함은 잔혹함의 혼란을 드러낸다. <5월 3일>은 프랑스 사람들이 살인자로 등장한다. 그림 뒤로 비치는 교회와 손에 상처가 난 남자는 예수의 분신이다. 예수의 이야기를 그린 고야는, 남자를 통해 무력한 인물 그리고 속제의 죄물로 그렸다. 그는 평화의 참화들을 통해 잔혹함을 단지 전쟁에서의 폭력성이 아닌 스페인 사회 내부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고문, 박해, 사형이 포함된다. 하나의 주제에서 더 확장시켜 폭력에 대한 그림을 그려나간다. 
 
 고야는 한편으로는 여전히 공식 초상화와 알레고리화 또는 종교적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의 공포 또한 창조했다. 그는 앞서 언급했듯 선과 규칙에 자유로워지며 그 세계 자체를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두 가지의 길을 갔던 것은 어쩌면 시간을 초월해 우리에게 그 그림이 닿도록 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물론 그가 당시에 그 목적으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종교적 그림을 꾸준히 그리면서도 참혹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가려질 수 있었던 어떤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자 했음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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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배운다>- 고야


 앞서 프리뷰에서도 작성했듯, 고야의 책을 접하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이 ‘검은그림’ 이라는 부분이었다. 고야는 1792년, 귀가 들리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발견한다. 이 검은 그림이 그려진 시기 역시 고야에게 죽음의 문턱이 다가올 때였다. 죽음 앞에서 그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내려놓기라는 말이 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으면, 역설적으로 사람은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에게는 관습도 필요 없었고 순응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특히 고야의 말년을 나타내는 검은 그림이 시작된다. 초반에 고야의 편지가 생각나는가? 고야는 자신의 취미에 따라 사는 것이 의무라며 친구에게 편지했었다. 이 의미는 그는 필요에 의한 그림이 아닌 자신이 내적으로 끓어올라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상황상그는 그렇지 못하였고 '그려야만 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서야, 검은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 부터 고야는 의무감에서 해방하려는 발자국을 내딛는다. 그의 그림은 '목적'을 띄지 않았다. 단지 그 안에 잠재된 검은 세력들을 '표현'함으로서 '치유'하려했다. 그림의 주어도 '나'로 바뀐다.

 검은 그림 챕터를 읽고, 고야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단순히 어떤 그림에서 느껴진 것은 아니다. 그가 귀를 잃었기에 내면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쩌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검은 그림은 그를 있는 그대로 치유해주었기에 의미가 있다고 애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당시에 그 혼자 겪어야했었던 고뇌였고 고통이었다. 그것에서 어떻게든 헤쳐나오려고 하는 모습, 그림을 통해서 혹은 편지를 통해서라든 그런 모습이 더 느껴졌다.

 나는 단순히 그의 결과물을 보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작가 그 자체에 대해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가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자했던 것도 하나의 '이상'에 대해 연연하는 것보다 '개인'에 관심을 가졌고 그의 삶 역시 그렇게 흘러갔다. 하나의 사상에 대해, 그 사상의 표면적인 것들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것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변형되고, 지배되고, 그가 가진 어둠의 힘까지 바라보았던 고야는 우리가 늘 추구하는 진리와 지유의 표면적인 모습 뿐만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숨겨진 '덫'까지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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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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