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03. 시카고

I’m no one’s wife. I love my life! (난 누구의 아내도 아니야. 난 내 인생을 사랑해!)
글 입력 2018.05.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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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버(Number)
: 작품에 수록된 개개의 음악적 분류. 
작품을 구성하는 곡 하나하나.







NUMBER 03.
시카고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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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 : 존 칸더(John Kander), 프레드 엡(Fred Eb)
작사 : 존 칸더(John Kander), 프레드 엡(Fred Eb)
안무 : 밥 파시(Bob Fosse), 앤 레인킹(Ann Reinking)
연출 : 밥 파시(Bob Fosse), 월터 바비(Walter Bobbie)





검은색 망사 의상에 중절모를 쓰고 자유자재로 관절을 놀리는 모습은 뮤지컬 <시카고>(Chicago)를 연상시킨다. 해당 등장인물들은 꽤나 매력적으로 묘사되지만, 현실에 대입해 보았을 때 떳떳할 만한 인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뮤지컬 <시카고>의 이미지가 그토록 세련되고 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은 1920년대 미국 시카고의 한 교도소(Cook County Jail)를 배경으로 여성 수감자들의 모습을 그린다. 살인과 범죄, 감옥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주인공 록시 하트(Roxie Hart)와 벨마 켈리(Velma Kelly)의 이야기를 위트 있게 풀어낸 이 작품은 당시 비일비재했던 부패한 법정 및 범죄자를 스타로 만드는 비정상적 사회를 풍자한다.

이처럼 문제의식을 담아 바라본 현실을 비꼬며 고발하는 작품이기에 ‘재즈’는 그 전달에 있어 최적의 음악으로 작용한다.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곡을 구성하는 장르 특성이 궤를 같이하는 스토리라인 안에서 기가 막히게 빛을 발하는 것이다.






#1 재즈에 취하다,
“All That Jazz”
_벨마(Velma), 다 같이(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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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서곡이 끝나고 시작되는 오프닝넘버로, 뮤지컬 <시카고>의 대표곡이다. 해당 넘버를 통해 작품을 관통하는 컨셉을 파악할 수 있는데, 특히 그 전반에 드러나는 재즈풍 음악은 무대 중앙에 위치한 밴드를 통해 라이브로 연주된다. 밴드는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무대 위에서 함께하며, 지휘자가 록시에게 신문을 건넨다거나, 연주자가 배우와 눈인사를 주고받는 등 소소한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뮤지컬 <시카고>는 안무로 대표되는 작품이다. 안무가이면서 제작을 주도하기도 한 밥 파시(Bob Fosse)는 해당 작품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다. 그는 춤을 소화하는 데 있어 가졌던 결점을 오히려 전격 드러내어 전례 없이 독특하고 감각적인 안무를 선보였는데, 어깨, 골반, 손목, 손가락, 고개 등을 활발히 사용하며 신체 국소 부위를 부각했다. 몸을 크게 뻗치다가도 절도 있게 움츠리는 등 힘의 절제가 지배적이며 따라서 난잡하지 않고 깔끔하면서 세련된 느낌을 완성한다. 배우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관능미는 곧 작품 전체의 이미지를 형성하며, 강약조절을 통해 표정 및 온몸에서 드러나는 카리스마 또한 그 존재감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게 한다.

벨마가 이끄는 “All That Jazz”가 진행되는 동안 록시의 범행 장면이 뒤편에서 요약 및 전개된다. 가장 유명한 곡으로 화려하게 극을 시작하는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흡입력 있게 관객을 집중시키는 넘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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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마(VELMA)

Come on, babe
Why don't we paint the town?
And all that jazz

I'm gonna rouge my knees
And roll my stockings down
And all that jazz

좀, 자기야
신나게 놀아보는 게 어때?
그리고 이런저런 것들 말이야 

*무릎에 루즈를 칠하고
스타킹은 내릴 거야 
그리고 이런저런 것들 말이야


*1920년대 유행 스타일.
이전 세대가 가터벨트로 스타킹을 고정한 것에서
아예 스타킹을 내려버리고,
당시 보기 싫게 여겨진 무릎은 색을 칠해 가렸다.





 

#2 빌리 각색의 쇼 비즈니스,
“We Both Reached for the Gun
(우린 동시에 총을 향해 손을 뻗었지)”
_빌리(Billy), 록시(Roxie), 메리(Mary), 기자들(Repor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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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유명 변호사 빌리 플린(Billy Flynn)은 교묘한 언론플레이의 귀재로, 교도소 내에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무패 전설을 자랑하는 그는 돈과 여색에 밝으며, 극 중 벨마와 록시의 변호를 담당한다.

해당 넘버는 록시의 기자회견 장면이며, 복화술과 인형극을 빌려 재치 있게 연출된다. 록시가 입을 뻐끔거리면, 빌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가장해 노래한다. 그녀는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 빌리의 조종 아래 삐걱대며 움직인다. 나머지 배우들은 기자로 변해 질문을 던지는데, 이때 함께하는 조연인 메리 선샤인(Mary Sunshine)는 유명 일간지 기자로, 매번 빌리의 수법에 넘어가 가십 기사를 작성하는 인물이다.

허울뿐인 기자회견 및 언론플레이를 풍자하는 장면이며, 이를 뮤지컬 무대에 걸맞게 짜임새 있는 연출로 시각화했다. 정신없는 기자회견장 모습을 빠른 템포로 구현하다가도 빌리가 본인 목소리로 그녀를 변호할 땐 느린 박자를 삽입해 연출된 그림을 다시금 인식시키는 등 넘버 내 완급조절을 통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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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REPORTERS)

Did you fight him?
그와 맞서 싸웠나요?


빌리(BILLY) as 록시(ROXIE)

Like a tiger.
호랑이처럼요.


빌리(BILLY)

He had strength and she had none.
그에겐 힘이 있었지만, 그녀는 아니었죠.

+

메리(MARY)

Understandable, understandable.
정상적이에요, 정상적이에요.


빌리(BILLY) / 메리(MARY)

Yes, it's perfectly understandable
Comprehensible, comprehensible
Not a bit reprehensible
It's so defensible!

네, 이거 정말 완벽하게 정상적이에요.
이해가 가요, 이해가 갑니다.
뭐라 할 게 전혀 없어요.
완전히 정당방위입니다!







#3 미래의 보드빌 슈퍼스타,
“Roxie(록시)”
_록시(Roxie), 남자들(B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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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인공 록시는 신문 1면에 자신의 기사가 실리는 등 이름을 알리자, 한낱 코러스 걸에서 벗어나 보드빌(Vaudeville)의 유명 스타가 되는 희망에 부푼다. 보드빌은 다양한 오락 요소가 결합한 당시의 인기 공연 장르로, 벨마가 이름을 날리던 분야이자 록시가 성공을 갈망하는 세계이다. 실제 뮤지컬 <시카고>의 컨셉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요소이기도 하다.

해당 넘버는 ‘록시’라는 인물의 매력을 한껏 보여주는 곡이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그녀는 자신이 바람피운 상대를 살인하고도 남편에게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한, 죄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넘버가 그리는 그녀는 전혀 그렇지 않다. 스타가 되어 남자 댄서 무리를 거느리는 등 인기에 휩싸이는 상상에 행복해하는 그녀를 작품은 ‘백치미’ 넘치는 이미지 정도로 비춘다. 사랑스럽게 묘사되는 무대 위 캐릭터와 그 이면이 이루는 괴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시카고>가 던지는 풍자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록시(ROXIE)

The name on everybody's lips is gonna be: Roxie
The lady raking in the chips is gonna be: Roxie
I'm gonna be a celebrity,
That means somebody everyone knows,
They're gonna recognise my eyes, my hair, my teeth, my boobs, my nose.

모두의 입에 오르내릴 그 이름은 바로: 록시
돈을 왕창 긁어 모을 그녀가 바로: 록시
난 유명인사가 될 거야.
모두가 알만한 그런 사람 말이야.
다들 알아보겠지. 내 눈, 내 머리, 내 이, 내 가슴, 내 코까지.







뮤지컬 <시카고> 넘버 리스트
(1996년 리바이벌 버전)

PART 1

1. Overture – Orchestra
2. All That Jazz – Velma Kelly and Company
3. Funny Honey – Roxie Hart
4. Cell Block Tango – Velma and the Murderesses
5. When You're Good to Mama – Matron "Mama" Morton
6. Tap Dance - Roxie, Amos, and Boys
7. All I Care About – Billy Flynn and the Girls
8. A Little Bit of Good – Mary Sunshine
9. We Both Reached for the Gun – Billy, Roxie, Mary and the Reporters
10. Roxie – Roxie and the Boys
11. I Can't Do It Alone – Velma
12. I Can't Do It Alone (Reprise) – Velma
13. Chicago After Midnight – Orchestra
14. My Own Best Friend – Roxie and Velma
15. Finale Act I: All That Jazz (Reprise) – Velma

PART 2

16. Entr'acte – Orchestra
17. I Know a Girl – Velma
18. Me and My Baby – Roxie and Company
19. Mr. Cellophane – Amos Hart
20. When Velma Takes the Stand – Velma and the Boys
21. Razzle Dazzle – Billy and Company
22. Class – Velma and Mama Morton
23. Nowadays/Hot Honey Rag – Velma and Roxie
24. Finale Act II: All That Jazz (Reprise) –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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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인적으로 2015년 시카고 내한 관람 이후 가장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던 넘버는 2막에서 록시의 남편인 에이모스 하트(Amos Hart)가 부르는 “Mr. Cellophane(셀로판 씨; 투명인간)”이다. 물론 캐치한 멜로디와 유머러스한 가사 내용이 일차적인 이유가 되겠지만, 넘버 자체가 가진 상징성으로 접근하면 작품이 말하는 문제의식을 다시 짚어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진심과 진실로 일관하는 그가 아무도 자신을 신경조차 쓰지 않자 한숨 쉬듯 맥없이 부르는 이 넘버로부터, 욕망과 부에 눈이 먼 사람들이 끝까지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은유적으로 표현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 <시카고>는 그 구성과 전달에 있어 미국의 색깔이 풍부히 담겨 특색 있게 완성된 작품이다. 이처럼 눈앞에 보이는 무대 이면의 의미까지 해석할 수 있다면, 작품 관람은 훨씬 흥미로워진다. 관객으로서 깊이 있는 경험을 원한다면, 바탕이 되는 정보를 꼭 찾아봄으로써 해당 즐거움을 몰라서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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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ck, kn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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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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