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탠리 큐브릭, 당신은 도대체...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영화]

글 입력 2018.05.0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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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A Space Odyssey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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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의 검은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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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의 기가스틸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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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세라, 이스트웨스트/웨스트이스트
(Richard Serra, East west/West East)


 정장진 미술평론가가 쓴 < 미술을 알아야 산다 >에서 위의 포스코 광고와 리처드 세라의 설치미술이 이 영화를 오마주했음을 집어내는 부분을 보고 몇 년을 미뤄오던 영화 감상을 하게 되었다. < 인터스텔라 >가 이 영화를 오마주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도 그 사실을 대놓고 인정했다고 한다. 인터스텔라 외에도 수많은 광고와 작품들에도 이 영화가 기반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음악, 어딘가에서 본 구도, 어딘가에서 본 저 석판과 우주의 모습 ... 전부 이 영화가 그 출처였다니. 이제서야 이 영화를 봤다는 게 큰 잘못인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고도 감히 무어라 해석하기가 어렵지만,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보아온 수많은 표현들이 여기에서 기반했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표현. 그리고 압도적인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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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심적인 내용과는 상관 없지만,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하여 우주에서의 생활을 그려낸 것이 흥미로웠다. 이게 1968년도에 만들어진 영화라고? 진짜 기가 찬다. 믿기지가 않는다. 그 영화에 나오는 가구들과 몇몇 표현들은 2018년인 지금 봐도 '현대적이다', 내지는 '미래지향적이다'라는 표현을 붙일 법 하다. 그런데 1968년 영화라니.

 검색해보니 전개가 루즈해져 지루하다는 평도 있는 것 같지만, 그만큼의 시간 간격을 두고서 어떤 장면을 오랫동안 보여주거나, 암전 상태로 오래 두거나 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만약 시간이 짧았다면 그 공허함과 두려움, 불안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사실 '내용'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나오는 부분만 축약해서 본다면 30분이면 충분할 영화다. 그보다도 더 적게 걸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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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무섭다. 광활하고 공허하고 신비로운 우주의 분위기를 정말 잘 표현해냈다. 특히 데이브가 귀환하는 과정에서 빨려들어가는 듯 펼쳐지는 우주의 모습은 마치 우주의 비밀에 대해 함부로 파헤치려 하지 말라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감히 너의 영역을 벗어나지 말라는 그런 느낌. 어떤 해석에서는 그 펼쳐지는 우주의 모습이 태고의 시간에서부터 우주의 변천사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특히, 음악으로 사람을 들었다놨다 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정말 처음으로 느꼈다. 무서운 걸 싫어해서 공포영화를 거의 안봐서인지, 음악 때문에 사람이 정말 긴장되고 식은 땀이 나고 하는 경험은 없었던 것 같다. 음악으로 이렇게까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 수가 있구나... 영화에서는 2분도 정말 긴 시간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영화 시작 부분과 중간 인터미션 부분에서 아무것도 없이 음악만 나올 때, 컴퓨터 화면이 잘못된건가 싶어 몇 번 마우스를 움직였다. 이상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음악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그 부분을 넘기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그만큼 긴장감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



영화에 대한 감상 :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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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실재하는 과학 이론과 여러 철학적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서는 수많은 과학적/철학적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검색을 통해 글 몇 개를 대충 보았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감독의 의도와 원작 소설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에 비중을 두는 듯 했다. 하지만 일단 영화는 영화고, 책은 책이다. 영화가 아무리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들 그것은 독립적인 작품이며, 책은 그 영화의 내용 이해에 도움을 줄 뿐 영화를 온전히 설명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로 원작을 전부 반영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관객이 책에서 느낀 바를 영화에서 똑같이 느껴야 할 의무는 없으며 작가나 감독의 의도대로 작품을 해석해야 할 의무 역시 없다. 창작자는 이미 그들의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해 관객이 감상하는 바를 제어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만의 감상을 조금 풀어놓자면, 나에게는 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과학적 흥미를 자극했다기보다는, 조금은 감성적인 경고로 다가왔다.


-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과학 기술의 발전, 우주를 개척하는 인류, 고급진 분위기의 우주선과 그 안에서의 일상들. 그러나 그들은 지구에서 먹던 식재료 '맛'의 우주 식량으로 끼니를 떼우고, 인공지능과 대화하며,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정작 그들은 가족의 생일과 자신의 생일날에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하고 영상 통화를 통해 짧은 안부를 나눌 뿐이다. 가족들은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우주인에게 섭섭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자랑스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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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이 시절엔 항상 가족과 함께였다.


 이런 모습은 굳이 우주선의 모습을 빌리지 않더라도 낯설지가 않다. 이미 우리는 많은 기계와 대외적인 일들 때문에 가족과의 일상을 뒤로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는 닥터 헤이우드의 딸조차 영상통화에서 생일선물로 전화기를 사달라고 한다. 이때의 전화기는 가족 간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우주로 떠나있는 가족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에 그리움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암시하듯 한 인간의 인생은 정말 덧없고 짧은데,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대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류의 과한 욕심이 개인의 생활을 망가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 검은 비석과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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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초기에 나오는 신비로운 검은 비석(모놀리스)은 태초의 인류에게 도구의 사용법을 알려주었고, 이 영장류는 도구를 이용해 스스로의 생존을 도모하는 한편, 다른 영장류를 제압하기도 한다. 이 검은 비석은 인류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할 시기에 종종 등장하며 인류에게 알게 모르게 문명을 전수해주었다. 인류는 한편으로 이 비석을 두려워하면서도, 점차 이 비석에 대해 알고자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비석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로써, 2001년 데이브와 프랭크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인공지능 '할 9000'과 함께 이 비석과 연관이 되어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목성 탐사에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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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 '할'은 마치 스스로에게 감정과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어느날 할에게서 오류 가능성이 발견되고, 그것을 우려한 데이브와 프랭크가 할의 역할을 제한하려 한다. 할은 이 대화를 엿들으면서 위협을 느끼고 프랭크와 동면 상태에 있던 다른 연구원들을 살해한다. 할은 이를 알게 된 데이브에게도 위협을 가하지만, 데이브는 간신히 할을 제압하게 된다. 이 제압이라는 것은 '작동 정지'를 의미하지만, 인공지능을 정지시키는 동안 할이 보이는 태도는 마치 살해당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데이브가 할을 정지시키는 동안, 할은 기억이 지워지고 있다며 그에게 화를 가라 앉히라고 말한다. 덤덤한 기계의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꾸준히 호소하던 이 인공지능은 메모리가 삭제되면서 천진하게도 '데이지'라는 노래를 안다고 말한다. 할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꼈던지, 데이브는 할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죽어가는, 아니, 작동 정지되어가는 이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검은 비석 때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인류는 어느날부터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오늘날의 문명을 이룩했다. 그리고 짐승의 뼈로 시작했던 그 도구는 어느덧 할 9000과 같이 고도의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의 수준으로 진화했다. 이 도구는 인간을 생존하게 하고 더 나아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죽이고 인류를 위협하게 되었다. 만약 인류 문명의 진화가 검은 비석 때문이라면, 검은 비석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저주일수도 있다. 그야말로 편리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갖는 이 양면적인 '문명'을 이 '검은 비석'이라는 상징 하나가 잘 드러내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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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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