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선의 여성은 누가 죽였나 ② [문화 전반]

현대 사회에 남아 있는 열녀 이데올로기
글 입력 2018.05.0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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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여성은 누가 죽였나① 에서는 <왕씨가 목매어 죽다. 원나라 王氏經死 元>를 통해 조선의 지배계층이 열녀 이데올로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이용하여 여성들에게 폭력을 가했는지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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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행실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삼강행실도가 제작된 지 약 580년이 지난 지금, 열녀 이데올로기는 표면상으로는 사회에서 모습을 감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성에게 규율처럼 작용하는 편견의 이면에는 여전히 열녀 이데올로기가 남아있다.

열녀 이데올로기가 정말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여성이 철저히 대상화된다는 것이다. <고행이 코를 베다. 양나라>에서 이 지점이 잘 드러난다.


고행(高行)은 양(梁)나라의 과부였다. 남편이 죽고 일찍 과부가 되었는데 시집가지 않으니, 양나라 귀인들이 다투어 얻고자 하였으나 되지 않았다. 양나라 왕이 듣고 상신(相臣)을 시켜 폐백으로 맞이하도록 하니, 고행이 말하기를, “첩은 듣건대, 부인(婦人)의 의리는 한 번 시집가면 고치지 말고 정신(貞信)의 절개를 온전히 해야 한다 합니다. 죽음을 잊고 삶을 따른다면 이는 불신(不信)이요, 귀하게 되어 천한 것을 잊는다면 이는 부정(不貞)이요, 의리를 버리고 이익을 따르면 사람 노릇을 못하는 것입니다.” 하고, 거울을 들고 칼을 잡아 그 코를 자르고 말하기를, “첩은 이미 자형(自刑)을 하였습니다. 죽지 못하는 까닭은, 차마 어린 자식이 거듭 고아가 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왕께서 첩에게 요구하는 것은 미색(美色)때문인데, 이제 형여(刑餘)의 사람이 되었으니, 놓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상신이 그대로 보고하자, 왕이 그 의리를 훌륭하게 여기고 그 행실을 높이 여겨, 그 몸을 용서해 주고 그 호(號)를 높이어 고행(高行)이라 하였다.

<고행이 코를 베다. 양나라 高行割鼻 梁> 전문


이 이야기에서도 역시나 불합리한 요소들이 나타난다.




1, 고행(高行)은 과부이자 어린 자식의 어머니로 묘사된다.

2. 과부가 되자 양나라 귀인들이 다투어 ‘얻고자’ 하였다.

3.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왕이 자신을 탐내자 고행(高行)은 스스로 코를 자른다.

4. 남자들의 관심을 얻지 못할 만큼 자신의 얼굴을 망가뜨리는 행위를 두고 ‘열’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고행은 어린 자식의 어머니이자 과부이다. 남편이 죽은 후 어린 자식을 키우면서 어머니로 살아간다는 것은 ‘열’에 어긋나지 않는 삶이다. 그러나 왕이 고행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고행이 과부로 살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열’에 어긋나는 삶이다. 그래서 고행은 가장 추해보일 수 있는 코를 잘라 죽는 날까지 과부로 살며 ‘열’을 다하고자 한다.



코를 자르는 행위를 왜 ‘열’이라고 했을까?


당시 여성들에게 아름다움과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은 결혼 전, 혹은 남편 앞에서만 허용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사회의 고정관념에 의한 표현을 빌리자면) 여성스러움의 상징으로 기르던 머리를 결혼 후 위로 올려 비녀로 고정하는 행위는 곧 결혼과 동시에 여성성에 제약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곧 남편이라는 대상을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 <고행이 코를 베다>에서 고행이 남편을 잃은 후 코를 베어 자신의 아름다움을 망가뜨린 것도 결국은 여성의 아름다움이 여성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행은 열녀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만 움직일 뿐, 주체성을 드러내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고행 자신조차 타인의 시선을 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열녀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남성의 시선에서 대상화하여 여성의 주체성을 앗아간다.



지금은 열녀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열녀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여성을 속박하는 족쇄로 남아있다. 그 양상은 첫 번째, 여성의 성적 대상화, 두 번째, 여성의 자기 검열의 형태로 나타난다.


1. 여성의 성적 대상화

<고행이 코를 베다. 양나라>에서 고행이 남성의 시선에 의해 외모를 평가당하는 등 성적 대상화를 겪었던 것처럼, 현대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직장 등 사회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은 화장을 강요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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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사회에서 노동력뿐만 아니라 ‘여성성’을 강요받는다. 일례로, 국내 최대 영화관인 CGV는 여성 아르바이트생에게 ‘붉은 립스틱’을 바르라는 등의 지나친 외모 가꾸기를 요구하여 노동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6년에는 알바노조가 CGV 본사 앞에서 ‘CGV 여성 노동자들에게 지나친 외모 가꾸기를 요구하지 말라’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여성의 외모를 타인, 특히 남성의 전유물로 보았던 조선 사회의 열녀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사례이다. 화장을 시키고 스타킹을 신겨 여성들에게 성적 어필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의 악습은 <고행이 코를 베다>의 열녀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빼다 박은 것 같다. 남성들에게는 주로 노동력을 요구하는 반면, 여자들에게는 노동력뿐만 아니라 아름다움과 여성성까지 강요하는 것이다. 여기서 여성성은 남성과 다른 여성의 특징을 지칭하는 것이므로 지극히 남성의 성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다.

대중매체에서도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중매체에서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학생 신분인 남성을 지칭할 때에는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만 학생 신분인 여성을 지칭할 때에는 여중생, 여고생, 여대생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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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이미지에 '남고생'을 검색했을 때 보이는 화면이다.


교복을 갖춰입은 학생들의 사진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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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이미지에 '여고생'을 검색했을 때 보이는 화면이다.


섹스어필을 위해 교복을 입은 사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교복을 입고 노출을 하는 여성의 사진이 대부분이다. '여고생'이라는 단어가 어떤 형태로 성적 대상화되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사진들이다.

근대까지만 해도 학생 신분이었던 여성이 드물었기 때문에 ‘여학생’이라는 단어로 여성 학생이 드물었던 당시 사회를 나타냈으나, 현대에는 여성이 학생 신분이라는 것이 결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여전히 성별로 신분을 드러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남성 학생에 비해 여성 학생에게 성별을 강조한다는 것은 곧 여성 학생에게 여성성을 요구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열녀 이데올로기에 나타나던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예이다.


2. 여성의 자기 검열

삼강행실도의 열녀편에 등장하는 열녀들은 스스로에게 극단적인 윤리의식을 강요한다. 특히 ‘열’이라는 덕목은 자신을 학대하거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열녀가 열을 다하고자 했던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열을 다하려는 성향을 타고났기 때문이었을까? 조선 지배계층이 삼강행실도를 통해 열 이데올로기를 사회에 주입시키려고 했던 것을 보면 열은 타고난 성향이나 도덕성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이해관계나 가치판단에 의해 주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열녀가 열을 다하고자 했던 이유도 결국은 사회가 여성에게 열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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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이데올로기는 현대의 가치관에 여전히 남아 여성을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여성은 남성에 의해 여성성을 강요당할 뿐만 아니라, 남성 즉 타인의 시선을 빌려 자신을 끊임없이 검열하고 있다. 한때 여성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대부분이 ‘현모양처’라고 대답하던 시기가 있었다. 요즘에는 현모양처라고 대답하는 여성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현모양처는 이상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현모양처는 어진 어머니이자 착한 아내를 뜻하는 단어이다. 또한 여성의 존재 이유를 임신과 출산으로 한정짓는 단어이기도 하다. 여성 스스로 현모양처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자식과 어머니’,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 속에서 찾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에 의해서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과거 열녀 이데올로기가 현모양처라는 여성상 속에 녹아있다. 여성은 어진 어머니와 착한 아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여성상에서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한다. 열녀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채 편견 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 열녀 이데올로기는 여성에게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특히 사회의 지배계층은 과거에 여성들을 옭아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열녀 이데올로기가 현대에 어떠한 형태로 남아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식해야 한다. 이로써 우리의 무의식에 남아 있는 성차별 문제를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경계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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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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