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도서]

글 입력 2018.04.27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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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M/V] Romantic Punch (로맨틱펀치) - Moonwalk in Kyoto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처음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알게 된 건 책도, 영화도 아닌 노래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디밴드 '로맨틱 펀치'의 노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은 줄여서 밤.가.씨 라고 불리며 나름 로펀(로맨틱펀치)의 흥행곡이었다. 심지어 작년에는 홍대에서 '로맨틱펀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배 걷기 대회'도 했었었다. 로펀 보컬인 배인혁이 좋아하는 책이라고 추천도 했었고,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영화 개봉할 때는 배인혁이 시사회에 게스트로 참석하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라니,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노래까지 만들었을까 궁금해서 책을 집었다. 순전히 팬심으로만 시작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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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한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남학생의 이야기이다. 시점은 짝사랑 상대인 여자 후배와 '최눈알(최대한 눈앞에서 알짱거리기' 작전을 하는 남자 선배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남자의 목표는 여자 눈앞에 알짱거려서 자주 마주쳐서 그녀의 세계에 인식되는 것이다. 봄날의 환상적인 도쿄 밤거리 산책과 여름의 헌책방 거리, 가을의 학교 축제와 모두가 감기 걸린 계절 겨울 등 1년 4계절이 담겨있다. 최눈알 작전을 하지만 기묘한 인물들과 함께 환상 속으로 섞여들어가며 현실과 구분이 모호한 몽환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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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실제 도쿄 지명이 나와 있어 상상하며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텐구나 헌책방의 신, 도사 이백, 공짜로 술자리에 잘 끼는 성격 좋은 여자와, 이상한 묘기 부리는 남자 대학생 등 개성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와있어 읽으면서도 즐겁다. 또한 3층짜리 전차라던지 헌책방 지하에 있는 용광로, 이동하는 코타츠, 함께 이동하는 게릴라 단만극 등 환상적이고 특이한 배경으로 꿈꾸기 좋다. 마네키네코나 잉어처럼 일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잘 그려져 있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은 흥미로운 인물들의 미끄러지는 관계도이다. 드라마에서 같은 공항에 있어도 절대 마주칠 수 없는 남,여 주인공들 처럼. 첫 술자리에서 만났던 할아버지는 나중에 만난 결혼 축하 파티 속 신부의 아버지라던지, 중간에 만났던 아저씨들의 회식은 주인공의 먼 동아리 선배라던지, 길거리에 뛰어다닌 꼬마 아이는 알고보면 헌책방의 신이라던지. 이상한 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능글맞게 자연스럽게 미끄러져서 사건들이 이어진다.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나오는데 시점의 시작과 끝이 서로 이어져있는 것도 참 재미있다. 남자가 창밖으로 물건을 던지면서 시점이 끝났다면, 여자가 그 물건을 줍고서 지나가는 시점으로 전환이 된다. 능글맞은 판타지가 특징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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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을 재치있게 조리한 장점이 분명하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도 많다. 여자를 대상화해서 관찰하는 관음적인 시선을 많이 느꼈다. 몰래 뒤따라 다니는 건 스토킹과, 성추행하는 할아버지도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점이나, 야설 수집, 춘화 모으는 행위도 '여자들은 모르는 남자들만의 세계'라고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것도 불쾌했다. 섹슈얼한 느낌보다는 외설적인 변태스러움에 가깝다.

게다가 여자는 이래야 해, 아가씨는 이래야지 등의 코르셋을 가진 여자 주인공, 성추행을 당해도 가해자 걱정을 하며, 개연성 없는 남자가 들이대도 '어머나'하고 신경 쓰는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자 작가 입장에서 바라는 '아가씨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져서 불편했다. 그런 류의 망상 소설은 너무나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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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밤을 걷는 아가씨는 매력 뿜뿜이다. 남성의 시선에서 그려진 판타지와 코르셋은 불편하지만 독특한 캐릭터는 분명하다. 말투부터 행동까지. 순진무구한 주당. 술을 사랑하며,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건 모르고 있다. 패기롭게 도전하는 연극 주연도,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도, 운이 좋아서 엄청 큰 잉어 모형을 등에 매고 다니는 모습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게다가 아가씨에게 이끌려진 특이하고 환상적인 주변 인물들까지. 이 매력적인 아가씨를 관찰하는 남자 주인공은 더욱 더 대조적으로 극명하게 변방으로 밀린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과연 남선배는 여후배 주위를 알짱거려서 가까워질 수 있을지?! 우리 함께 환상적인 밤을 걸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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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보도 스틸 컷 -출처: 배급사 미디어 캐슬


노래도 듣고, 소설도 읽었으니, 영화까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영화도 봤다. 영화는 소설과 다르게 4계절의 스토리를 하룻밤만에 그렸다. 게다가 제대로 된 짬뽕이라 더 재미있었다. 정신사납지만 소설의 대부분의 대사를 차용해서 이해가 됐다. 처음 보는 사람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맛깔스럽게 잘 섞었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청춘'과 '환상' 코드로 잘 만들었다. 게다가 소설에서는 줄글 묘사에 그칠 수밖에 없던 내용을 이미지로 살리니 더 좋았다.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보여줬다. 작화도 특이하고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영화도 원작처럼 불편했다. 여기서도 여성을 대상화하고, 저질스러운 개그 코드까지 더해져서 눈쌀이 찌푸려졌다. 팬티 바람은 기본에 성희롱을 전부 개그로 치부하다니. 일본의 이상한 예능을 감독과 작가가 좋아하는 걸까. 게다가 전형적인 남자 시선에서 그려진 여자의 환상적인 모습, 여자는 전부 예쁘고 남자는 각양각색으로 그려졌다. 여자만큼 남자도 예뻤으면, 혹은 여자도 똑같이 다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용 자체가 남자 시선에서 그려지니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하고. 관찰하는 입장은 이해하지만 여기서도 관음적인 코드가 계속 나와서 불편했다. 영화 <너의 이름은>도 여자만 가슴만지고,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게 너무 노골적이라 불편했는데. 성추행이 개그로 쓰인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쉬운 단점에서 그나마 소설보다 나은 건 주체성이 강한 아가씨라는 점일까.

실제 도쿄를 배경으로 그려서 더 생생한 느낌이 든다. 다양한 환상을 이미지로 잘 그려냈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특히 '하룻밤'만에 일어난 환상적인 이야기들. 애니메이션도 소설처럼 다양한 시점을 능글맞게 잘 넘어가서 매력적이다. 가볍게, 술에 취한 밤을 꿈꾸고 싶다면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추천한다. 노래와 소설, 영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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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모리미 판타지 최고의 수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특별판
제28회 오타와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부문 그랑프리 수상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2018년 3월 극장판 애니메이션 대개봉!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천연덕스러운 판타지로 수많은 독자를 열광케 한 청춘소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특별판이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대표작『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2006년 출간 이후 일본 누적 판매 130만 부를 돌파한 스테디셀러로, 제20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하고, 일본의 유력 출판전문지《다빈치》 선정 ‘올해의 책’ 1위, 일본 서점대상 2위, 기노쿠니야서점 베스트텐 2위를 기록했다.

작가정신에서는 2018년 3월 극장판 애니메이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국내 개봉을 기념하여 특별판을 제작하였으며, 이번 특별판을 구매하는 독자들에게 영화 프레스키트(press kit)와 포스터를 증정한다. 프레스키트에는 독자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의 완성에 정점을 찍을 TOP 성우들의 캐스팅 비화를 비롯한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는 물론, 주인공 ‘검은 머리 아가씨’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선배’, ‘빤스총반장’, ‘헌책시장의 신’ 등 기기묘묘한 캐릭터에 대한 톡톡 튀는 소개 및 눈길을 사로잡는 영화 스틸컷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재패니메이션의 새로운 미래’로 불리는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제28회 오타와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부문 그랑프리와 제41회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하고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전 세계를 사로잡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섬세한 드로잉과 강렬한 색채감으로 이미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나카무라 유스케의 독특한 일러스트 작화와 유아사 마사아키만의 기발한 상상력과 팝아트 같은 영상미는 완벽한 몰입감을 선사하며 관객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독보적이고 실험적이고 환상적이다!”, “애니메이션의 개념을 바꾸어 준 작품”, “다채로운 색감과 추상의 향연”, “교토를 무대로 그려낸, 색다르고 환상적인 청춘 멜로” 등 쏟아지는 호평 속에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모리미 도미히코 애독자는 물론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의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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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 긍정 에너지 ‘검은 머리 아가씨’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어리숙한 ‘선배’의 환상적 케미,
상큼발랄 판타스틱 밤마실 로맨스
  
이야기의 골격은 ‘검은 머리 귀여운 후배 아가씨’를 짝사랑하는 어수룩한 선배 남학생의 안타까운 분투기. 하지만 무대가 되는 교토의 마을과 대학 등을 독특한 공간으로 변환시키고 여기에 애니메이션풍의 유쾌하고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을 대거 등장시켜 현실과 가상을 주물럭주물럭한, 아주 뛰어난 ‘망상력’이라는 엔진을 달고 질주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나’는 한 여자에 대한 뜨거운 연정으로 가슴을 태우며 고뇌하고 있다. 그녀는 윤기 있는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아담한 체구의 귀여운 ‘아가씨’. 그녀는 문자 그대로 ‘아가씨’의 속성을 다 갖추었다. ‘여성’으로서의 성적 이미지보다는, 어디까지나 맑고 깨끗하고 천진난만한 캐릭터다. 이 책은 바로 이 세상 남자들의 이상형을 그대로 구현한 것 같은, 현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아가씨’에 대한 망상 가득한 한 남자의 짝사랑이라는 그 전형적인 시추에이션을 발판으로 하여 독자들을 단번에 이야기 속 망상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공중부양을 하는 대학생 히구치, 악덕 수집가에게 책을 빼앗아 세상에 돌려보내는 헌책시장의 신,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일 년 동안 팬티를 갈아입지 않은 ‘빤스총반장’, 고약한 고리대금업자이자 사랑스러운 술꾼 이백 씨, 그리고 길가의 구르는 돌멩이처럼 그녀라는 성 주위의 해자를 착실히 공략하는 주인공 ‘나’까지 현실과 망상이 뒤섞인 캐릭터들이 즐비한 이 소설은 주인공 ‘나’와 그녀의 관계 이외의 모든 것들을 판타지적 상상력으로 눙쳐내어 독자들을 꿈과 현실 속에서 기분 좋게 몽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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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천재 애니메이터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영화화.
2018년 3월, 환상적인 밤의 세계로 물들일
하룻밤의 판타스틱한 청춘 로맨스가 펼쳐진다!
  
작고 가냘픈 몸매, 가지런히 자른 검은 단발머리, 고양이처럼 변덕스러운 걸음걸이, 가끔은 특기인 두 발 보행 로봇 스텝……. 세상만사에 호기심 만발이요, 엄지를 안으로 감싼 쥔 주먹을 위험한 순간마다 날리는 ‘친구펀치’를 구사하고, “나무나무”라는 주문을 시도 때도 없이 읊조리고, 주당들을 단번에 제압해버리는 대단한 주량에, 삼척동자도 속지 않은 구라(?)에도 언제나 순진하게 눈망울을 깜빡이며 속아 넘어가는, 유례없이 다양한 매력과 귀여움을 겸비한 서클 후배 ‘그녀’. 그런 그녀를 좇는 ‘나’는 어떻게든 그녀의 눈에 띄려고, 밤낮으로 그녀의 행선지에 출몰하나 고백은커녕 말도 못 붙이고, 머릿속에는 망상만이 폭주한다.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은 우유부단한 남자’ 대회에 나가면 그랑프리 감이 되고도 남음직한 캐릭터다.

그래도 그는 아가씨의 사랑을 얻기 위해 백야귀행의 밤거리를 파김치가 되도록 돌아다니고, 매운 냄비요리 먹기 시합에 나가 온몸이 불타는 혈투를 치르고, 축제로 떠들썩한 대학 옥상에서 추락해 저승길 앞에서 가까스로 유턴하며 목숨을 건 대활극을 펼친다. 그리고 겨울, 그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옴짝달싹못하는 와중에도 그녀를 그리워하는데, 매번 아슬아슬 결정적으로 스치듯 지나치기를 반복하던 두 사람 사이가 다음 해 봄, 마침내 테이블 하나의 거리만큼으로 좁혀진다.

기기묘묘한 캐릭터들 외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요상한 등장 소품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술꾼 이백 씨가 타고 다니는 3층 전차(만화 『도라에몽』에 나오는 것 같은), 가짜 전기부랑이라는 술, 대학축제 강의실 한구석에 등장한 거대한 ‘코끼리 엉덩이’, 자전거와 폐품을 모아 만든 ‘풍운괴팍성’, 회오리바람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단잉어 등등이다. 짝사랑하는 남녀의 애타는 술래잡기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 기상천외한 물건들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시추에이션들은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유쾌하기만 하다. 즉,인간도 우주인도 요괴도 유령도 모두 함께 뛰노는 판타지의 전형적 스토리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에 대해 리얼리티 운운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난센스다.

머뭇거리는 순정 청년과 그런 그의 분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순정 아가씨, 그리고 그런 그들을 둘러싼 사랑스러운 괴짜들이 만들어가는 밝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담긴『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천재 애니메이터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2018년 3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모리미 도미히코 애독자는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의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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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심해어들
편리주의자 가라사대
나쁜 감기 사랑 감기
역자 후기 



▶ 미리보기


처음 말을 주고받은 날부터 그녀는 내 영혼을 사정없이 움켜쥐었다. 나는 가능한 한 그녀의 시야 안에 머물기 위해 3층 전차가 날아다니는 봄의 밤거리에서, 헌책의 신이 강림한 여름의 헌책시장에서, 공중부양을 하는 대학생과 괴팍왕이 휘젓는 가을의 대학축제에서, 감기로 자리보전한 겨울날 꿈속에서, 그녀와의‘우연한’ 만남을 끊임없이 만들었다. “뭐, 어쩌다 지나가던 길이었어”라는 대사를 목에서 피가 날 정도로 반복하는 내게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선배, 또 만났네요!” -186~188쪽
  
헌책시장을 방황하던 그녀가 한 권의 책을 발견하고 의욕적으로 손을 뻗는다. 그곳으로 뻗어오는 또 하나의 손. 그녀가 얼굴을 들면 그곳에 내가 서 있다. 나는 신사적으로 그 책을 그녀에게 양보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녀는 예의바르게 감사 인사를 할 것이다. 그 뒤는 하늘이 나에게 내려준 기지를 발휘하여 손쉽게 풀어나가면 된다. 그 끝에 있는 건 검은 머리의 아가씨와 함께 걸어가는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 아무리 생각해도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한 계획이었다. 한없이 달려 나가는 상상 속의 로맨틱 엔진을 멈출 수가 없어서 결국 나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나머지 코피를 내뿜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 화상아! -94쪽
  
남쪽을 바라본 나는 숨을 삼켰습니다. 어둡고 좁은 본토초의 남쪽에서 꺽다리 전차 같은 것이 찬란한 빛을 뿜으며 이쪽을 향해 오는 겁니다. 그것은 에이잔전차를 쌓아 올려놓은 것 같은 3층짜리 특이한 전차였는데, 지붕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진홍색으로 칠한 차체는 번쩍번쩍 빛을 냈고 차체의 모서리에는 여기저기 램프가 매달렸습니다. 긴 장대에 매달려 색색가지 빛을 발하는 깃발들, 작은 종이잉어, 목욕탕의 커다란 노렌 등이 차체 옆에서 만국기처럼 나부꼈습니다. 나는 한순간 도도 씨의 일이고 뭐고 다 잊고 어두운 밤을 밀어내듯이 다가오는 그 마법의 상자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인기척이 끊긴 어두워진 본토초지만 그 전차가 지나가는 부근만큼은 축제 때처럼 밝았습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73쪽
  
“어차피 꿈이야” 하고 훼방 놓는 후진 사람은 개한테나 먹혀버려라. 꿈이든 현실이든 그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내 재능의 보물 상자는 확실히 바닥을 드러낸 듯했다. 그러나 아직 나에게는 공전절후의 재능이 남아 있었다. 망상과 현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버리는 재능! -379쪽
  
이 위기의 상황에서 그녀를 구할 수만 있다면 내 인생에 영광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을 텐데. 불붙은 내 망상을 어디서 멈춰 세워야 좋을지 모르는 채, 나는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노벨상 수상에 이르기까지의 내 인생의 미래에 있을 각 장면들을 주마등처럼 머리에 떠올렸다. 나는 히구치식 비행술을 구사하여 거대한 독수리처럼 비상했다. 내가 랜턴 행렬의 끝에 도착하여 잡아당기자 그녀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그녀는 웃음 지었고 소리가 되지 않는 소리로 “또 만나네요” 했다. 나도 소리가 되지 않는 소리로 “어쩌다 지나가는 길이었거든” 하고 대답했다. 나는 랜턴을 잡아당겨 그녀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녀는 내 손을 되잡아주었다. -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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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소개

모리미 도미히코 森見登美彦 

1979년 일본 나라 현에서 태어났다. 교토대학교 생물기능과학과에서 응용생명과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 농학연구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3년 『태양의 탑』으로 제15회 일본판타지 노벨대상을 수상하고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6년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로 제20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하고 서점대상 2위에 올랐으며, 이듬해 발표한 『유정천 가족』이 서점대상 3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 작가로 자리 잡았다. ‘매직 리얼리즘’ 기법으로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배열하는 독특한 세계관과 고풍스러운 문체, 교토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펭귄 하이웨이』로 2010년 제31회 일본 SF대상을 수상하고 서점대상 3위로 올라, 다시 한번 모리미 도미히코의 명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 밖의 작품으로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여우 이야기』『달려라 메로스』 『연애편지의 기술』 『요이야마 만화경』 『야행』등이 있다.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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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지은이 : 모리미 도미히코 

옮긴이: 서혜영

분야 : 문학 > 소설 > 일본소설 

면수 : 400면 

정가 : 13,000원

출판사 :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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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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