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래야만 볼 수 있는 진실도 있으니까: <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 (도서)

글 입력 2018.04.25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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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계몽주의의그늘에서_표지.jpg
 

Goya A L'Ombre Des Lumieres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by. 츠베탕 토도로브

아모르문디






계몽주의의 빛과 그늘을 탐색한 ‘사상가’ 고야




< Review >


  흐리고 어둡지만 그림의 양감이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화풍. 여러 작품은 알고 있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고야의 그림을 좋아한다. 단지 예쁘고 독특하기만 한 작품들이 아니라서 자꾸만 궁금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라는 책을 펼쳤다. 기괴하기 그지없는 고야의 그림들과 이성의 찬란한 빛으로 인간의 계몽을 외쳤던 시대가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이 매력적인 그림들을 그린 자가 살았던 곳은 어떤 곳이었을지. 궁금한 사람은 열어보라. 나는 이미 즐겁게 확인했다.
   
  책에서 접한 고야는 시인이었다. 내게 그의 그림 한편 한편은 시였다. 현실을 재현하고 옮기는 것에만 그치는 화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만인의 눈에 들어오는 ‘시야’가 아닌 저마다의 ‘시각’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보편성을 함의하는 공통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만의 시선을 형상화하는 일은 고야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다. 그래서 그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정체성을 죽을 때까지 유지했다. 상류사회 속 지식인들, 소위 말해 계몽주의 시대의 ‘깨어난 자’들과 소통하며 중세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모든 인습과 미신을 비판하며 엘리트주의를 따랐다. 그러면서 동시에 교육이나 도덕과는 무관한 인간의 모습(광기, 재난, 변심, 성욕, 살인, 정신병 등)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언뜻 보면 반대 방향으로 갈라진 두 갈래의 길 같지만 하나의 드넓은 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고야의 입장에서는 ‘이성’과 ‘본성’은 떼어놓을 수 없는 양면의 동전 같은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지식과 미신이 소통하고, 선이 악과 소통하고, 살인이 구원과 소통하고, 사랑이 배신과 소통하고, 죽음이 출생과 소통하는 것. 고야는 그 모순에 매료되어 있던 예술가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속에서 인간이 아름답고, 찌그러지고, 뒤섞이고, 낙오되고, 희망하는 것을 지켜보던 화가였다. 계몽주의가 부흥하며 ‘이성’이 진리로 천명된 시대에 그런 어두운 구멍을 은밀하게 파고 있었을 화가의 모습을 그려보자니 흥미롭다. 그런 화가였으니 고야는 계몽주의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내면으로 천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 ‘이성’의 눈으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살펴야 했고, ‘비이성’의 눈으로 이성이 내재한 폭력성을 포착해야 했다. 당대에 대한 현실인식이 뛰어났던 재능 있는 예술가로서, 고야는 영리하게 그림을 그려나간 것이다.
   
  때문에 여타 다른 지식인들과 같이 이성과 이성이 아닌 것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은 고야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흐릿한 경계성, 아니 ‘소통하는 경계성’을 발굴하고 그림으로 발명해 내는 일이 예술가에겐 훨씬 매력적인 일이었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결같고 합리적이기만 한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 다중적이고 비일관적인 쪽이 훨씬 인간답다. 인간은 이성에 의해 스스로를 통제하기도 하지만 본능에게 너무나도 쉽게 굴복할 수 있는 존재들이지 않은가. ‘인간성’, ‘인간적이다’라는 표현들을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 이유를 고야는 그때부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도판9_마귀쫓기.jpg
고야, <마귀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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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이성의 꿈>


  내게도 ‘이성’이라는 단어가 마법처럼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이성’은 수식어로서 꽤나 근사하다. 이성적 사고, 이성적 판단, 이성적 과정, 이성적 시민, 이성적 국가 등등.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개념이 절대 놓지 않으려 하는 ‘결단력 있고 흔들림 없는 이미지’의 힘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올바르고 단호한 삶의 주체’로 살고 있다는 착각은 쾌감에 가깝다. 어른의 도움 없이는 진위를 분별하지 못했던 어리숙한 시절에서 벗어나 문제없이 선택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일. 얼마나 좋은가. 나 역시 대학생이 되고 나서, 성인이니까 성인답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착각의 시간은 길었다. 마치 ‘이성’이라는 것이 섹스나 이별처럼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는 무언가로 이해되는 것이다. 과도한 희망과 긍정성.
   
  ‘이성’은 마법의 단어다. 현실의 한계와 난관에서 마주하게 되는 불가능의 얼굴을 제하고 모든 것을 뜻대로 논리대로 통하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성은 마법이 그러하듯 진실을 감추거나 왜곡시키기도 한다. 성인이 된 이래로 뼛속 깊이 통감하게 된 쪽은 후자다. 이성을 마스터키라고 믿을수록 얼간이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책 한 줄 더 읽는다고 그 만큼의 이성을 얻는 일은 없으니까. 가장 주관적이고 가장 개인적인 상태일 때(이성의 기준에서 보면 굉장히 나약하고 근본 없는 상태일 때) 더 직관적이고 통찰력 있는 상황이 펼쳐지는 경우도 있다. 이성과 상식의 기준에서 멀어질 때 더 나답게 느껴질 순간도 있다.
   
  ‘이성’이 좋은 것이라 해도 그것이 매순간 모든 진리와 소통하는 건 아니었다. 이성 역시 희망이나 절망과 같이 상황에 대한 여러 태도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렇다. 태도다. 모든 태도와 선택에 ‘자기성찰’이 요구되듯이 이성 역시 성찰과 반성이 거듭되며 구축되는 무언가다. 고야는 인간의 모순과 불완전성을 너무나도 잘 느끼고 있던 화가였기에 ‘이성’의 긍정성에만 함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고야는 ‘이성적’이다. 작품 속에 가장 주관적인 시각과 은유를 담아 당대인들에게 과제를 던져준 것이다. 답이 정해져 있는 뻔하고 정의로운 구호가 아닌 ‘상상력’과 ‘사유’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을 물음을 작품에 심어 놓은 셈이다. 고야의 그림은 고야의 태도 그 자체다. 보는 이 역시 그 태도를 갖춰야만 그림에 깊게 다가갈 수 있다.
   
  시커멓고, 불확실하고, 방탕하고, 미신적이라 하더라도 저 그림을 똑바로 보라. 고야가 우리에게 단지 괴상한 붓질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음을 이제 알지 않았나. 고야의 시선은 붓질 너머에 있다.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쪽은 그쪽이다. 의심하고 상상하는 일. 그래야만 볼 수 있는 진실도 있으니까. 믿지 않음으로써 믿음보다 더 중요한 체험을 할 수도 있으니까.



<차례>

1. 고야, 사상가
2. 고야, 입문하다
3. 예술 이론
4. 병과 그 영향
5. 치료와 재발, 그리고 알바 공작부인
6. 가면, 캐리커처 그리고 마녀
7. ‘변덕들’의 해석
8.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으로
9. 나폴레옹의 침략
10. 전쟁의 참화들
11. 살인, 강간, 산적, 군인
12. 평화의 참화들
13. 희망을 갖다, 경계심을 품다
14. 두 가지 길
15. 두 번째 병, 검은 그림, 광기
16. 새로운 출발
17. 고야의 유산

참고 문헌
도판(컬러) 목록
그림(판화와 데생) 목록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



<도서 정보>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 Goya A L'Ombre Des Lumieres -


지은이 : 츠베탕 토도로프

옮긴이 : 류재화

펴낸곳 : 아모르문디

분야
예술, 예술가, 예술 이론

규격
149*211*24 mm

쪽 수 : 328쪽

발행일
2017년 8월 30일

정가 : 16,000원

ISBN
978-89-92448-63-5 (03600)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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