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글 입력 2018.04.2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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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사상가

고야의 작품을 통해 드러난 회화적 혁명은 우선, 계몽주의 시대정신의 눈부신 발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점차 교회 재산을 국유화했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으며,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가치가 더욱 대중성을 얻었다.

고야는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 당시 주요 지식인 가운데 하나로 이런 사상에 젖어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전파할 수 있었다.



전쟁을 경험하다

화가 고야는 당시 스페인의 궁정화가였으며 왕족과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을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1807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의 부패한 왕정에서 시민들을 해방시켜주기 위해 스페인에 쳐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에 불만을 가진 프랑스인은 왜 남의 나라에 들어와서 통치하냐는 뜻을 가지고 봉기를 일으켰다.

더군다나 프랑스는 부패한 왕으로부터 구해주었는데 이제 와서 자기들을 공격한다고 화가 나서 시민 군을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시민들을 학살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성을 잃었고, 점점 더 잔인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고야는 이 전쟁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야가 본 것은 이성을 잃고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이 벌이는 참극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전쟁의 참화>라는 작품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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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고야의 밝던 그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지며 다시 밝은 그림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궁정화가로서의 화려한 삶 이면에 비극을 그린 고야의 손은 솔직했던 것이다. 당시 에스파냐가 내전으로 혼란스러울 때 갑작스러운 장애까지 겹쳐지면서 그는 '검은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말년으로 갈수록 보기 힘들 정도로 공포스럽고 소름 끼치는 어두운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

고야는 미술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을 지배하던 프랑스와 민중을 억압하는 귀족에 대해 비판도 가했다. 이는 그가 정치적인 영향력까지 가졌음을 의미하는데, 그가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한 일들로 인해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그는 매우 솔직했으며 사회를 아름답게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림을 통해 현재 어떤 시대를 겪고 있는지 표현해냈고, 미래에 사람들에게도 그 시대를 예측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궁정화가의 지위에 있으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떤 특정한 상위 계층만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누고,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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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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