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분명하게 모호했던 예술가이자 사상가, 고야

글 입력 2018.04.2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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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co de Goya


보수주의, 진보주의, 낭만주의, 계몽주의… 역사는 항상 뚜렷한 소신에 초점을 맞추고 조각조각 흩어져있는 그것들을 명료하게 유형화한다. 한 인물 혹은 사상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은 셀 수 없이 다양하며 서로 대립하는 것들이 공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는 필요에 따라 원하지 않는 정보를 솎아내며 진리라고 여겨지는 것에 감춰진 그늘을 도외시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늘의 가치를 포착해낸 사람이 있다.

프란치스코 고야는, 매일 다른 세계가 생기고 무너지는 격변을 경험하며 선이라고 믿었던 것, 시대를 구원할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 역시 이면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는 궁정 화가이면서도 날카로운 사상가의 면모를 보였던 그의 작품과 생애를 면밀히 탐색하여 ‘인간’ 고야에 주목하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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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고야, <역마차 습격>



그늘을 드러내다


고야의 미술사 혹은 사상사적 가치는 그늘을 드러냄에 있었다. 예술이 이상적인 것, 지향하고자 하는 것만 포함한다면 예술은 뭘 할 수 있을까? 고야는 현실의 지저분한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인간의 실체를 이야기하였다. 고야의 목적은 악의 폭로와 그에 대한 해결이 아니었다. 그저 인간을 이야기한 것이다. 묘사가 매우 참혹하고 적나라하여 그것이 우리임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모른체 하는 것일 뿐, 인간은 모두 그 더러움을 지닌다.

말로는 고야에 대해 “인간의 세계에 지옥을 끌어들였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 내에 있는 지옥을 끌어올렸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고야의 이러한 인간 근본에 대한 회의와 묘사는 계몽주의를 신봉하다 그것의 추악한 이면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고야는 이성으로 무장한 계몽주의를 혼란을 마무리할 구원자로서 신뢰하며 계몽주의자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교회가 전쟁의 요소와 연합하여 반대 견해를 학살하고 평화와 계몽의 수단이 전쟁의 수단으로 둔갑하자 고야는 진리의 배반을 경험하고 선악의 구분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평화를 외치는 사람을 살인자와 똑같은 얼굴로 묘사한다.
 


변덕들, 전쟁의 참화들


그러나 어쨌든 고야는 계몽주의자가 맞다. 반계몽주의를 비판하고 계몽의 가능성을 믿었다. 상상과 비이성의 가치를 발견했으나 그를 신뢰하기보다 계몽주의의 범위를 넓히는 데 이를 사용한 것이다. 이성과 비이성 양자를 모두 존중했던 고야는 이처럼 인생 전반에 있어 이중성을 유지한다. 직업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일으키는 전쟁을 목도하면서도 궁정화가로서 공적인 소임을 다하고, 밤에는 비밀스러운 자신만의 공간 속에서 인간의 악마성을 그렸다. 연구를 거듭해도 물음표가 남는 모호한 생애와 사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책은 그의 판화집 <변덕들>과 <전쟁의 참화들>에 수록된 일부 도판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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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고야, <이성의 수에뇨는 괴물을 낳는다>, 변덕 43


위 그림은 <변덕들>에 삽입된 그림으로 이성과 비이성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수에뇨’는 잠과 꿈을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인데, 따라서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는 뜻과 반대로 이성이 꿈꿀 때 괴물이 깨어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그런데 고야는 이를 ‘꿈’이라고만 사용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이성의 파괴적인 이면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야는 이처럼 이성과 비이성은 대등하게 공존함을 천명한다.
   
이러한 고야의 사상은 <전쟁의 참화들>에서 수정된다. 전쟁의 참혹함은 시종일관 이중성을 유지하던 고야가 단호히 비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계기가 된다. 모호했던 그의 정서도 이에 대해선 ‘공포’라는 단일한 감정 말고는 느끼지 못한다. 전쟁은 합리화될 수 없다. 이유 없이 인간 본연의 악마성을 극대화하는 전쟁의 잔인함은 상상과 환상의 가치를 중시했던 그의 화법이 어느 순간 건조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악마가 인간 안에 실존하는데 굳이 악마를 상상해서 그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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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고야,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참화 36


죽음에 대한 한없이 무심한 그의 시선은 전쟁의 공포를 더욱 극대화한다. 일상이 되어버린 전쟁 속 폭력과 학살은 그의 기존 화법대로 거칠고 상상력 있게 재현될 필요가 없었다. 그 자체로 악을 담아내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모호한 생애


책은 고야의 판화집과 더불어 그의 사적인 생애에도 관심을 둔다. 그것은 그의 미술적·사상적 면모와 분리된 것이 아니다. 그가 남긴 2천여 점이라는 막대한 작품 개수는 그의 작품 역사가 고야의 일상뿐 아니라 내면의 변화까지 섬세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추측하게 해준다. 또한. 전쟁과 더불어 사랑의 비극적인 실패, 청력의 상실 등 격동을 거듭했던 그의 생애는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볼 때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어느 한 쪽의 소신을 곧게 세우는 자들을 예찬하는 역사 속에서 고야는 공적 화가로서, 사적 사상가로서 지녔던 모호함을 예술로 승화시켜 인간 본성을 탁월하게 드러냈다.

이 책은 ‘기회주의자’라고도 비판받으며 도외시되었던 그의 생애가 갖는 가치를 포착하여 전기의 형식을 균형 있게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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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전환되거나 이중성을 띠는 고야의 가치관은 후대가 볼 땐 소거되어야 할 역사라고도 생각될 수 있다. 역사는 그의 회화가 갖는 예술적 가치, 계몽주의자로서의 사상적 가치, 조금 더 진보적으로는 계몽주의의 이면을 확인했다는 가치만을 남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후대를 발전시키는 교훈으로 작용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본질은 계몽주의의 그늘을 탐색함을 넘어, 빛과 그늘을 모두 담아냈다는 ‘모호함’에 있다.

그는 분명하게 모호했다. 고야는 그렇게 인간 본연의 성질을 자신의 생애와 예술을 통해 증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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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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