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조촐하더라도 조약돌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기를

초행의 불안함과 첫 느낌의 순수함, 그래도 우리는
글 입력 2018.04.22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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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저녁식사


‘특별한 저녁식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정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우리 집도 그와 비슷하다. 저 정도 상황까진 아니더라도 저런 상황을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화는 없고, 서로 뭐 하고 지내는지도 모른다. 만나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듯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 대화는 오고 가는데 하는 사람만 있을 뿐,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범한 척은 독이 된다

이런 평범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극의 여백이 만들어내는 공간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지고, 몰입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를 보고 쓴 글에서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바뀌는 순간에 관해서 이야기했었다.

그 순간은 평범함이 3자가 아닌 주체가 될 때 가능하다. 무한도전의 정형돈이 그랬고, '의룡의 카리시마 군지가 그랬다. 하지만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특별해지기 위해서 평범함을 자부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므로 특별해지는 것이다. 전자는 모독이며 평범함에 대한 오독이다.

이 공연의 기획 노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가족의 "특별한 저녁식사"가 관객 여러분들에게도 정말 `특별한` 인생의 저녁식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상 크게 차렸다. 맛나게 드시라고. 연출가는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평범한 척으로 특별함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소극장에서

소극장이 감사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배우의 표정을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고, 굉장히 가까운 거리감이 극의 몰입감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소극장이기에 조심해야 할 것도 있다. 무대가 작으므로 무대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 활용하지 못한다면 티가 바로 난다. 숨을 곳이 없다. ‘특별한 저녁식사’ 는 적절한 무대 분할에 실패했다. 선우와 신랑은 주고받듯이 화장실과 방으로 숨어들고 그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초행의 불안함, 첫 느낌의 순수함

우리는 나이가 들면 연륜이 생기고 삶에 관록이 생기며 경험이 쌓여 삶의 문제에 마주했을 때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더 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반은 틀리다. 어른의 나이가 되어도 삶은 여전히 불안하며 알 수 없다. 그들도 ‘처음’ 겪는 일이며 ‘처음’ 대처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손자들이 결혼 상대를 데려오는 것도, 함께 살아온 이와 이혼하게 되는 것도 그러하다. 그 앞에서는 그들도 흔들리며 불안하다. 어른들의 삶도 초행길이다.

하지만 초행길이 마냥 불안한 것만은 아니다. 첫 느낌이란 건 아직 순수하단 것이라고 어느 한 래퍼는 말했다. 연극에서 특별한 순간은 극이 끝나기 10분 전에 찾아왔다. "결혼은 무덤이야!" 라고 외쳤던 아버지가 "결혼은 무덤이지만... 그래도! 손 안에 있는 조약돌처럼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초행의 불안함보다 첫 느낌의 순수함을 느끼게 된다.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별해지는 길

연극 ‘특별한 저녁식사’가 정말 ‘특별한’ 저녁식사가 되기 위해서는 한 상 크게 차릴 필요가 없다. 조촐하더라도 조약돌처럼 빛나는 순간을 가지게 해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때 이 연극은 말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식사를 대접하게 될 것이다.


[신승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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