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반댄스, 도시적인 춤인가요? [문화전반]

글 입력 2018.04.1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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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들어본 것 같은데 정확히 뭔지 감이 잘 안 잡히는 단어들이 있다. 내게는 어반댄스가 그런 단어였다. 친구가 어반댄스 학원을 다닌다고 말했을 때 내가 아는 춤이라고는 케이팝, 비보잉, 아니면 고전무용 이 정도가 전부였다. 당시 내 상상으로는 어반댄스는 어딘가 도시적인 느낌이 나도록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쓰고 격식을 갖춰서 출 것만 같았다.

그랬던 내가 어반댄스 동아리에서 약 2년의 시간동안 활동하면서, 그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어반댄스에 정장도 격식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어반댄스의 세계에는 경계도 제한도 없다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도 어반댄스를 통해 춤이 단지 ‘좀 추는 사람’, ‘놀 줄 아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Choreography (안무)


쓰기도 읽기도 어려운 영어 choreography(코레오그래피). 사실 별 거 아니고 단순히 ‘안무’를 지칭하는 말이다. 케이팝 안무, 아이돌 안무할 때 그 안무 맞다. 이 코레오그래피는 어반댄스의 핵심요소임을 넘어서 실은 어반댄스 자체와 같은 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반댄스란 일정한 길이의 노래에 맞춰 정해진 몸짓, 즉 안무를 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노래는 주로 팝송이나 대중 힙합을 쓰고, 한국 댄스 스튜디오의 경우에는 한국노래도 종종 쓴다. 우리나라 아이돌의 군무 역시 노래에 맞춰 정해진 안무를 추는 것이므로 어반댄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유명 팝송 코레오그래피)


어반댄스가 다른 춤 장르들과 갖는 큰 차이가 있다면, ‘정해진 안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기교상의 특징이나 형식의 제한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보잉이나 힙합처럼 정해진 노래나 테크닉이나 분위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안무가의 개성을 담을 수 있는 노래를 골라 자유롭게 창작하기만 하면 된다. 그 창작과정에서 팝핀이나 재즈댄스나 발레의 기교들을 차용할 수도 있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다보니 어반댄스 하면 누군가는 힙합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케이팝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발라드에 맞춰 구성한 안무를 떠올린다. 그만큼 광범위하고 다양한 춤을 포괄한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해서 어반댄스를 하나의 장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장르의 춤이든 그저 안무로 엮어 구성해내면 전부 어반댄스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어반댄스를 장르로서 구별해주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바로 그 ‘정해진 안무’로 인해 프리스타일의 영역이 적거나 아예 없다는 것이다. 다른 장르의 경우 고유한 스타일이 담긴 기교가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엮어서 프리스타일, 즉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펼치고는 한다. 하지만 정해진 노래에 정해진 안무를 짜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어반댄스는 그 본질상 프리스타일과는 정 반대에 있다. 마치 음악에 즉흥연주도 있지만 작곡도 하고 악보대로 연주도 하는 것처럼, 춤의 악보를 쓰고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바로 어반댄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어반댄스가 그 이름 ‘도시’와는 그다지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안무 혹은 코레오그래피라고 불러도 될 텐데 왜 굳이 어반이라는 이름을 붙여 장르로 구별까지 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모 인터넷 백과사전에 따르면 Urban Dance Camp라는 안무 중심의 수업을 하는 해외 춤 워크샵의 영상들을 보고 그 워크샵 이름을 따서 어반댄스라고 불렀던 게 시초라고 하지만 확실한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은 코레오그래피 만큼 어반이라는 이름도 많이 쓰인다는 것은 확실하다.

 
(Urban Dance Camp 영상)



자유롭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어반댄스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는 점에서 자유롭지만, 안무에 구애받는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 어느 장르보다도 창작자의 개성이 많이 담긴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면이 크다고 본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어반댄스는 말 그대로 각양각색이다. 노래의 비트나 가사를 살리는 안무가 주를 이루지만, 힙합과 같은 기존 장르의 테크닉을 차용하는 안무도 많고, 발라드에 맞춘 서정적인 무용에 가까운 안무도 있으며, 굉장히 이색적이고 기괴하다고까지 생각되는 안무도 있다. 장르를 넘나드는 춤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다양성이 주는 재미가 크다.


(그동안 봤던 코레오그래피 중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짧게는 1분, 길게는 5-6분간의 시간 동안 창의적으로 몸짓들을 엮어 잘 짜인 작품 하나를 만들어낸다. 가수의 노래, 화가의 그림, 극단의 연극처럼 안무가의 춤 또한 예술 작품이다. 그것도 우리가 쉽게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예술이다. 노래를 못해도 노래를 즐길 수 있듯, 춤을 못 춰도 춤을 즐길 수 있다. 나아가 다른 예술에 비해 어반댄스라는 예술이 가진 장점이라면, 언어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나 상징을 담는 이미지보다 몸의 움직임이 훨씬 직관적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전문적인 지식도, 깊이 있는 이해도, 복잡하고 잡다한 생각들도 필요가 없다. 그저 리듬을 타고, 선율에 몸을 맡기고, 느끼는 대로 몸을 움직이면 곧 안무가 된다. 우리의 몸 깊숙이 숨겨져 있는 ‘움직임’ 본능을 자극하는 장르이다.

물론 안무를 직접 창작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솔직히 말해 재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기존 춤 장르들의 각종 테크닉들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구현해낼 줄 알아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개성을 살릴 노래를 잘 고르고, 나아가 잘 '듣는' 능력이다. 노래의 기승전결을 파악하고, 선율의 흐름을 보고, 포인트 박자부터 세세한 디테일 박자 하나까지 모두 캐치해서 안무에 살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거기다가 너무 난해해서도 너무 뻔해서도 안 되고 기존 안무와는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창의성까지 담아야 하니, 그냥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든다고 되는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필자도 동아리 활동 당시 기존 안무를 커버하기만 했지 직접 창작해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필자가 어반댄스를 장벽 없는 장르라고 보는 건,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인데, 춤의 세계를 처음 접했던 통로가 어반댄스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어반댄스가 춤 입문에 좋은 장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유튜브에 choreography 혹은 urban dance라고만 쳐도 무수히 많은 영상들이 나오고, 그 중 익숙한 노래들도 많다. 하나씩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만큼 좋은 작품들이 많다. 이렇게 안무를 감상하다 보면 보는 눈이 길러지고, 자기 취향에 맞는 안무나 안무가, 댄스 스튜디오들도 찾을 수 있게 된다.

판소리에 귀명창이 있듯 춤에도 eye-dancer가 있다면 조금 억지인 걸까. 어쨌든 꼭 직접 창작하고 춤을 춰야만 어반댄스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몸치라고 생각하거나, 춤이란 건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아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일상적으로 노래 듣고 가끔 공연이나 전시회 가듯 춤 역시 하나의 작품으로, 하나의 예술로 즐겼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적어본다.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이니까.


(마지막 영상만은 사심가득.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안무가의 가장 좋아하는 안무이다.)


[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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