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봄이 오면 벚꽃을 피워야만 하나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4.18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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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엔딩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 버스커 버스커, '벚꽃 엔딩' 中


누군가 그랬다. 먼 훗날 봄이라는 계절이 없어진다면 봄을 모르는 후손에게 이 노래로 봄을 설명하겠다고. ‘그대여’를 외치는 달콤한 목소리와 경쾌한 멜로디, 하모니카 솔로로 시작하는 싱그러운 도입부가 따스한 봄 햇살을 연상시키며 설렘을 자극한다. 이 노래는 어느새 봄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이렇듯 봄은 시작과 설렘의 계절이다. 피어나고, 깨어나고, 거듭난다. 얼어붙은 공기가 녹아 만개한 벚꽃은 길가를 환히 밝히고 사람들은 그에 어울리는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벚꽃이 피자 지인들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 줄지어 벚꽃 사진으로 바뀌었다. SNS 타임라인도 벚꽃으로 물들고 각종 매체는 꽃놀이 축제 속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며 미세먼지로 탁해진 하늘이 무색해질 만큼 봄의 향취를 열심히 선전하였다. 짧은 개화 기간과 예쁘게 흐드러진 연분홍색으로 더욱 부각되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듯 하다. 분홍색을 특히 좋아하는 필자 역시 봄이 되면 홀린 듯 카메라를 들고 금세 질 꽃의 절정을 소중히 담는다. 하지만, 벚꽃을 즐기는 방식은 그것으로 끝이다. ‘벚꽃’이라는 콘텐츠가 전부인 축제는 딱히 당기지 않고, 외칠 ‘그대’도 없어 봄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간질거리지도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그런데 이 취향은 시도 때도 없이 꾸짖음을 당한다. 봄에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지 않아서, 사랑하지 않아서, 꽃을 즐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졸지에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처럼 봄과 꽃 그리고 사랑을 줄줄이 엮는 알레고리는 우리나라의 보편적 문화가 되었고, 매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를 열심히 퍼 나르며 사람들을 문화에 구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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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을 봄에 비유한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의 작가 이상화



봄의 역사


자연물이 깨나는 봄의 생동감 있는 이미지는 예부터 존재했다. 근현대사 문학작품을 들여다보면 역사적 해방을 봄에 비유하는 경우도 자주 발견된다. 차가운 겨울을 극복하고 따뜻한 싹을 틔운다는 봄의 서사는 예로부터 늘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봄에 핀 벚꽃을 보며 풍류를 즐기는 문화도 일제 강점기 이후 시작된 것으로 이는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봄에 사랑을 기다리는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지금도 여전히 ‘봄’ 하면 떠오르는 노래인 1930년대 가곡 ‘봄처녀’의 가사를 들여다보자.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마음에 꽃 대신 사랑을 피운다는 내용의 노랫말은 지금의 대중가요와도 비슷한 정서를 담는다. 이렇듯 봄과 벚꽃을 보면 연정을 품고 즐거워하는 것은 사실 사람들의 본디 습성이었던 것 마냥 오래전부터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하고 있었다.

어찌 됐건 기분 좋은 상징이며 관습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 더욱 메말라진 도시 속에 핀 꽃은 현대인들에게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해준다. 짧아지는 봄 가운데서도 매년 찾아오는 그 애틋함 때문일까. 이 문화는 시대를 거치며 그 몸집을 거대하게 불린다. 봄과 관련된 노래 중 사랑 노래가 아닌 것을 찾기 힘들고, 이 좋은 날씨에 함께 벚꽃을 즐길 연인이 없는 것은 비극이 된다. 편승하지 않는 자들에게 가차 없이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는 이러한 문화를 우리는 과연 ‘즐기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향유하지 않는 자를 압박하고 주변화하는 문화는 문화보다는 사실상의 폭력에 가깝다. 지금의 봄을 찬미하는 문화는 이에 자유롭지 않다. 옛사람들이 봄을 ‘즐긴’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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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사이트에 인기순으로 ‘봄’을 검색하면 나오는 노래들



봄의 우월 관계


재치 있는 가사로 인기를 끌었던 10cm의 ‘봄이 좋냐??’는 다디단 사랑 노래가 난무하던 봄철 가요계에서 독특하게 ‘솔로’의 입장에서 바라본 봄을 노래하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

- 10cm, '벚꽃 엔딩' 中


애인이 없는 사람이 봄을 만끽하는 커플들을 부러워하며 악담을 퍼붓는 내용의 가사는 시종일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이 상황이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소망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그 소망을 이룬 사람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것은 인간 보편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애인이 없는 자를 낙오자로 규정하고 애인과 벚꽃을 즐기는 사람에게 열등감을 표출하는 다소 주관적인 정서가 국민적 공감을 산 것은, 해당 시대를 지배하는 문화에 그러한 정서가 녹아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서두에 언급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역시 온전히 봄을 즐기지 못하는 상태에서 차라리 벚꽃이 다 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만든 노래라고 한다. 암묵적으로 사랑과 즐거움을 향유하는 자는 우위에, 그러지 않는 자는 열위에 배치된다. 우리나라가 봄을 노래하는 방식에는 이렇게 인위적으로 설정된 우열 관계가 숨어있다.
 


봄철 매체의 시선


현대인의 삶을 구석구석 파고들어 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매체의 발달은 이러한 문화를 창출하는 데 일조했다. SNS의 대중화로 사람들이 쉽게 일상을 공유할 수 있게 되자 개개인이 즐기던 문화의 양상은 서로 비슷해졌고, 획일화되었다. 모두가 즐기는 문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자연히 소외감과 박탈감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타인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는 것이 너무나도 쉬워진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즐거움’은 콘텐츠가 되었다. 지난해 거세게 유행했던 ‘YOLO(욜로)’ 열풍을 기억하는가. 자유로운 소비를 지향하자는 움직임은 절약을 도외시하는 분위기를 형성했고 유행을 따라 우후죽순 생긴 여행 콘텐츠들은 오히려 여행할 여유가 없는 소시민들에게 박탈감을 주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라는 메시지마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에 종속된 것이다. 매체들은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말자고 외치면서 사실 더욱 강력한 시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매체는 봄에서 사랑, 꽃과 즐거움을 연상하는 메커니즘에 사람들을 종속시킨다. 연애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모태솔로’, 야외 활동보다 집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집순이·집돌이’,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아웃사이더’ 라는 이름을 붙이며 기본값에서 벗어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일순간에 재단하는 파괴력을 행사하는 매체는 제멋대로 정의한 봄의 자유를 강요한다.
 


꽃을 피워야만 하나요


이 상황에서, 벚꽃을 보고 짓는 웃음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어느새 ‘즐겨야만 하는 것’을 넘어 ‘즐거워야만 하는’ 의무까지 지게 되었다. 매체가 문화생활 및 야외 활동과 사랑을 권유하는 것에는 사실 ‘즐거움’이라는 긍정 정서를 강제하는 의도가 숨어있다. 하지만 봄에도 피지 않는 꽃이 있듯이, 인간도 즐겁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감정의 폭마저 강요하는 문화는 각자의 계절을 갖는 인간을 모두 천편일률적인 기준 안에 묶어버린다. 인간의 겨울은 봄을 향하는 발판의 의미만을 가지며 그 존재 자체가 무시된다. 왜 우리는 봄이 오면 꽃을 피워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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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봄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만큼 주관적인 것이 있을까? 아름다움을 느끼는 방식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봄의 화창한 햇살에서도, 가늘게 내리는 부슬비에서도, 심지어 살을 에는 꽃샘추위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떼 지어 만개하는 꽃이나 홀로 피는 꽃, 피지 않는 꽃과 꽃이 아닌 것 이 모든 것이 있기에 봄은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은 봄을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문화의 이름을 하고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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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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