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2018.04.05 - 04.15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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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예술센터에서 막을 연 연극 <처의 감각>은 이번 공연이 첫 공연이 아니라는 점부터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 년 전, 각색 되어 <곰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시즌 프로그램에 올랐었다는 원작 <처의 감각>. 그만큼 원작이 풍부하고 연출가들의 연출 욕망을 끌어올리는 글이라는 증거겠지. (뒤에 말하겠지만, 궁금한 맘에 희곡집도 구매해 읽어보았다. :-) ) 특히나 같이 보러 간 지인이 <곰의 아내>를 보았던 지라 비교해보며 연극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재미있었다.

   연극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연출이 굉장히 감정적이고 개성 있었다는 것. 과장스런 목소리와 우스꽝스러운 몸짓 등이 귀여웠다가, 그들이 울음을 뱉어낼 땐 어느새 처절해지곤 했다. 그 온도의 변화가 들쑥날쑥 기복이 컸던 것은 최소한 나에게는 묘한 흥분감을 주어, 호감이었다. 신화적인 모티프와 발상이 정극 혹은 현실극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져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보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함께 들썩이게 한 데는 연출적 기법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촉진한 건 단연코 무용과의 화합이었다. 곰아내 역에 현직 무용수, 그의 남편 역에 전직 무용수를 뒀던 건 아주 인상 깊었다. 현대무용과의 조합은 곳곳의 장면에서 대사와 숨소리를 대신해, 그보다 더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극을 전달하였다. 말로는 감히 형용할 수 없이 몸의 선과 손끝의 유연함에서 마음으로 와닿는 그런 것. 덕분에 한 동작도 놓치고 싶지 않던 나는 러닝 타임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훅. 집중해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실제로 러닝타임이 긴 연극이었는데, 전혀 체감상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아쉬웠던 건 연극이 처음이었던 무용수의 대사로서 전해지는 감정이 그녀의 주특기인 무용에서보다는 덜 느껴졌던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감각'을 가진 배우가 필요했다는 연출의 인터뷰가 나에게 반갑게 느껴지는 데는 이번 연극에서 예술장르의 화합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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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은 희곡을 그대로 따라갔다. 각색본은 결말로 향해가는 희/비극적 방향성이나 남편의 캐릭터성이 달랐다는데, 원작을 읽어보니 이번 연극은 텍스트를 그대로 녹여내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연극의 결말에 다다라서는 의문이 가는 지점들이 꽤 툭툭 튀어나왔다고 기억한다. 아내의 감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는 전체를 아우르는 극의 목적은, 극 속에서 아내의 감각이랄 게 무엇이라는 말인지 정립되지 않아 혼란스러웠고, 그것이 약자라는 점은 더욱이 의문을 돋웠다. 같은 맥락에서 극이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는 웅녀신화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짐승과 사람의 삶을 단적으로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려 했던 걸까.

   그렇다해도 가장 주가 됐던 모티프가 힘을 잃어간다는 건 보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허무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이러한 지점들이 왜 아쉽게 다가왔나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텍스트에서 연출적인 방향으로 넘어오면서인 것 같다. 그러니까, 글을 읽으며 소화할 때랑 누군가가 직접 목소리로 들려줄 때랑 받아들이는 느낌과 분위기가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번 경우가 그랬다. 연극에서는 도통 낯간지럽고 이해가 안 가던 대사들, 섹션의 변덕들이 텍스트로 읽을 땐 그 나름대로 고개가 끄덕여졌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극이 내게 매력적인 극으로 남았다는 건, 분명히 이 극만의 개성이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탄탄하고 기발했던 이번 연극을 시작으로 고연옥 작가와 김정 연출이라는 애정하는 작가와 연출이 또 한 명 생긴 것 같아 반갑다! 유쾌와 처연함의 경계에서 넘나드는 짜릿함을 맛보고 싶다면 이번 연극을 자신있게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