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출구 없는 출구 찾기 : 연극 < 성 The Castle >

연극 < 성 The Castle > 리뷰
글 입력 2018.04.12 21:3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출구 없는 출구 찾기

악몽이다. 내게 카프카의 세계는 그렇다. 아마 많은 이들도 이렇게 생각하지 싶다. 카프카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꿈같은 상황에 부닥쳐 있다. 그들을 따라가 보시라. 에이 말도 안 돼, 이건 꿈이야, 그것도 끔찍한 악몽! 이라며 고개를 휘젓다가도 “어라?”, 도끼로 머리를 가르는 듯한 충격에 얼얼해진다.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꺼림칙한 꿈에서 깨어나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커다란 벌레로 변한 것을 알게 되었다.” 「심판」의 요제프 K는 “무슨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다. 아, 이 얼마나 끔찍한 악몽이란 말인가.


[국립극단 포스터] 성 The Castle_180323-180415.jpg
 

악몽은 우리를 안온하게 만들어주는 경계 내부에서, 갑충과 피고인 취급을 받는 경계 밖으로 단숨에 내쳐지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악몽은 일상성에서의 출구다. 그러나 카프카는 이 출구의 출구를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악몽에서 깨길 바라지만, 그들은 악몽 안에 갇히고 만다. 출구의 출구를 찾아 헤매던 인물들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되는 거다. 갑충이 된 그레고르 잠자는 방에서 홀로 죽어가고, 요제프 K는 칼로 심장을 난도질당한 채 죽는다.

“문학 속 인물이라뇨. 그런 것이… 되고 싶겠습니까?”라는 소설가 황정은의 반문은, 카프카의 세계 앞에서 더욱 절박한 물음표로 구부러진다. “카프카의 소설 속 인물이라뇨. 정말, 진심으로, 그런 것이…되고 싶겠습니까?”

 

달려갈수록 멀어지는 세계

카프카의 마지막 소설 『성』 역시 출구 없는 출구를 구축한다. 다만 K는 급작스럽게 벌레가 되지도, 체포당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이방인이라 여기는 마을에 제 발을 스스로 들여놓는다. K는 성으로 향하고자 하지만, 그가 향하려는 성도, 그를 이방인 취급하는 마을도 모두 당혹스럽긴 매한가지다. 종이 성에서 울리는 건지, 성이 있다고 하기 위해 종을 치는 건지, 마을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시간마저 한 달가량 지난 것 같은데 일주일 밖에 안 지났단다.

못 미덥기는 우리의 안내자 K도 마찬가지다. K의 욕망이 작품을 감싸야 하건만, 그렇다 하기에 K는 성에(혹은 성 사람들에게) 다다를 수 있는 순간마다 엇나간다. 우리는 K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에 가야 한다’라는 K의 집착만 작품 내내 생동한다는 것뿐이다.


1.jpg
 

불확실로 가득한 세계를 횡단하는 것. 알 수 없는 인물들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성을 희구하는 것. 카프카가 선사하는 마지막 악몽은 이것이다. 심지어는 텍스트의 출구마저 없다. 카프카의 죽음으로 미완이 된 『성』은 독자들에게 영원히 출구 없는 출구로 남은 것이다. 이 미로 속에서 독자와 K는 무엇을 이해하고자 할수록 미끄러진다. 핵으로 달려갈수록 점점 멀어진다. 미완마저 악몽이 된, 이 기묘한 텍스트는 카프카가 죽은 지 100여 년 가까이 되는 2018년에도 여전히 문제적이다.


2.jpg
 

이 문제적 텍스트를 어떻게 무대에 담을 것인가. 텍스트 속 불확실성을 어떻게 주조할 것인가. 국립극단의 착상은 심플함과 친절함이었다. 이 작품은 원작의 서술과 사건을 비교적 충실히 담아낸다. 그러면서도 500페이지에 달하는 원작에서, 인물들을 줄이고 사건을 축소해나가며 작품의 부피를 성실히 줄여나간다.

작품 속 마을의 분위기는 단연 압권이다. 과장된 걸음걸이와 음산한 음악으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주조해내는데, 결과적으로 마을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기묘해진다. 특히 박동우 디자이너의 무대는 차가우면서도 질서정연한 콘크리트 벽으로 팽배한 관료주의와 비실용성을 이미지화한다. 이 속에서 K는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가 된 양, 자신을 이방인이라 취급하는 세계-기괴하고 경직된 마을-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데 성이 없어도 좋다. 마을의 기이함과 강박적으로 들려오는 종소리는 K의 불안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작품은 성 없이, <성>의 분위기를 표현해내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럼 성은 무엇인가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다. 이에 관해선 각색의 공을 높이 살만한데, 원작의 결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연극만의 재치를 채워 넣었다. 카프카의 서술은 이미경 각색의 손을 통해,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무대화된다. 아쉬운 걸 하나 꼽자면, K와 프리다가 처음 만난 여관 시퀀스 정도. 심플하고 친절하게 풀어내다가 갑자기 툭, 붉은 사이키 조명과 노골적인 문란함이 연출된다. 이는 감각적이라기보단 투머치에 가까운데, 관객의 입장에선 "굳이" 싶은 거다. 이 연출 없이도 성과 여관은 충분히 문제적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오히려 이 과잉은 마을의 기이하고 묘한 분위기만 헤집어 놓는다.


3.jpg
 

마부의 집으로 들어서는 장면에서 미완으로 끝나는 소설과 달리, 연극은 K가 "잘됐군. 성에 갈 이유가 분명해졌어"라 말하며, 출구 없는 출구, 미로 같은 여정을 마지막까지 충실히 이어낸다. 미완의 문제성은 다소 희미해졌을지 몰라도 연극 <성>다운 깔끔한 결말이다.


4.jpg
 

카프카에게로 심플하고 친절하게 안내한 <성>을 만나고 나면, 관객의 머리 위엔 해소되지 않은 물음표 하나가 떠오를 거다. 아니, 그래서 성이 뭔데? 성에 사는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 성에 사는 사람들에게 잘못 보이면 큰일 난다. 그중 성에 사는 사람을 직접 만나본 사람은 몇 안 되는 희귀종이다. 비서의 비서까지 있는 마당에 성과 마을은 분리된 것 같기도 또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 같기도 하다. 다층적으로 읽을 수 있는 카프카의 서술로 인해, 이 작품의 성 또한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연출은 성이 이데아라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이 해석 역시 작품 속에서 명징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5.jpg
 

어쩌면 성은 백작의 이름인 베스트베스트처럼 이름만으로 제 소임을 다하는 기호일 수도 있겠다. 성이 뭘까 고민하다 보면, 우리 역시 성으로 향하는 미로 속에서 헤매게 된다. 우리도 다다를 수 없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무엇 하나 뻥 뚫린 출구를 열어주진 못한다. 아, 그렇담 작가 카프카가 고안한 <성>은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성이 무엇이건 간에 성으로 다다르려 기꺼이 헤매는 것. 그게 K의 여정이고 곧 인간의 삶이라는 것.

질서정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무질서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도 규칙적인 이 마을에서 K는 불안감을 느끼고 자연히 소외된다. 그리고 K는 그를 불렀으나 그를 책임져주지 않고 이방인 취급이나 하는 세계 속에서, 기꺼이 그를 부른 곳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것도 끊임없이. 다가가려다 멀어지고 차가운 눈 속에 파묻혀도 성에 대한 그의 열망은 막을 수 없다.



기꺼이 오늘도

까뮈의 주장을 빌려볼까. 내가 어쩔 수 없는 곤궁한 조건이 있다. 시지프스가 절벽 위로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처럼 어찌할 방도 없는 조건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세 가지 중 하나다. 첫째, 바위 미는 걸 포기하고 자살해버리는 것. 둘째, 종교에 귀의하는 것. 셋째, 바위 미는 걸 수용하며 그대로 맞서는 것. K는 고통을 수용하며 끝까지 성에 다다르려 한다는 점에서, 세 번째 시지프스라 할 수 있겠다. 그가 성에 도착했는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는 여전히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거다. 미완의 소설 속 K도, 다시 성으로 향하려는 연극 속 K도, 부조리한 삶의 조건 속에서 헤매길 선택한다.


6.jpg
 

“카프카의 소설 속 인물이라뇨. 정말, 진심으로, 그런 것이…되고 싶겠습니까?”라고 반문했지만, 배우 박윤희의 소탈한 연기에 힘입어 K는 마치 나처럼, 당신처럼, 우리처럼 느껴지더라. 지금도 바위를 밀어 올리고 있는 시지프스도, 아직도 성으로 향하려는 K도, 끊임없는 불안과 어긋남 속에서도 오늘 하루를 살아낸 우리도, 조금씩 바위를 깎으며, 성으로 향하는 길목에 발자국을 찍으며, 출구 없는 출구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 카프카의 미로가 현재 우리의 삶과 맞닿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은 무엇일까 궁금해하기 이전에, 성을 찾아 헤매는 우리는 무엇일까 질문해봄 직하다. 아름다운 수식어와 젠체하는 문장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믿을 것 하나 없는 세계에서 이 언어가 다 무슨 소용이랴. 그래서 K를 향한, 그리고 길잃은 자들을 향한, 여주인의 말을 빌리며 글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대체 당신은 무엇이죠? (중략) 당신은 성 사람도 아니요, 그렇다고 마을 사람도 아니에요. 요컨대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유감스럽게 당신은 역시 그 무엇이기는 해요.”

(프란츠 카프카, 『성/심판/변신』, p.58)




공연정보


 


INTRODUCTION


성 The Castle

공연시간
평일 7:30PM, 주말 3PM(화 쉼)

소요시간
150분 예정(휴식 15분 포함)

관람연령
17세 이상 관람가(고등학생 이상)

입 장 권
R 5만원 | S 3만 5천원 | A 2만원

예매문의
1644-2003 | www.ntck.or.kr


CREATIVE STAFFS

원작_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각색_ 이미경

연출_ 구태환


무대_ 박동우  ㅣ 조명_ 구태환 ㅣ 의상_ 오수현 ㅣ  음악_ 김태근
움직임_ 남긍호 ㅣ  분장_ 임영희 ㅣ  소품_ 송미영


출연
K役_ 박윤희   프리다役_ 정새별   가르데나役_ 박현미
올가役_ 장지아   바르나바스役_ 홍아론  아말리아役_ 강해진
예레미아스役_ 조판수  아르투어役_ 박경주  게어슈테커役_ 김정환
에어랑어役_ 최지훈  촌장役_ 김희창   교사役_ 김성철
슈바르처役_ 임준식  페피役_ 박가령 
코러스(농부, 하인 외)役_ 권형준, 조성국, 이동규, 강주희, 고정선





프레스 명함 업로드.jpg


[김나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