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네가 나를 바라보는 한 나의 삶은 끊임없이 요동칠 것이다 : 연극 < 하이젠버그 >

글 입력 2018.04.11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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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하면 말이에요. 
그것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빨리 그쪽으로 가고 있는지 
알아내는 건 불가능해요."

George Burns 대사 중


수능 국어 지문에도 등장하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생각보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두 값 모두를 정확하게 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이는 거시세계와는 아주 다른 미시세계만의 특징 때문이다.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관측하기 위해 현미경에서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하면 입자의 운동량에 영향을 주게 되고, 반대로 운동량을 정확하게 관측하기 위해 긴 파장의 빛을 사용하면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가 없게 된다. 이처럼 불확정성원리는 미시세계의 아주 작은 입자들의 경우 관측 행위가 관측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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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실이 비단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입자들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 마음에도 불확정성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시선은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은 많은 경우 타인의 시선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는다. 직접적으로는 내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간접적으로는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반대로 우리의 시선 역시 우리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타인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가장 1차적이고 물리적인 예시로, 우리가 지나가는 행인 한 명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할 일이 없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혹은 순수한 호기심에 그를 관찰하는데, 관찰당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사람의 시선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뭐지, 기분이 나쁜데?’ 혹은 ‘옷이 이상한가?’ 아니면 ‘나한테 관심 있나?’ 까지. 우리가 괜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밖에서는 아무데나 시선을 두지 않는 것도 어쩌면 시선의 예측 불가능한 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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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개입은 존재의 개입과도 같다. 내가 남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작은 부분이나마 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다. 하물며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경우 내가 그들의 삶에 많이 개입하는 만큼 그들도 나의 삶에 많이 개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타인이 많이 개입하면 할수록 내 삶의 불확정성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산다면 삶은 대체로 내가 생각한대로, 상당 수준의 안정성을 갖고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하다못해 무인도에서 산다고 해도 동식물이나 기상현상 등의 다른 존재들에 의해 내 삶의 불확정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타인의 존재까지 끼어들 경우 그 불확정성은 무시무시하게 치솟는다. 왜냐하면 타인은 나와 같이 예측 불가능한 블랙박스이기 때문이다. 그 타인이 테레사 수녀인지 사이코패스인지 아니면 두 모습을 다 갖고 있는 평범한 인간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아낼 도리가 없다.

그런데 그 타인과 ‘관계’까지 맺는다면, 그때부터 내 삶은 불확정성의 홍수에 던져지는 셈이다. 원래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 항상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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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하이젠버그 콘셉트 촬영, 방진의(좌), 정동환(우)
 

그런데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항상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타인이 주는 불확정성이 곧 우리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한대로만 흘러가면 우리는 자살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세상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 없기 때문이다. 불확정성이 있어야 우리는 변화하고, 변화하는 자신을 보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내재된 무한한 가능성을 직감한다. 그리고 이러한 잠재적 가능성이야말로 살아가는 동력이 된다. 반면 예쁘게 프로그래밍 된 시스템 안에서만 살아간다면 우리는 살아갈 이유가 없는 기계로 전락할 것이다.





타인, 관계, 불확정성, 그리고 이로 인해 언제나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는 우리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연극이 여기 있다. 불안한, 그래서 자유로운 나의 불확정성과 대면할 수 있는 연극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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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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