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을 위한 바흐를 연주하는, < 인터내셔널 마스터즈 시리즈 : 콘스탄틴 리프시츠 리사이틀 >

글 입력 2018.04.0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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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목요일. 바흐를 듣기 참 좋은 날이다.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 덕분에 비가 와서 다소 축축 처지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버틸 수가 있었다. 저녁시간에 만날 리프시츠의 바흐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 같은 날이면 피아노로 듣는 바흐보다 하프시코드 사운드로 듣는 바흐가 더 와닿겠지만, 뭐 어떤가. 바흐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물론 연주자인 콘스탄틴 리프시츠에 대한 기대감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 Programs >


건반악기를 위한 프랑스 모음곡 제2번 c단조, BWV813(BC L20)
French Suite for Keyboard No.2 in c minor, BWV813(BC L20)
Allemande
Courante
Sarabande
Air
Menuet
Gigue


건반악기를 위한 영국 모음곡 제2번 a단조, BWV807(BC L14)
English Suite for Keyboard No.2 in a minor, BWV807(BC L14)
Prelude
Allemande
Courante
Sarabande
Bourrée 1
Bourrée 2
Gigue


I N T E R M I S S I ON

건반악기를 위한 프랑스 모음곡 제4번 E-flat장조, BWV815(BC L22)
French Suite for Keyboard No.4 in E-flat Major, BWV815(BC L22)
Allemande
Courante
Sarabande
Gavotte
Air
Menuet(only in second version)
Gigue


건반악기를 위한 영국 모음곡 제5번 e단조, BWV810(BC L17)
English Suite for Keyboard No.5 in e minor, BWV810(BC L17)
Prelude
Allemande
Courante
Sarabande
Passepied 1 en rondeau
Passepied 2
Gigue





보통 음악회를 다녀오고 나면 프로그램 순서대로 각 곡에 대해 개인적인 소회를 쓰는 편인데, 이번에는 좀 다르게 인상적인 점들 위주로 하나씩 소감을 풀어보고자 한다.

먼저 콘스탄틴 리프시츠, 20년만에 내한하여 나로서는 처음 볼 수밖에 없는 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정말 납득이 가는 연주였다. 내가 바흐를 잘 알기 때문에 그의 연주가 납득이 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가 바흐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것이 충분히 납득가는 연주였다는 의미다. 리프시츠는 바흐를 편하게, 그리고 듣기 쉽게 연주해 주었기 때문이다. 쉽게 연주하는 것이 어려울 것임에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는 너무나 쉬워 보였고 무엇보다도 듣기 편했다. 바흐라서 힘을 준 연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작정 가볍게 친 것도 아니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그런 연주였다. 리프시츠 스스로가, 오랜 시간 바흐를 연주해왔기에 자신에게는 바흐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 숨쉬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는데 그 표현이 말 그대로 납득이 가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또한 리프시츠의 바흐는, 대부분의 경우 다소 각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바흐의 작품에 기름칠을 하여 매끈하게 만든 그런 연주였다. 단순히 작품들을 둥글고 부드럽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는 이번 연주에서 분명히 살아있는 듯한 바흐의 세계관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첫 곡보다, 두번째 곡에서부터 보여주었다고 느꼈다. 그건 마치, 개인적인 경험을 빌어 표현하자면,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페트루슈카를 들었을 때 느낀 그 전율에 가까웠다.

페트루슈카는 개인적으로 스트레스 받을 때 자주 듣는 레퍼토리 중 하나다. 음이 시작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묘한 긴장감과 더불어 쉴새 없이 쏟아지는 음표의 천국은 나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래서 항상 기교적인 면이 도드라지는 피아니스트의 페트루슈카 연주를 즐겨 들었다. 그러다 손열음의 연주를 문득 듣게 되었는데,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는 페트루슈카를 처음으로 느낀 것 같았다. 이전에 듣던 연주가 모자랐던 것이 아니다. 다만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음 하나하나에 부여하는 그 생동감과 작품 세계의 스케치가 너무나 아름답게 울려서 내 마음에 와 닿은 것이다. 그저 기교와 분위기만을 즐기던 나에게 작품의 세계관을 그리듯 들려준 손열음의 연주처럼, 콘스탄틴 리프시츠의 바흐는 바흐의 세계관을 마음으로 덧그려가는 게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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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감상에 이어 연주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면, 이번 리사이틀 프로그램의 특징은 수미상관식이었다는 점이다. 단조로 시작해서 단조로 끝났다. 그 사이의 두 곡은 장조로 넣었지만 결국 프랑스 모음곡 2번 c단조로 시작해 영국 모음곡 5번 e단조로 끝내는 그 정서는 사실상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이번 연주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인터미션 직후에 있었던 프랑스 모음곡 4번이었다. 부드럽고 인상적이게 시작하는 프렐류드는 도입부부터 바흐의 장조 곡이 가지는 그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느낌을 물씬 풍겼다. 알라망드도 마찬가지였다. 나긋나긋한 사라방드와 더불어 긍정적인 가보트까지 그 분위기가 이어지고 아리아에서는 활동적인 면모를 한껏 보이며 부지런히 음을 쌓았다. 다소 경건하면서도 밝은 분위기를 이어나가는 이 곡은 대미를 장식하기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인터미션 직후로 배치했는지 아쉬울 정도로 좋은 연주였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이번 콘서트는 마지막 곡인 영국 모음곡 5번 e단조를 위한 무대였다. 첫 도입부인 푸가가 시작되자마자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푸가로 구성된 이 프렐류드는 단언컨대 이번 공연의 클라이막스였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아름답고, 서정적이고, 그러면서도 다소 미스터리한 분위기에서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푸가 선율은 인생 그 자체를 연상시키는 연주였다. 심지어 이번 공연 중에 단 한 번도 곡 사이에 텀을 두지 않았던 리프시츠가, 이 푸가가 끝나고 나서 잠시 숨을 골랐을 정도였다. 그만큼 이번 공연 중에서 가장 몰입도가 높았고, 그 어느 대목보다도 바흐만이 남은 연주였다.

뒤이은 알라망드와 쿠랑트, 사라방드는 그 정서를 이어가지만 프렐류드에 비하면 다소 읊조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지지만 서글픔 정도에서 그치는 정서였다고 할까. 그러나 리프시츠는 파스피에에서 다시금 분위기를 쇄신했다. 이전의 춤곡들에서 이어져 온 가라앉은 분위기를 가볍게 전환한 것이다. 그러나 가볍게 전환했다고 표현했지만 그의 연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극명한 대비로 아주 인상을 남기는 대목이었다. 그 분위기를 이어받은 지그는 또다시 수미상관을 생각나게 하는 분위기였다. 푸가에서 느꼈던 그 은근한 고뇌와 미묘한 분위기가 대위법으로 극대화되면서 이 악장은 수수께끼처럼 마무리되었다. 심장을 두드리고 간 것 같은, 리프시츠의 마지막 타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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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프로그램이 끝나고, 콘스탄틴 리프시츠는 총 두 곡의 앵콜곡을 연주했다. 앵콜곡을 본격적으로 연주하기에 앞서서 그는 피아노 뚜껑 받침을 높였는데, 도대체 무슨 곡을 연주하려나 기대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짧고 굵게 객석을 휘몰아치고 간 그의 선곡은 매우 현대적이고 연주는 전위적이었다. 작품은 바르토크의 불가리안 리듬의 무곡 Sz 107(BB105) 중 무곡 1, 2번이었다.

바흐를 연주한 후 자신있게 보여주는 앵콜에 감탄했다. 리프시츠는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그럴 만한 연주였다. 본 프로그램동안은 다소 절제된 듯 음악 자체에 스며든 호흡과 같은 비르투오소를 보여주었다면 앵콜에서는 이를 폭발시켰다.

이 날을 기다리면서 종국에는 바흐만 남는 연주를 듣기를 원했다. 정말 바흐만 남았다기엔 사실 리프시츠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바흐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푸가가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마지막 곡이 단순히 대미를 장식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이번 공연 자체를 위한 연주였으니 말이다.

만족스러운 만찬에 이어 디저트까지 아주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공연이었다. 이번 무대에서 희극과 비극을 모두 보여준 리프시츠의 연주는 그야말로 인생의 축약판이 아닌가 싶다. 아니, 바흐가 그러하기에 리프시츠가 그것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금 그의 무대를 보게 되는 게 언제가 될 지 기약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그가 연주하는 또다른 바흐를 들으며 인생의 또 다른 단면을 덧그려보고 싶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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