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아는 '춘향'이거나, 우리가 모르는 '춘향'이거나

글 입력 2018.04.0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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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아뜨르 봄날의 2018년 신작 <춘향>
장소 | 예술공간 서울
일시 | 18.03.21-04.01
   


SYNOPSIS


전라도 남원, 이몽룡이 방자를 데리고 경치 구경을 하던 중, 그네 타는 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고 둘은 뜨겁고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몽룡의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치고, 결국 중앙의 관직을 받게 된 아버지를 따라 이몽룡은 춘향을 남겨둔 채 서울로 떠난다.

그 빈자리에 찾아온 중년의 변학도, 그는 몽룡보다 더한 열정과 진심으로 춘향에게 구애를 한다. 춘향은 그의 맑고 뜨거운 눈매에 흔들린다.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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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춘향> 티켓


우리가 알고 있었던 ‘춘향’이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춘향은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이루어 내는 진취적인 인물이다. 변 사또의 구애를 거절하며 오직 몽룡만을 기다리고 사랑하는 지조와 정절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몽룡은 춘향과 사랑하게 되면서 백성의 고통을 감싸 안고 탐관오리를 처벌하는 모범적인 관리의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변 사또는 어떠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남아있을까. 전형적인 부패한 관리, 즉 악인의 모습일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듯 말이다.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이 이야기에는, 인물의 정체성이 분명하다. 어쩌면 인물의 ‘선’과 ‘악’이 분명하다.

*

하지만 완전한 ‘선’만을, 혹은 완전한 ‘악’만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 있을까? 완전히 선하지도 완전히 악하지도 않은 인간의 깊은 내면에서 일렁거리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때론 악한 감정이 강해지기도, 때론 선한 감정이 강해지기도, 또 때론 악하다고 그렇다고 선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감정이 일렁거리는 그 깊숙한 골짜기에서 살아가는 인간만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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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공간 서울>,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길
 

연극 <춘향>은 마치 이런 물음으로부터 시작하는 듯했다.

16살 어린 소녀, 춘향의 마음은 항상 한 곳만을 향하지 않았다. 몽룡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몽룡의 빈자리에 대한 상실감과 박탈감 때문인지, 적극적이고 진심어린 애정을 표하는 변 사또에게 마음이 열린 것인지, 정확히 그녀의 마음을 알 순 없지만, 춘향의 마음은 변 사또를 향해 일렁거렸다.

더 이상 춘향은 몽룡만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던 열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랑,이별,만남에서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다. 단지 그 감정에 솔직했다. 이 사회가 여성의 지조·절개·정절을 강조하며 고착화된 프레임을 씌우는 것에 대해 담담히 맞서는 듯했다.

어쩌면 이것이 2006년 창단 이래 통렬한 블랙유머를 동반한 강렬하고 감각적인 페이소스를 일관되게 추구해 왔다는 <떼아뜨르 봄날>만의 색이 아닐까.

  
마음에 든다. 안해봐도 알아
어떻게?
그놈이 그놈이야
 
연극 <춘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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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 무대 중 연주 악기의 모습.

 
<춘향>은 미니멀리즘 했다.
무조건 단순하다는 뜻이 아닌, 간결하지만 성숙했다. 담담하지만 깊었다. 작고 어두운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자면, 그 사이엔 거리감이 없었다. 배우들의 아주 미세한 숨소리도, 몸짓도, 감정도 느껴질 만큼 가까웠다.

<춘향>은 어떠한 화려함이 없었다. 춘향이 그네를 타는 장면에도 ‘그네’라는 물질적 소품이 등장하지 않았다. 춘향을 앞세운 5명의 배우들이 몸이 왼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흔들며 ‘그네를 탄다’라는 행동을 묘사했다. 배우들의 대사 전달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높낮이의 변화 혹은 억양 변화를 쉽게 볼 수 없었다. 마치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아니, 그냥 혼잣말을 하듯 툭툭- 내뱉듯 관객을 향해 대사를 슬쩍- 밀어 넣었다. 라이브 음악 또한 화려하다거나 웅장하지 않았다. 연주자 두 분이 무대 끄트머리에 앉아 각기 기타와 퍼커션을 연주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연극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과거에 살았던 춘향의, 몽룡의, 월매의, 변 사또 등의 격동적으로 일렁이고 출렁이는, 때로는 어떠한 물결도 치지 않는 너무나 고요한 감정의 바다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 바다에 놀러온 나를 해변가에 앉히고,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감정을 담담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았다. 항상 희로애락의 극단적 감정 변화가 고스란히 들어가고, 유쾌한 웃음을 강조하는 연극을 자주 봐와서인지 처음에는 <춘향>이 너무 낯설었다. 하지만 연극이 끝난 후, <춘향>은 나를 깊은 사색으로 몰고 갔다.

그래서 이 연극은 낯선 방문자로서 문을 두드렸지만 어느샌가 나의 방 안에 들어와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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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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