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몰랐던 춘향 [공연]

글 입력 2018.04.0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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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을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으로 들어선 순간 조금 놀라웠다. 별다른 무대장치나 소품이 전혀 보이지 않고 무대 오른켠에 연주자 두 분이 계실 뿐이었다. 과연 어떤 공연이 펼쳐질지 심각하게 기대가 됐다. 곧바로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텅 빈 무대의 의미를 깨달았다. 배우들이 걸어나와 아무런 대사도, 소리도 내지 않은 채 한걸음 한걸음 신중히 움직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대 위 배우들의 움직임이 더 뚜렷하게 보였고 보는 사람들마저 숨을 죽이게 했다. 맨 앞에 선 춘향의 독백이 시작되며 깜빡임 없는 눈에서 눈물이 흐르자 나까지 긴장되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픈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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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춘향이니?' 라고 춘향 군단을 향해 묻는 이몽룡조차 '난 이몽룡'이라고 선수치듯 본인을 소개한다. 관객들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춘향>의 가장 큰 포인트는 주요 인물들이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꾹 다문 입술에 웃음기 없는 무표정, 딱딱한 말투로 감정을 알기 어려운 춘향이는 흔히 알던 춘향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 어딘가 어리버리하고 우유부단한 이몽룡도 마찬가지다. 봄날 떼아뜨르의 공연 춘향은 보편적인 우리의 머릿속 캐릭터를 코믹하고도 유연하게 비틀어버린 극이다.

이렇게 비틀린 인물들이 끌어가는 서사 역시 전통적인 춘향전의 흐름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배우들은 빵모자를 머리에 얹고 한복 위에 현대적인 평상복을 걸치고 있다. 배경음, 효과음과 노래, 대사들에서는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느낌이 느껴지지만 현대적인 관점을 양념처럼 더했음이 드러나는 듯 하다.

춘향은 자신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춘향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정조를 지키는 여인'이다. 그러나 극 속의 춘향은 이몽룡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지고지순함도 정숙함도 없다. 그를 목빠지게 기다리지도 않고 순전히 그를 위해, 혹은 주변의 의아해하는 타인들에 의해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하고싶은대로 행동하는 모습은 무심하면서도 주체적이다. 떠난 임을 기다리는 여성 캐릭터는 전래동화나 설화 속에서 자주 나타나는 유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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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의 러닝타임은 70여분으로 짧지만 짧은 시간 안에 개성있는 연출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배우들의 마스크, 연기, 노래실력 등이 저마다 굉장히 개성있고 매력적이었다. 탁구 게임을 하듯 짧고 굵게 줄줄이 치고 들어오는 대사와 일사분란한 배우들의 움직임, 직접 라이브로 들려오는 기타와 타악기 소리까지 볼거리도 풍성했다.

'꿈을 꿨나?' 싶을 만큼 강렬하고 독특한 인상을 남긴 떼아뜨르 봄날의 공연 <춘향>은 꽤나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보편적인 춘향과 이몽룡의 러브스토리가 아닌 새롭게 정의한 개개인의 감정들이 섞여나와 꿈 같은 표현으로 현실적인 <춘향>을 탄생시켰다. 본 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떼아뜨르 봄날의 또 다른 공연도 보고싶어지는 작품이었고 꼭 한 번 다시 찾고싶은 극단이다.





<시놉시스>


전라도 남원, 이몽룡이 방자를 데리고 경치 구경을 하던 중, 그네 타는 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고 둘은 뜨겁고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몽룡의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치고, 결국 중앙의 관직을 받게 된 아버지를 따라 이몽룡은 춘향을 남겨둔 채 서울로 떠난다.

그 빈자리에 찾아온 중년의 변학도, 그는 몽룡보다 더한 열정과 진심으로 춘향에게 구애를 한다.

춘향은 그의 맑고 뜨거운 눈매에 흔들린다. 그리고…





<극단 떼아뜨르 봄날>


극단 떼아뜨르 봄날은, 2006년 창단 이래 간결하고 절제된 양식미, 시적-음악적 화법, 통렬한 블랙유머를 동반한 강렬하고 감각적인 페이소스를 일관되게 추구해 왔습니다. 또한 독창적인 연극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도, 공연과 음악, 고전과 대중문화 등 다양한 장르와 스펙트럼을 융합해 창조적인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떼아뜨르 봄날의 존재 이유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무대를 구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와 실험에 있습니다.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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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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