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은 춘향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글 입력 2018.04.0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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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_춘향_떼아뜨르봄날_포스터.jpg
 


멜랑꼴리 버라이어티쇼
춘향

by. 이수인

떼아뜨르봄날






마음에 든다. 안 해봐도 알아.
어떻게?

그놈이 그놈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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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당신은 춘향전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 세상에 둘도 없는 열녀기생 이야기
- 조선후기 청춘남녀의 멜로
- 나쁜 탐관오리를 싸잡아 처단하는 정의의 사도 이야기
- 성춘향의 신분상승 프로젝트

 글쎄, 어쨌든 조선후기는 판소리 전성기였다. 티브이도, SNS도 없던 그 시대에 판소리의 영향력은 오늘날 안방극장 드라마의 영향력보다 위력이 대단했을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애정하고 키웠던 문화장르였던 만큼 남녀노소 상하계급을 불문하고 인기가 뜨거울 수 있었던 것은 판소리의 이야기가 '눈에 보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충분히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출중한 노래실력과 찰진 진행력을 갖춘 소리꾼을 상상해보라. 조선판 만능 엔터테이너의 무대. 그런데 그들이 시공을 초월한 절대 가치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심지어 신분이 다른 남녀의 금기를 깨뜨린 사랑을 다루겠다고 선언한다면? 그저 황홀하게 넘어갈 수밖에.

 '춘향'과 '몽룡'이라는 두 인물의 극적인 만남은 고전으로 남았다. 지역별 이본(異本)마다 인물들의 성격이 확연히 다르긴 하지만 뼈대가 되는 큰 줄거리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파고들어 질문하면 말꼬리를 흐리는 사람들이 많겠지.

- 춘향은 몽룡을, 몽룡은 춘향을 정말 사랑했을까요?
- 변학도의 수작을 거절한 것은 신분상승을 꾀한 춘향의 빅픽처가 아니었을까요?
- 몽룡은 정말 괜찮은 남자일까요? 남원을 떠나 상경해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 변학도가 마냥 나쁘기만 한 인물일까요? 춘향은 정말 흔들림 없었을까요?
- 춘향 모는 어떤 성격의 여인 같나요?
- 방자는 누구를 대변하는 역할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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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아주 재밌는 상상력을 보여준 작품이 있다. 극단 떼아뜨르봄날의 신작 <춘향>. 부제로 딸린 ‘멜랑꼴리 버라이어티쇼’가 도대체 무엇인고 했는데 연극이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그보다 적절한 비유’는 없겠다 싶었다. 새침하고, 찌질하고, 우울하고, 통렬하고, 통쾌하고, 섹시하다. 그 모든 게 완벽한 비율로 범벅되어 있었다. 아니 비율도 따지지 않고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춘향이인 것 같으면서도 가장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인간 성춘향’을 만들어낸 것이다.
   
 때깔 고운 한복 위에 트렌치코트를 걸친 채 나른한 목소리를 떨어뜨리는 그 여인에게 열녀 프레임은 안중에도 없다. 자신을 둘러싼 남성들의 집요한 구애와 재미없고 시시한 사랑, 하찮은 이별에 권태를 느끼고 절대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감각들을 좇아 움직이는 여인. 그 길로 인도하는 남자의 손을 잡는 여인. 아니, 결핍과 욕망이 부추기는 길을 따라 나서는 쪽을 믿는 여인. 그 앞에서 쩔쩔매는 남자들이란. 그러나 또 흥미로운 점은 떼아뜨르봄날의 <춘향>은 ‘성춘향’이라는 인물에게만 포커스를 맞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눈엔 전형적인 이미지를 탈피한 춘향의 스펙타클 자유연애 스토리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녀를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미성숙한 남성들인 ‘이몽룡’과 ‘변학도’의 비중도 굉장히 컸다고 느껴졌다. 춘향의 상대 남성들이라고 해서 그저 나쁘거나 좋은, 혹은 무조건 나쁘기만 한 평면적인 연출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히 이 작품을 높게 산다.
  
 물론 그들은 바보다. 춘향처럼 자신의 눈앞에 놓인 운명을 발 빠르게 이해하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못한다. 도망치거나, 어쩔 줄 몰라 하거나, 더 바보가 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몰라 그들이 끄는 대로 끌려가는 아들, 이몽룡. 주고받는 사랑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중년 남성, 변학도. 완전히 먼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못난 놈, 이라고 비웃으면서도 관객들의 혀도 덩달아 씁쓸해지는 것. 남성 배우들의 연기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으면서도 짠내가 물씬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춘향>을 보면서 감탄했던 점은 고전을 해석한 관점이 충분히 납득이 되고도 즐거웠을 뿐 아니라 관객을 납득시키는 무기로 ‘음악’과 ‘몸동작’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건 떼아뜨르봄날 작품들의 연출적 특징이기도 하다. 전작 <심청>과 <안티고네>에서도 음악은 그 위용을 가감 없이 뽐냈다. 매 작품마다 음악이 연극의 요소로써 나아가는 방향은 조금씩 달랐는데 <춘향>에서도 제대로 역할을 해냈던 것 같다. 에로틱한 욕망과 사랑의 좌절을 표현하기에는 감각적인 음악만한 게 또 없지 않나. 역시 믿고 보는 극단 떼아뜨르봄날이다.
   
 판소리 춘향가, 하면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미지를 전복했다. 그 새로운 인간 유형들의 <춘향>이 놀랍고 반가웠다. 다른 의미 혹은 같은 의미로 나에겐 판소리만큼의 ‘눈에 보이는 이야기’였다. 보이고, 나타나고, 들이닥치는 이야기들. <춘향>은 4월 1일에 막을 내린다. 이들의 다음 행보를 또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 Synopsis >

전라도 남원, 이몽룡이 방자를 데리고 경치 구경을 하던 중, 그네 타는 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고 둘은 뜨겁고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몽룡의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치고, 결국 중앙의 관직을 받게 된 아버지를 따라 이몽룡은 춘향을 남겨둔 채 서울로 떠난다.

그 빈자리에 찾아온 중년의 변학도, 그는 몽룡보다 더한 열정과 진심으로 춘향에게 구애를 한다. 춘향은 그의 맑고 뜨거운 눈매에 흔들린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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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
- 멜랑꼴리 버라이어티쇼 -


일자 : 2018.03.21(수) ~ 04.01(일)

시간
평일 8시
토, 일 4시
화 공연없음

장소 : 예술공간 서울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제작
떼아뜨르 봄날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100분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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