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별을 보여드립니다 _이청준 [문학]

우리는 이렇게 외롭다.
글 입력 2018.03.3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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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외롭다.

<별을 보여드립니다>
_이청준


'개울을 흐르는 거품’과 ‘구경꾼’

녀석은 ‘개울을 흐르는 거품’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훌륭한 구경꾼’이다.

대학생인 나는 상경한 후 혼자서 살고 있다. 홀로 버텨내는 서울의 삶에 익숙해지는 듯하다가도 어쩔 수 없이 외로움이 나를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혼자 밥을 먹을 때나 집에 돌아오는 길,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때, 특히 방 안에 홀로 누워 침전할 때면 누구도 나의 외로움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는 '그'와 외로움이라는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는 말 그대로 개울을 흐르는 거품이다. 섞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유하다 흘러가버린다. 녀석을 둘러싼 이들은 그에게 무관심하다. 물론 무관심이라는 말은 딱 들어맞지 않을 수 있지만, 어쨌든 그들은 녀석에게 어떤 불행이 닥쳐도 언젠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그가 다시 나타날 거라 믿고 있다. 녀석이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언젠가 너희들도 사람이 그리워 질 때가 있을 거’라 말해도, ‘외로운데 외로운데’ 소리를 내뱉으며 거리를 쏘다니는 것을 알아도 언제나 한 걸음 정도 떨어져 그를 방관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여자 민영마저 영국에서 보낸 그의 편지에 차갑게 반응해버리고 만다. 이런 일을 겪은 후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아보였지만 원래 상처는 안에서부터 곪는 법이다.

‘나’와 친구들은 그의 구경꾼이다. 그의 도벽으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은 치가 없음에도 그들은 녀석에다 대고 무어라고 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잦은 거짓말에도 스스로 말해올 때가 있겠지 하고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이런 ‘배려’를 정말로 그가 바랐던 것일까? 오히려  누군가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물어봐주었으면 하는 소리 없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우리는 소설 속 '나‘와 친구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깊이 관여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다른 이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무거운 책임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당장 나에게 닥친 손톱만한 문제가 타인의 바위만한 문제보다 커다란 법이다.

소설 <의사 기온>에 등장하는 소년은 남에게 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언제나 날씨 걱정을 한다. 그가 초라한 망원경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역시 누군가에게 별을 보여주고 싶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별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망원경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이 망원경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은 아직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두 번째로 쫓겨났을 때, 망원경을 강 속에 밀어 넣어버리는 장례식을 치러버림으로써 그는 관계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놓는다. 또한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해버림으로써 그는 더 이상 배려의 대상으로 남는 것조차 포기한다. 강가에서 자살한 남자의 유서를 보았을 때 녀석은 남자를 어리석은 이라고 칭한다. 살아있는 사람끼리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죽은 사람이 해 무얼 하냐고.

나는 한 명의 ‘구경꾼’으로서 소설 속의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구경꾼이자 하나의 ‘개울을 흐르는 거품’으로서 그저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는 외로운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김새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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