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대책소] Episode5. 피의 연대기(For Vagina's Sake)

취향대책소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
글 입력 2018.03.3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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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대책소] Episode5.
피의 연대기
(For Vagina's Sake)

취향대책소
(취향 ; 상을 임지고 개함)



 ‘여성’을 주제로 하여 영화 <피의 연대기>를 소개하려 한다. 추천자인 H는 이번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도 정말 많았고, 추천하고 싶은 작품도 매우 많았지만, 고민 끝에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여성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를 선택했다. <피의 연대기>는 취향대책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다큐멘터리 영화일 것이다.


우리는 왜 우리 입으로 우리의 몸을 말할 수 없는가

H 얼마 전에 ‘레드북’이라는 뮤지컬을 봤어. 그 뮤지컬의 주인공인 '안나'는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직접 말할 수 없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자신의 사랑에 대해 거리낌 없이 써 내려가던 한 작가야. 사람들은 안나의 작품을 보고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글로 쓰다니! 이렇게 적나라하게!'라며 말도 안된다고 했지. 근데 안나는 이렇게 얘기하더라고. "그냥 내가 살아온 이야기잖아요. 그냥 내 얘기." "자 봐요, 보라구요. 여자도 몸이 있어요. 남자처럼 똑같이 행동하고 느끼는 이 몸이 있다구요. 근데 왜 자꾸 여자한테만 안된다는 거에요?" 그 얘기를 들은 순간, 아니 사실 그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는 왜 우리 몸에 대해서 얘기하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 그리고 그것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 바로 생리라고 생각했지. 왜냐하면 생리라는 말 옛날에는 정말 잘 안 썼거든. 그날, 마법, 한 달의 한 번 그거. 이렇게 얘기했잖아. 이 <피의 연대기>는 그 생리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영화여서 추천하고 싶었어. 사실 N은 나보다 이 영화를 먼저 봤지. 어땠어?

N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놀랍고, 대단하다는 거였어.

H 어떤 점에서?

N 여성의 몸, 그리고 가장 꺼려지는 생리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많은 고민이 따른 영화라고 느껴졌어. 왜냐하면 어떠한 왜곡이나 과장도 없이 자연스러운 생리 그 자체를 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전혀 거북하지 않았고, 그건 기존의 생리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는 데에까지 효과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겠구나 생각했기 때문이야.

H 그리고 N의 말에 덧붙이자면 실제로 그러한 인식이 요즘 들어 얼마나 바뀌었는가에 대해서도 담은 영화인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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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아주 옛날에 그런 성교육을 들었던 기억이나. 여러분의 몸은 소중하고, 깨끗하고, 순결하다고. 그리고 내가 어렸을 적 다녔던 교회에서도 그런 말을 어렴풋이 들었던 거 같고. 그런 것들이 여성의 몸에 대해서 어떤 순수하거나 혹은 불결하거나, 그런 프레임을 만들었던 거 같아. 한 때는 그런 프레임을 나조차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지금은 박살내고 싶지만! (웃음)

N 나도 어릴 적에 그런 성교육을 들었음은 물론이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뭔가 더 많은 것을 요구받았던 거 같아. 예를 들어 조신하게 앉기, 다리 모으기, 파인 옷 안 입기, 짧은 치마 입으면 위험하다느니, 그런 말을 교복을 입는 때부터도 들었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듣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여성의 몸은 숨겨지고 가려져야 한다고 인식하며 자란 거 같아. 덩달아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리라면 말할 것도 없지.

H 맞아. 여고에서는 그럴 일이 없었는데, 중학교 때는 생리대를 들고 화장실 가는 게 그렇게 눈치가 보였어. 언니가 생리 주머니 따로 사줘서 거기에 생리대를 넣고 다니곤 했어. 그래서 여고 갔을 때 제일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생리대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생리대 있는 사람’ 이렇게 물어 볼 수 있다는 거! 그 자체가 신세계였어. 심지어 나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반 친구 한 명이 생리대 이벤트에 당첨돼서 몇 박스를 받은 거야. 그리고 그걸 반에 기부했어. 그래서 반 교탁 아래에 생리대가 항상 있었어. 그리고 그걸 마냥 쓰진 않고, 본인이 쓰면 다시 채워두기로 약속을 했지. 그래서 생리가 갑자기 터지는 거에 대해서 불안도 없고 편했던 거 같아.

N 나도 여고를 나왔기 때문에 뭔지 잘 알지. 그 때는 정말 생리대를 자연스레 빌려주고 또 안 갚아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어. 모종의 연대감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생겼지. 아 문득 든 생각인데, 우리는 생리가 ‘터졌다’라는 표현을 하잖아. 그런데 이런 표현을 과연 생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동시에 그들에게 생리에 대한 스몰 토크가 과연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하고 염려도 되는 마음이야.

H 와, N이 말해서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생리가 ‘터졌다’라는 말을 하는구나. 23년 만에 처음으로 자각했어. ‘생리를 시작했다’라는 말은 사실 잘 안 쓰잖아 일상용어로. 이렇게 말하고나니까 생리가 얼마나 특이한 취급을 받아왔는지 알 거 같아. 그리고 그렇다면 이런 스몰 토크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N 그치. 특별한 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논의 외의 것이 되고, 그러다보면 이 자연스러운 생리작용이 자꾸만 감춰야하는 것이 되어버리니까. 그런 식으로 자연스러운 걸 자연스럽게 발화하지 못하게 되다보면 여성은 결국 남들이 규정하고 만들어놓은 이미지와 틀에 짜맞춰져야 할지도 몰라. 그래서 이런 스몰 토크가 아주 의미 있다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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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의 기나긴 역사와 생리용품에 대하여

H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 ‘생리의 역사’ 부분이었던 거 같아. 나는 초경을 할 때부터, ‘옛날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았지?’라는 생각을 해왔어. 인류가 탄생한 이후로, 전 인류의 절반이 한 달에 며칠간 지속되는 불편함을 계속 겪어왔다는 거잖아. 근데 그 누구도, 이전의 사람들은 현대의 생리 용품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주지 않았어. 혼자서 여러 생각을 했지. 옛날에는 어떤 생리대를 썼는지,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쓰는 생리대 외에도 어떤 생리 용품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생리대에 비해서 얼마나 좋은지. 그런 내 궁금증에 영화는 그 모든 걸 대답해주고 있었어.

N 나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고, 궁금해 하는 생리컵을 직접 사용하는 장면이 담긴 것과 해면 생리대와 같이 자연 친화적인 생리용품을 소개하는 것들이 좋았어. 또, 영화 속에서 여성들이 ‘한 달에 한 번, 이 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말을 하는데, 난 이 말이 매우 마음에 들었어. 왜냐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이 피를 ‘처리’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또한 그만큼 이 피라는 게 얼마나 귀찮고 지겨운 것인지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야. 귀찮은 피, 그리고 그걸 처리하기 위한 다양한 생리 용품, 생생한 설명과 리뷰까지. 이 모든 게 피를 처리해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여성을 위한 영화였어.

H 무엇보다 다른 생리용품에 관한 공포나 두려움을 적극적으로 물리쳐주는 영화였던 거 같아. 영화에서 다른 생리용품(탐폰이나 생리컵)에 대한 걱정이나 선입견 등을 제시하고, 실제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런 고민을 풀어주잖아. 어느 어른들이나 어느 성교육에서도 얘기해주지 않았던 다양한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것이 참신하고 실용적이었어. 정말 여성을 위한 영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N 특히 생리컵!에 대한 자세한 사용 방법과 사용후기를 볼 수 있는데, 단지 생리컵 사용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 외에도 그런 용품이 꾸준히 개발되고, 쓰이며, 여성이 피에 대처할 더 좋은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라는 거, 그 자체로 좋았어. 또 생리컵에 담겨 나오는 선명한 혈을 보고 있으면, 생리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겠더라고. 선명한 혈을 보고 있으면 이 피 또한 손가락이 베였을 때 흘렸던 피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H 맞아, 더럽고 냄새나는 생리혈이 아니라) 이 생각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분명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H 그리고 이것이 무려 영화로 나올 만큼, 우리가 극장에 앉아서 스크린으로 들을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충분히 발화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 눈에 보이지 않았던 가치들이 선명해졌다는 것. 그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존재 자체가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N 맞아. 발화하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걸 덧붙여 선물해주는 영화였어. 내가 극장에서 봤을 때는 여성 관객이 대부분이었는데, 다들 아마 비슷한 연대감을 가지고 좋은 마음으로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싶어.

H 사실 남자들이 더 많이 봐야 하는데.

N 맞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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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와 연대

H연대감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여고에서 느꼈던 연대감, 극장에서 느꼈던 연대감, 생리대를 서로 ‘빌려 준다’는 말을 쓰지만 사실 그냥 ‘기꺼이 주는’ 연대감. 그리고 이 연대감과 여성의 인권과 생리는 연관되어서 어떻게 말할 수 있게 되었는지. 얘기해볼까?

N 생리에 대해 말하지 못했던 건 우리가 여태 받아온 교육 때문이었고, 사회가 여성을 규정하고 있는 맥락 때문이었지. 그렇다면 생리에 대해 말하는 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억압과 부당한 요구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아. 그리고 그런 선언은 한 사람에서부터 시작했고, 또 다른 누군가 이어받았지. 누군가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또 누군가는 그 영화를 보고 이렇게 대화하는 방식으로. 저마다 다시 선언하고 연대를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이게 결국 말하지 못하고 듣기만을 요구 당하던, 혹은 행동하지 못하고 잠자코 있기를 요구 당하던 여성들이 여성의 생명과 인권을 말하는 방식과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해. 결국 같은 것이겠지.

H 그 선언은 세상을 바꾸고 있어. 그래서 이 작품은 ‘피의 연대기’인거야.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에 대한 공유이자 연대이자 발화이자… 그 모든 것. 이것으로 인해 변화하는 세상까지. ‘바뀌지 않는다’고 단정 짓던 말들이 이제는 ‘바뀔 것이다’ ‘바뀌어야 한다’로 ‘바뀌는’ 순간이 왔어.

N 이 외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주 많을 거라고 생각해. 여성의 몸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억압당했던 수많은 것들이 이제는 이야기가 되어 돌아와야만 해. 우리 사회에 더 큰 소리로 울려 퍼질 이야기들은 믿어. 우리가 하는 이 담화도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서 누군가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것을 일러주거나, 혹은 누군가 하고 싶지만 삼켜야했던 말을 함께 나누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런 작품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고, 또 추천할 수 있다는 것은 H에게 원동력이자 기회이자 선언이자 행운이다. 그리고 이런 스몰 토크가 언젠가 빅 토크가 되어서, 자유롭게 얘기하고 외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H는 간절히 바란다. 그때까지 우리는 계속 피의 연대를 할 것이다. 피를 흘리는 사람과 피를 흘리지 않는 사람들을 아울러,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과 이야기를 듣는 사람 모두. 계속해서 여성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계속해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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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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