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바닷마을 다이어리, 우리가 꾸며보자 [여행]

같은 장소, 다른 인물, 새로운 이야기
글 입력 2018.03.2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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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로 떠났다. 2017년을 마무리하는 여행이라 봐도 무색한 여행. 친구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맛본다. 항상 가족들과의 여행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우리의 경비와 생각으로 치러야 했기에 조금의 부담감은 존재하였지만 그만큼 자유성도 보장되었다. 2박 3일의 일정이지만, 3박 4일의 경비를 챙겨 지갑도 두둑하게 마음도 두둑하게 떠났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배경지가 된 고쿠라쿠지를 가보는 것이다.

도쿄여행을 계획하기 전, 우연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들을 차근차근 보고 있었던 참이다. 여기에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2주년이 되는 날짜까지 정말 완벽한 시기상조였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3명의 자매와 배다른 딸 한 명이 함께 살게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성숙한 자매들의 막둥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모두의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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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을 보고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자마자 도쿄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라 생각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영화를 “차가운 현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찍는다.”라고 말한다. 특히나 그의 영화들은 대부분이 가족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차갑지만 거센 스파크와 같은 불꽃을 표현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스토리가 한국의 드라마 작가들에 의해 탄생하였다면, 아마 아침드라마와 같은 막장 치정 스토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만의 따뜻하고 섬세한 손길로 그만의 감성적인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 세 자매, 의붓형제, 그리고 네 자매. 이 세 단어가 스토리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맥락을 설명하진 못한다.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꽤 신선하고 강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따뜻한 시선이 강렬함을 잠재웠다. 영화의 배경을 일본의 수도인 도쿄로 하였지만, 도쿄 중에서도 저 아래 있는 시골 고쿠라쿠지로 선정하여 생생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번 도쿄 여행에 우리가 중점을 둔 곳은 도쿄타워도, 롯폰기힐스도 아닌 가마쿠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쿠라쿠지. 처음으로 필름 따라 떠난 <바닷마을 다이어리> 여행기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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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인 듯 도쿄 아닌 도쿄 같은 고쿠라쿠지로 가려면 가마쿠라 역에서 전철을 타고 또 들어가야 한다. JR 패스가 무색하게 또 한 번 지급해야 하는 교통비에 좌절했지만, 벌써 도쿄 도심과는 다른 분위기가 자아져서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을 가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일본 특유의 감성은 날 항상 매료시킨다. 북적이던 회사원들로 가득했던 도쿄에서 떠나 고쿠라쿠지로 들어가는 순간, 결계라도 뚫은 듯한 거센 바람이 분위기를 바꾼다. 하라주쿠, 시부야에서 신나게 쇼핑을 한 뒤 도착한 고쿠라쿠지는 쇼핑으로 지친 우리의 몸을 달래기라도 하는 듯 우리를 감쌌다.

정말 고쿠라쿠지에는 다른 해가 뜨는 것일까? 도쿄에서는 햇빛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냥 맑은 날씨였다. 하지만 고쿠라쿠지로 가는 전철을 기다리는 때, 눈부시지 않은 아늑한 햇살이 우리를 반겼다. 틈새로 비치는 햇빛과 ‘가마쿠라’라고 적힌 히라가나의 겹침은 교통비 따위를 잊을 만했다. 아니 넘쳤다는 말을 더 어울리겠다. 우리의 고쿠라쿠지 여행은 큰 손해를 일으키기도 했다. 예약했던 온천을 가기 위해서는 빠듯한 시간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고쿠라쿠지가 우리의 시간과 예산을 빼앗기에 적절한 도둑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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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닷마을 다이어리>만의 랜드마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감격스럽게 고쿠라쿠지역에 내리면 이렇게 벌써 영화의 한 단면인 곳을 만난다. 이 역은 단순한 역의 개념을 넘어 새로운 만남, 관계가 맺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역에서는 첫째 사치와 그녀와 어색한 관계인 엄마의 헤어짐이 발생한다.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엄마를 둔 사치는 엄마에게 매실주를 주기 위하여 그녀를 역에 기다리게 한 뒤 집으로 달려가 매실주를 가져온다. 겉으로는 엄마를 야속해 하는 모습이 드러나지만, 가장 엄마를 생각하며 이해하는 것이 첫째인 사치라는 것이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둘의 헤어짐은 일차원적인 헤어짐이 아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약을 내재한 헤어짐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새로운 지역에서 어색해 하는 스즈와 둘째인 요시노가 학교와 직장에 늦을까 봐 함께 역으로 뛰어가는 장면이다. 이 장면으로 정말 그 둘은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시간을 겹쳐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즈와 요시노의 등교, 출근 시간이 겹쳐 함께 그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들의 일상에 서로가 침투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역은 스즈와 후타의 귀여운 연애신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스즈는 새로운 학교에 전학을 오고 나서 후타의 친절한 배려를 느낀다. 사실, 사랑이란 것이 나이의 장벽이 있겠는가? 사랑은 기본적인 욕구들이 충족되어 있는 생활들을 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로소 스즈의 평소 생활이 안정되었고, 후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그만큼 기본적인 생활 만족을 넘어 그 동네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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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식당은 요시노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저녁 식사를 한 곳이다. 단순히 둘의 데이트 장면을 보여주기보다, 새로운 막내에 대한 요시노의 솔직한 속마음을 관객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의붓형제를 부드럽게 감싸기란 힘든 일이고, 그러한 스토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관객들에게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와인 한 잔만 시켜도 뷰를 안주 삼아 몇 시간이고 앉고 싶을 정도로 일몰과 바다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실제 뷰가 보이는 자리는 사람들의 인기를 한꺼번에 받고 있기 때문에, 밖에서 사람들이 나가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그리고, 자리가 비자마자 친구와 나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마침, 시간도 우리를 도와주는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의도한 시간은 아닌데, 일몰을 보며 안주와 자두 와인을 마시는 것은 고쿠라쿠지가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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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곳이 영화 촬영지인 줄 몰랐는데 지나가다가 너무나도 고즈넉한 자태에 홀린 듯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영화상에서는 푸른 잎들이 사치와 그의 엄마를 감싸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앙상한 가지들이 가옥과 어우러져 허전하지만 웅장해 보였다. 조용한 이곳에서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사진을 찍으며 그 풍경에 흠뻑 빠졌다. 군더더기 없는 가옥들과 더불어 품위 있어 보이는 가지들의 조화는 고풍스러웠다. 이곳에서는 첫째 사치와 그녀의 엄마가 그들의 삶을 나누는 차분한 공간으로 나온다. 그들의 추억과 기억이 잠재된 그곳에서 그들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들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깊게 나눈다. 정말 고요한 곳에 그들만의 삶이 오가는 대화는 차분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에 충분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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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옷을 입고, 같은 부분에서 웃고, 같은 추억을 만든다. 이것만으로도 넷은 이미 가족이 아닐까. 이제 3과 1의 공존이 아니라 4라는 공동체가 되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이 장면은 서로의 개성이 드러나며, 있는 그대로의 4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쯤 되면, 앞에서 계속해서 이 영화의 중심이었던 혈의 관계가 무색해진다. ‘같은 아버지가 아니다’라는 대전제가 있더라도 이 넷은 이미 자매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필요하지 않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뭉쳤지만, 그들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무언의 끈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앞으로 이들이 항상 평화롭고 서로를 이해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비로소 이제야 평범한 자매들이 되었기에 싸우고, 또 싸울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화해하고 다시 한 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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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경지를 가고 싶게끔 하는 감독들은 많다. 하지만 막상 그 공간을 접했을 때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더라. 실제로, 우리나라의 감독 중 한 명의 배경 활용이 좋아 가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냥 배경에 불과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도 당연할 것이, 많은 보정과 등장인물들의 위력이 세기 때문에 그 공간의 민낯이 낯설 수밖에 없다. 사실 가마쿠라에서 영화가 많이 생각나지는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공간이 좋았다. 이것만으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배경 활용을 200%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 배경은 참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물들의 대화, 동선, 행동 모든 것들의 도화지가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극의 흐름을 방해해서도 안 되고, 존재감이 미미해서도 안 된다. 까다로운 로케이션 선택에 있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리고 나는 감독의 다른 전작들을 뒤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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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친구와의 해외여행, 거기에 영화의 스토리와 합쳐진 우리의 여행은 가히 성공적이었다. 서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줄 몰랐으며, 다양한 서로의 생각들을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둘은, 서로의 경험이 교집합이 된 공간들이 늘어만 간다. 공간이라는 것은 대부분이 영구적이기 때문에 서로의 추억과 기억이 희미해져가도 그 공간에서의 나눴던 그들만의 역사는 계속된다. 우리가 고쿠라쿠지에서 특별히 남긴 이야기는 없어도, 그곳으로 가는 여정과 과정들이 곧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렇게 한 장 한장 채워나가면 서로의 관계가 더욱 두터워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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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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