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풍선 같은 이야기를 쓰는 법: 『이야기가 노는 법』 [도서]

글 입력 2018.03.24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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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을 배울 때 제일 처음 배우는 것은 선을 긋는 일이다. 하얀 도화지에 위로, 아래로 선을 긋고 있노라면 삐뚤게 그려지던 선들이 어느 순간부터 직선이 되어간다. 이처럼 그림의 기본은 언제나 선을 긋는 것에서 시작된다. 균등하게 구역을 나누고 그리고자 하는 것을 나눈 구역에 그리고 나면 비로소 그림이 완성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글은 다르다. 글은 미술과 달리 단계에 따른 정확한 교수법이 없다. 예컨대 “점은 어디에 찍으세요. 문장의 시작은 뭐로 시작하세요. 처음 장은 무조건 도입부의 느낌이 나야 합니다.” 같은 교수법은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작법서는 있다. 그러나 그 책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서양화에서 배경 색을 칠할 때는 백붓이라는 큰 붓으로 채도가 낮은 흑백색을 빛의 각도에 따라 칠한다. 그러나 이 흑백색을 칠할 때는 검정색 물감을 쓰지 않는다. 레드브라운과 인디고 색상을 섞으면 흑백색의 배경 색이 나오는데, 이때 어느 색상의 물감을 더 많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배경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세피아 톤이 강하면 조금 따뜻한 톤의 배경이 되고, 인디고 계열이 강하면 차가운 톤의 배경이 된다. 미묘한 차이를 위해 단순한 색상은 쓰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글은 어떨까? 글 역시 미묘한 차이는 있다. 그러나 물감이라고 표현하기엔 문장을 섞어 쓴다는 말은 어딘가 어색하고, 배경을 칠한다고 하기엔 글의 바탕을 뭐라 불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미술에선 어느 정도 선을 긋고 나면 구와 원기둥을 그리는 연습을 한다. 이때 빛의 각도를 배우고 선을 씀으로써 기본기를 익히는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이러한 정확한 지표가 없다. 얼마나 써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지, 애초에 다음 단계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글을 쓰는 것에 있어 작법서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야기.jpg
위기철, 이야기가 노는 법, 창비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이야기가 노는 법』은 작법서 보다는 수필의 향이 더 강하게 풍긴다. 작가가‘이런 식으로 글을 써라.’가 아닌‘나는 글을 이렇게 썼습니다.’하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이야기가 노는 법』은 절대적 지표가 아닌 스스로의 지표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초보 분들 글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문제점 하나를 꼽자면, 길이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부분은 길게 쓰고, 정작 중요한 부분은 설렁설렁 넘어가는 식이 되고 말지요.”

 
 이 부분은 비단 글을 처음 쓰는 초보뿐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글을 쓴 어정쩡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말이다. 내가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여기에는 나 역시 포함된다. 꽤 많이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쓴 글에서 길을 잃고야 만다. 쓴 글을 읽고 또 읽어도 최종으로 보면 또 길을 잃는다. 이는 소설과 동화를 나눌 필요 없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결국 모든 이야기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이야기는 어차피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읽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독자들은 거짓말에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그 대신 오류에 시비를 걸지요. 가령 99년 토끼띠 주인공이 77년 뱀띠 아줌마처럼 행동하고 있으면 이야기에 몰입이 안 되고, 몰입이 안 되면 짜증이 납니다.”

   
 특히나 아동문학을 쓸 때는 주인공의 행동이나 말투, 하다 못해 시선처리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기철 작가가 말한 것처럼 독자는 작가가 아닌 주인공에게 몰입해야 하는데, 막상 작가가 주인공을 개별된 인물이 아니라 자신과 동일시 해버리면 독자는 주인공이 아닌 작가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다. 분명 내용은 모험을 떠나는 어느 초등학생의 이야기인데 막상 칼을 든 주인공은 30살이 훌쩍 넘은 아저씨 혹은 아줌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지난 몇 번의 합평 때 많은 학생들이 지적 받았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주인공이 너무나 어른스럽다는 이야기가 반복되었고 이는 한 명에게 몰린 이야기가 아니었다. 꽤 많은 학생들의 글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아무리 동심을 지닌 사람이라도 5살 아이를 주인공으로 글을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5살이 아닌데 5살로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위기철 작가는 “1인칭으로 쓰려면 완전 변신을 하세요. ‘나는 도플갱어야!’ 할 정도로 말이지요.”하고 말한다. 단순히 아이 흉내를 낼 것이 아니라 아이가 되어보라는 이야기다.
 

“엄마는 잔소리꾼, 아빠는 직장 일벌레, 철수는 학원 순례자 등등. 물론 그런 전형 자체가 틀린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게 도식화 될 때지요. (생략) 이 업종을 제조업이라고 여긴다면 그래도 됩니다만, 적어도 창작이라고 여긴다면 그러심 아니 되옵니다.”

   
 거북이는 성실하고, 호랑이는 무섭고,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다. 이는 위기철 작가가 언급한 전형적인 부분에 속한다. 내게 이야기란 ‘항상 신선한 무언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전형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우와’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의 무언가 있어야만 잘 만든 이야기가 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언제나 감탄사가 나오는 신선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슈렉을 보자. 주인공은 전부 다 잘생긴 왕자님 혹은 예쁜 공주님이던 시대에 초록색의 뚱뚱한 괴물인 슈렉은 일종의 혁명이었다. ‘잘생기고 예쁜’이라는 전형 속에서 슈렉이라는 존재는 감탄사가 나올 만큼의 신선함이었다. 물론 모두에게 슈렉 같은 신선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기철 작가가 말한 것처럼 글을 쓰는 것을 창작이라고 여긴다면 노력은 해야 한다. 문맹률 0퍼센트에 가까운 우리나라에서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작가의 책임은 여기에 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에서 누구도 쓰지 않은 것을 쓰는 것. 내게 작가의 책임이란 이런 것이다. 글을 쓰는 용기란 결국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함으로써 느끼는 공포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이야기가 노는 법』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간단한 조언 정도를 해주는 책이면서 동시에 위기철 작가의 수필에 가깝다. 수필에 가깝다고 해서 따뜻한 이야기, 도움 되는 이야기만 하지도 않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위기철 작가는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처한 현실에 대해 유머를 섞어 이야기한다. 결국 이 책은 동화를 쓰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만류를 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전진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동화를 쓴다는 것은 이야기에 풍선을 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이야기에 풍선을 달아 하늘로 떠오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동화작가의 일인 셈이다.
     
 동화와 소설은 다르지만 같다. 사실 같은 점을 주목할 필요는 없다. 같은 점은 고려하지 않아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점을 알 필요는 있다. 두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른지에 대해 알아야만 정확한 이야기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제목 그대로 이야기가 노는 법에 대해 풀어놓고 있다. ‘이야기는 공기보다 가벼워야 하늘을 난다!’는 문구처럼 자유롭게 풀어놓은 가벼운 이야기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가볍다는 것이 부정적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볍다는 것은 어쩌면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 풍선 같은 동화를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가벼운 밤이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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