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실험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 두번째달 춘향가

글 입력 2018.03.2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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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실험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
두번째달 춘향가


 국악. 낯설다. 그 단어에서는 유럽 독립영화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두 단어는 레어함이 닮았다. 다른게 있다면, '나 국악 듣고 왔어'보다 '나 유럽 독립영화 상영회 다녀왔어'가 더 간지난다는 점일까? 국악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공연을 많이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단어에서 초등학교 3학년 음악 교과서 냄새를 낸다. 아직도 이런 고루한 생각에 잡혀있는 필자의 뒷통수를 한번 더 후려진 공연이 이번 두번째달의 <춘향가>였다.

 국악의 이미지를 탈피했다는 뻔하디뻔한 서두로 글을 시작했지만, 사실 두번째달의 <춘향가>는 단순히 '국악'의 이미지를 탈피했다고 설명하기에는 아까운 공연이다. 공연에서 노래를 듣는 내내 필자가 얼마나 '국악'을 '국악'으로 받아들였는지 깨달았다. 말장난처럼 보이겠지만, 이번 공연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두번째달은 '국악'이 아니라 '소리'들을 연합시켰다.

 <춘향가>에는 소리의 국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말이고 하니, 이들의 공연은 단순히 '국악'과 '서양악기'의 혼합이 아니었다. 그들은 각 요소의 아름다움이 한데 모여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을 만들었다. 장르의 억지스러운 혼합이나 실험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려는 소리에 판소리의 흥미로운 서사와, 찰진 소리꾼의 꺾인 목소리가 섞여들어왔을 뿐이다. 두번째달은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데 있어서 어떤 장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춘향가>에는 다양한 악기가 등장한다. 바이올린의 부드럽고 은은한 소리, 아코디언 특유의 미끄러지는 소리, 소리꾼의 강한 목소리는 한데 모여 하나의 명작으로 재탄생했다. 경계없이 어우러진 화음은 이들이 지향했던 것이 국악과 서양악기의 교집합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관객은 앵콜곡까지 모두 듣고나서야, 두번째달의 <춘향가>는 실험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품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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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사랑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히이히히이 내 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강릉 백청을 다그르르르르르르르
부어 씨는 발라바리고 붉은 점 움뻑 떠
반간진수로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앵두를 주랴 포도를 주랴
귤병 사탕의 혜화당을 주랴
아매도 내 사랑아

두번째달 - 사랑가 (feat. 고영열)


 대학교 신입생때 춘향가를 완창으로 들은 적 있다. 시지각 능력에 비해 청지각 능력이 부족한 당시 필자는 그만 졸고 말았다. 한창 고전을 읽을 때 춘향가를 여러 버젼의 책을 읽기도 했지만,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강렬함을 느끼진 못했다. 지극히 서구중심적인 문화에 찌든 필자에게 이들의 사랑은 그렇게 달달 쌉싸름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탓이다.

 사실 필자는 두번째달의 초반 앨범만 들었기 때문에, 비교적 최근에 발매한 춘향가를 듣지 못했다. 부끄럽게 고백하자면,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같이 붙은 이름이 춘향가라길래 별기대를 하지 않았다. 처음 <사랑가>를 들었을 때, 필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음악에 푹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완창보다 짧아지고 맛들어진 두번째달의 변형으로 독특한 흥을 자아냈다. 음악 자체가 듣기 좋으니, 가사도 귀에 쏙쏙 박혔다. 사랑에 빠져 어쩔줄 모르는 남녀의 모습을 그려낸 가사는 듣는 사람의 입술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판소리만 들어도 재밌었을 것에 다양한 악기로 감정을 고조시키니, 듣고있는 필자가 다 춘향이가 된 느낌이었다. 같은 한국어를 쓰는데 어쩜 그렇게 입안에서 탱글탱글하고 사랑스럽게 소리가 나는지 놀라울 정도다. 필자는 덕분에 음반을 주문하고 하루종일 돌려 듣고 있다.

 오래 활동한 밴드답게 앵콜무대도, 무대매너도 좋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좋은 음악들 답게 그들의 음악 그 자체가 가장 좋았다. 이 공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마지막 공연이라고는 했지만 '3월의 마지막 공연'일 뿐이라고 천역덕스럽게 말하던 밴드의 말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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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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