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샤 파테예바 색소폰, 색소폰을 돌아보며

글 입력 2018.03.2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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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를 보고 왔다. 계획에 없게 무척 피곤이 쌓인 날이었다. 지하철은 연신 만원이었고 길 가다 도를 아십니까에게도 잡혔다. 여러모로 하루도 무척 지쳤다. 공연 보다가 졸기라도 하면 어쩌지 싶을 정도의 날이었다. 다행히 무대에서 색소폰을 만나자마자 잃어버렸던 집중력이 돌아왔다. 일행 역시 색소폰을 하고 있다. 공연을 보고 느낌을 물었더니 그가 뭐가 부족한지, 뭔가를 배워야 할 지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덕분에 내공이 조금 쌓였다면서. 저도 그래요, 나 역시 동감했다. 전혀 모르던 부분은 아니었지만 훨씬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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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에 대한 리뷰는 늘 무슨 말을 쓸지가 고민이다. 전문적으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 저러쿵하는 게 아닌가 싶고, 아무래도 평이 가장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음악이란 형체가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한 곡 중에서도 이 부분이 좋았다고 글을 쓴 들, 악보를 첨부하든, 음악을 첨부하든, 잘 전달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는 단어가 하나 떠올랐다. 풋풋하다. 뛰어난 스킬 뒤에는 노련한 구석이 숨겨져 있었을텐데도 색소폰 소리가, 공연이 풋풋했다. 싱그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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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샤 파테예바 색소폰 공연은 클래식을 다룬 알토 색소폰 공연이었다. 거쉰의 곡 정도를 뺀다면 재즈 비스무리한 요소는 찾기 힘들다. '색소폰 = 재즈' 라는 편견에 그녀는 인터뷰에서 아쉬워했다. 색소폰이 클래식을 얼마나 잘 보여줄 수 있는지를 더 보여주고 싶어하고 있었다. 의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공연에 100% 푹 빠지진 못했다. 이유를 찾자면 개인적인 취향 탓이다. 클래식보다는 재즈를 훨씬 더 좋아한다. 클래식을 들을 땐 '음, 듣기 좋네' 정도라면 재즈를 들을 땐 몸이 들썩들썩하고 귀에 꽂히며 녹아내리는 경우도 있다. 음역대 역시 알토보다는 테너, 바리톤 등 중저음, 저음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가장 낮은 음이 나와도 도통 낮게 들리지가 않았다.  생각하곤 한다. 음악은 잔인하다. 그림이나 글도 그렇고, 딱 와닿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것도 그 사람에게는 그만큼 빛나지 않는다. 어떤 점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의견엔 동의한다. 색소폰이 재즈에 국한된 악기가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 악기의 장점은 클래식도 재즈도 편안하게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이다. 클래식과는 동떨어졌다는 인상이 강하다면 나 역시 속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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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취향은 차치하고 머리로 느낀 건 부끄러움이었다. 내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 배울 점을 생각하다보면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모를 때는 우와, 잘한다, 멋지다로만 넘어갔겠지만 색소폰을 조금 알수록 비교가 되기도 한다. 내가 연주할 때 힘들었던 경험이 떠올라서. 어떻게 저렇게 편안하고, 부드럽고, 풍성한 소리가 날까? 나라면 저렇게 손가락이 어려운 곡은 잘 하지 못했을텐데, 나는 호흡을 좀 더 넣는 것도 숨이 그렇게 차던데. 텅잉은 강하지 않고 구분은 명확이 되면서 부드럽게 내고 있구나. 내가 하는 음악이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나는 악보를 보기에도 늘 바쁘다. 그녀의 음악은 넓은 세계같았다. 멋있었다. 색소폰을 표현하는 하나의 상을 보았는데, 다른 색소폰 연주자들의 상도 궁금해졌다. 자신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

압도적인 힘을 낼 때보다는 부드럽게 노래하는 멜로디가 그녀에게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시냇물 소리가 졸졸 흐르듯 조곤조곤 연주하는 아기자기한 부분들이 좋았다. 색소폰만의 매력이 돋보이기도 했다. 딱딱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를 내는 슬랩텅잉, 강아지나 짐승들이 목을 그르렁거리듯 그르렁 대며 소리를 긁기도 했고, 고음과 저음을 반복하면서 자이로드롭을 타듯 위아래를 훑는 느낌도 좋았다. 이 모든 게 색소폰이어서 가능하다는 것? 멋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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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직접 그녀가 영어로 설명해주었다. 한국에서 공연하게 되어 기쁘고 미국과 유럽(대체로 프랑스)의 색소폰 느낌을 살린 곡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 마지막 앵콜곡은 그래도 러시아 사람이라며 보칼리제를 연주했다. 첼로로 연주한 보칼리제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구고 말 것처럼 절절한 느낌이라면 색소폰의 보칼리제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느낌이다. 민망하게도 보칼리제를 피아노 반주에 맞춰 연주해본 기억이 떠올랐다. 한껏 표현했다고 생각했지만 녹음해서 들어보면 여전히 밋밋했던 나의 보칼리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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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연주하신 코야나기 미나코도 안 짚고 넘어갈 수 없다. 색소폰과 함께 노래하듯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울림이 깊은 소리, 연주가 끝날 때마다 서로 훈훈하게 박수에 기뻐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느낌이 완연했다. 개인적으로는 스가와 노부야의 색소폰을 유투브에서 먼저 본 적이 있었다. 피아졸라의 '탱고의 역사'를 무척 자주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그의 부인으로서보다는 코야나기 미나코, 그녀 자체로 더 많이 알려졌으면 싶었다. 그녀는 그녀 자체로 빛나는 느낌이었다. 물론 함께 음악을 하고 있으니 연관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피아노가 단순히 반주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자리 잡고 존재감을 뿜어낸다는 걸 새삼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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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자재로 작곡자가 만든 음악을 악보대로 연주하고, 거기에 내 의도와 나만의 색을 더해 더 표현하는 것. 그 수준에 이르려면 결국 도망다니던 숙제처럼 중심이 잡혀있어야 했다. 고질적인 문제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고,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전화를 받는 것처럼, 일상이 될 만큼 호흡과 손가락이 편해질 수 있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로 뭉치면 '기본기'라는 말이 되어버린다. 일을 하면서, 다른 공부를 하면서, 운동을 하면서, 기타 등등 일상 속에서 악기를 시작하고 꾸준히 붙들고 있는 건 분명 노력과 끈기가 있는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기에 마구 보채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절실히 느낀다. 더 나은 소리로, 악기와 가까워지기 위해선 악기만을 위한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구분을 해야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맞았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악기에 절실하지 않았다.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더 과장된 표현이, 음악에 대한 이론, 색소폰과 나에 대한 이해, 실천과의 조화는 물론이고.

여전히 음악은 어렵고 두려운 존재다. 어려운 것 투성이다. 재능 비스무리한 것이 있긴 한가 싶으면서도, 정말 열심히 노력을 해보고 재능을 운운하나 싶기도 하다. 장비 탓을 하기도 했었다.내가 봐도 정말 내가 빠졌던 것에는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너무 좋아서, 남들은 이상하다고 할 만큼 수십번, 수백번을 보고, 외우고 하기도 했으니까. 제대로 빠지지 못했다 싶다. 내가 한 생각에 반박하고, 재반박을 하고 있다. 음악과 하나된다거나 내 영혼을 어루만져준다거나 하는 느낌까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은 민망하고 새롭다. 어쩌면 내 소리의 한계는 이 정도 아닐까 지레 짐작을 하고 있기도 한 듯 싶다. 물론이다. 변하지 않으면 아마 이 상태를 유지하고 말 것이다. 그런 위기감에 잠식당하고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좋아질 때 나는 제자리였다. 아직 들어보지 못한 소리이니까 그래서일 수도 있고. 섣불리 미래를 확신하지 말고 나는 그냥 꾸준히 해보려 한다. 생각이 너무 많았다. 자연스럽게 부딪혀보고 결론을 내어도 좋은 것을. 혹시 어느 날 늘 고민하던 뭔가가 사르르 바뀌어있는 그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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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당일에는 놀랍게도 익숙한 얼굴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약속한 것마냥 레슨선생님을 만나 서로 빙그레 웃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공연이 있으면 사람들이 보러 올텐데, 어쩌면 자신이 사람들에 대해 너무 기대치가 낮았던 게 아닌가 돌이켜보셨다고 한다. 같이 보자고 홍보를 해서 온 지인도 있었지만, 나처럼 이야기하지 않고도 온 사람, 모르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다면서. 옆자리, 앞자리에 앉으신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는 색소폰 소리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셨다. 곡이 끝나고 나서 먼저 브라보라고 외치셨는데 나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시간이 흘러도 지금처럼 연주를 하고, 연주를 보러 오고, 언젠가는 저렇게 혼자 무대를 감당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만약 그 날이 온다면 나는 멋진 중절모에 느슨한 정장을 입고 연주해야겠다며 밤길에 흥얼거렸다. 연주용 드레스 역시 좋지만 아무래도 취향이라! 그놈의 취향, 안그런가!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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