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NYC ② Madama Butterfly [공연예술]

Metropolitan Opera 2017-2018 season
글 입력 2018.03.22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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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오페라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카르멘’이었다. 말소리든 음악소리든 큰소리건 작은 소리건 기계를 통해 나오는 음악에 너무나 익숙해져 이 사실을 자각도 못하던 때 오페라를 처음 봤다. 기계를 아예 통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 청량한 소리에 달팽이관이 사르르 녹는 듯 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3층에서 본 걸로 기억하는데 이 공간을 다 채울 정도로의 성량이면 옆에선 어떨까. 남주 여주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노래를 하는 장면에서는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과 함께. 그 후로 오페라뿐만 아니라 발레, 오케스트라 등 귀를 편하게 해주는 공연들을 주로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오페라를 가장 좋아한다.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동시에 충족되면서 속을 뻥 뚫어주는 듯한 성량 때문에. 뉴욕에 와서도 오페라 사랑은 계속되었다. 집이 정리가 안 된 채로 간 아트페어 이후, 집이 정리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첫 행선지를 링컨센터로 잡았으니. 한국에서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것 중 하나이다. 게다가 세계 4대 오페라 극장으로 유명한 링컨센터라니! 앞으로 1년 동안의 공연 스케줄이 다 나와 있어 정리해놓은 행복한 시간 이후, 바로 그 다음날 시즌 마지막 공연을 하는 ‘나비부인’을 보러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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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가장 좋은 점은 러시티켓을 당일에 살 수 있는 것이다. 학생할인을 받는 방법과 1층 오케스트라석 맨 뒤의 스탠딩 룸을 이용하는 것. 원래 1층 오케스트라석 가격은 공연마다 다르지만 보통 30-40만 원 정도이다, 그 이상 하는 공연도 물론 있다. 나는 오케스트라 스탠딩 석을 공연 당일 10시 1분에 전화해서 택스 포함 38불에 맨 앞자리를 구입했다. 보통은 20불정도인데 시즌 마지막 공연이라 그런지 라인업이 좋아서 그런지 그렇게 청구됐다. 3막으로 긴 공연이라 3시간 30분정도를 인터미션 빼고 꼬박 서있었지만 1시간도 채 안된 듯, 시간가는 줄 모르는 명연이었다. 공연을 감상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2층 좌석에 위쪽 시야가 가려, 웅장한 공연장 전체를 느낄 수 없던 게 아쉬웠지만 말이다. 1부 인터미션 이후에는 눈치껏 빈자리에 앉아도 되지만 처음이라 풋풋하게 체력을 뽐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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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마지막의 핀커톤 부부가
아이를 데리러 찾아온 장면


가장 놀랐던 점은 환상적인 무대 장식이다. 15년도부터 계속되어왔던 것이라고는 믿지 못 할 만큼 세련되었다. 처음 여주가 등장할 때 기모노 배 부분의 빨갛고 긴 천을 길게 풀어헤치고 등장하는데, 천장의 거울이 끝없이 늘어나는 천의 전체를 보여주면서 더 웅장하게 해주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보통 계단으로 되어있는 무대가 아닌 경사를 주어 언덕으로 표현했고, 본래의 무대 위에 또 다른 무대를 설치해 기울임으로써 전체적으로 관객에게 쏟아지는 듯 한 효과를 받았다, 언덕을 통해 끊어지는 느낌이 나지 않게 하려는 것도 있겠지만 배우들의 충분한 기량 발휘를 위한 배려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살면서 조명의 색이 그렇게 다양한 것은 실제로 처음 봤다. 한글 문서에서 글자색 선택할 때 팔레트나 스펙트럼의 기능이 실제 하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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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에서 처음엔 가수들의 목이 덜 풀려서 바리톤만 잘 들렸다. 풀리고 난 후에는 모든 가수들이 훌륭했지만 특히 소프라노 Ermonela Jaho의 노련함에 반했다. 그렇게 높은 고음을 긴 공연 내내 폭주하듯 쏟아내는 데 흔들림 없이 깔끔한 음처리를 해냈다. 마지막 공연이라 그런지 컨디션이 좋은 것이 느껴져 아래의 영상보다 더 환상적인 공연을 선물해주었다.

이제껏 본 공연들에서는 오케스트라 소리가 더 웅장하게 잘 들렸다. 하지만 이번엔 그걸 뛰어넘어 배우들의 소리가 귀에 바로 꽂혔다. 소리가 공연장의 빈 공간을 한 번 휘리릭 둘러서 오는 게 아니라 옆에서 바로 말하는 듯 한 느낌이었다. 1층이 처음이라 신기한 게 많은 때이지만 더욱이 귀 호강을 해서 감탄의 연속이었다.
 
테너이자 남주 핀커톤과 하녀 스즈키의 찰진 연기가 보는 데에 흥미를 더했다. 1막 마지막의 핀커톤과 여주 초초산의 2중창은 사랑에 빠질 때의 설레는 기분을 충분히 들게 했다. 이때의 무대도 한 몫을 더했는데, 일본 특유의 등으로 길을 만들었고 그 사이를 떠돌며 노래로 사랑에 빠진 것을 표현하는 장면이었다. 여주의 손짓에 따라 스무스하게 움직이는 것이, 나비 한 마리가 그 둘 주변을 살랑거리는 듯한 효과를 냈다.

1막 마지막 부분의 절정에는 벚꽃 모양의 잘라진 것들이 흘러내리는데, 너무 예쁘도록 잔잔하게 내리는 강약조절과 실제 벚꽃 모양과 거의 똑같은 디테일에 그 안에 들어가 벚꽃 세례를 맞고 있는 듯 출구 없이 빠져들었다. 부스러지는 벚꽃들 뒤에는 짜장면 집 입구에 주렴처럼 조금 짙은 색의 벚꽃 발(綍)이 빈 곳을 채워주는 데 무대가 너무 예뻐서 넋이 나갔다. 그 때문에 노래를 놓칠 뻔 했지만 귀에 꽂히는 소프라노의 소리에 빠져들기를 반복했다. 화려한 기모노의 색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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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이 끝나고 화장실 앞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기모노를 입고 온 일본인 관객들도 있었다. 격식 있는 드레스, 캐주얼, 섹시한 드레스 등 다양한 차림의 복장이었지만 기모노가 등장해 쉬는 틈에도 더 재밌었다.

2막이야 말로 시작과 동시에 끝날 때부터 소프라노의 아리아가 ‘폭주’했다. 그 얇은 몸에서 폭발적 성량과 지치지 않는 체력에 다시금 감탄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리가 너무 얇아 바리톤에 특화된 내 귀에는 약간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 성량과 음 표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듣는 이의 감정을 건드려 미국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핀커톤을 보며 포기하라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초초산의 화나고 처절한 노래에 덩달아 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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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의 가장 피날레는 마지막 허밍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아이와 하녀 스즈키와 함께 무릎을 꿇고 항구를 보고 기다리며 눈을 지그시 감은 소프라노의 모습과 잘 어울려 소름이 돋았다. 배가 오지 않아 잔잔한 파도를 표현한 듯 초초산의 뒤로 오버랩 되면서 나도 같이 기다리는 듯 차분해졌다.

공연은 이탈리아어로 진행됐지만 좌석마다 영어번역 대본이 적절한 조도로 개인 화면에 나왔다. 이탈리아어가 원래 그렇게 아름다운 것인지 극본가가 그렇게 쓴 것인지, 내 모든 눈물을 지구에 받치겠다는 등 인상적인 구절도 있었다. 그 덕에 같이 기다리는 입장도 되어본 것 같다. 관객을 들었다 놨다하는 소프라노의 무대 장악력이 가히 세계 일타라 할 수 있겠다. 공연 중간에 일본 군가와 미국 국가도 살짝 들렸다. 조명으로 일장기를 표현 한 것도 그렇고 정말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완벽한 공연이었다.

 
“Un bel dì(어느 개인 날)” - Ermonela Jaho
    
 
마지막 3막의 시작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그러다 미국에서 초초산과의 아이를 데리러온 핀커톤 부부를 마주하게 되는데, 혼란에 빠진 초초산은 아이를 주기로 하고 마침내 자살을 택한다. 이 죽음을 택하는 장면의 연출이 또 하나의 볼거리라고 하는데, 그 끈을 무대 사선으로 풀어헤침으로써 웅장하게 표현해냈다. 시작할 때 피를 표현한 초초산의 끈을 길게 늘어뜨리며 오묘한 표정으로 잔잔히 등장하던 모습과 잘 어울렸다. 이 사실을 본 핀커톤은 끝내 도망쳐 마지막까지도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자정에 가까워진 시간에 끝나서 커튼콜은 엄청난 환호와 함께 짧고 굵게 끝났다. 핀커톤 때에는 박수는 치지만 야유와 함께. 아침드라마의 악역배우가 시장가서 뭇매를 맡는 듯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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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을 벗어난 첫 공연이라 더욱더 크게 다가왔겠지만 흠잡을 데가 없는 훌륭한 공연이었다. 세계 어디를 여행가더라도 미술관은 꼭 보자는 주의였는데 이제는 공연장도 추가해야겠다. 앞으로도 1년 동안 수많은 오페라를 볼 텐데 이 공연을 기점으로 좌석에 대한 노련함도 키워나갈 것이고 오페라 배우들도 차츰 알아갈 것이다. 매번 좌석을 꽉 채우는 엄청난 시장의 규모가 부러울 따름이고, 소프라노 배우처럼 알바니아 출신의 배우가 뉴욕의 극장을 휘어잡는 그 경계 없는 가능성도 탐날 뿐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것도 전부가 아닌 뉴욕의 예술 현장을 더 열심히 들쑤시고 감동받고 다닐 것이다. 10년 전 인생에서 처음으로 산 뉴욕의 책으로 인해 여기까지 왔듯이 나름의 주문을 걸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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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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