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가 글이 될 때 [도서]

글 입력 2018.03.2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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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에 눈을 떠 
습관처럼 핸드폰 시계를 보았다.

일곱 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더 잘까 고민하다
무심코 영화 상영 시간표를 확인했다.

여덟 시 반에 보고 싶었던
영화 하나가 있었다.
일어나 세수를 하고,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왜 영화관에 가는가?


나는 목이 말라서 영화관에 간다. 암전된 공간에 가만히 앉아 영화를 기다리는 시간, 스크린 속 배우의 몸짓과 음악에 몰입하는 시간, ‘좋은’영화를 만났을 때 희열과 감동을 맛보는 시간, 그 시간들에 나는 자주 목이 마르다. 그 시간은 영화관에 가야만 허락되는, 조금 과장해서 전지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휴일 아침 조조영화를 떠올리는 일은 이제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나는 영화관에 간다.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가장 살아 있다고, 잠시 더 나은 인간이 된다고 느꼈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p.11



경험하는 영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깜깜한 방에서 거대한 스크린을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만든다는 점일 것이다. 흔히 '스펙타클'한 영화는 관객을 사로잡는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사실 전술한 영화관 환경은 이미 영화 장르에 상관없이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물리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타블렛 등 우리는 다양한 스마트 기기로 영화를 볼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만큼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단순한 사실, 깜깜하고 거대한 공간에서 나를 압도할 듯한 스크린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사실 때문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경험이 된다.

경험의 뜻은 '자신이 실제로 겪어본 일'이라는 뜻이다. 내 얼굴보다도 더 큰 배우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그의 입이 말하는 대사를 머릿속에 옮기다 보면 나는 그 배우가 된다. 같은 이치로 배우가 겪는 일이 곧 내가 겪는 일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관에서 영화라는 일을 실제로 겪어본다." 처음과 끝이 분명해서 때로는 허탈하기도 한 그 경험은 매력적이다.


"바깥 세계와 나를 단절하고 어둠 속에 숨죽이고 있으면
"빛이 있으라!"라는 신의 명이 떨어진 듯,
영사실 창에서 백광이 쏟아지고 하나의 생애가 시작된다.
그것은 나의 삶이 아니지만 앞에 썼듯 딱히 나의 삶이 아닌 것도 아니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p.12



울게 하소서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울기 위해서다. 내 안에는 많은 울음이 있는데, 그 울음을 적시에 꺼내 달래주지 않으면 병이 난다. 내가 아플 수도 있고, 괜한 자기 방어로 다른 사람을 찌를 수도 있기에 나에게 울음은 잠재적 위험이다. 커다란 스크린에 두어 시간 몰입하면 어쩐지 나는 자유롭게 울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내게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울 뿐이기에 그 울음이 위로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영화관이 어둠에 잠겨
수천만 번째 태초의 빛이 스크린에 떨어지길 숨죽여 기다릴 때마다
나는 다시 한 번 살아보기를 결심하고 있다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p.11



내가 들은 '말'


위로대신 영화는 나에게 '말'을 주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닌데도, 영화를 보는 내내 하나의 주제가 내 머릿속을 떠도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횟수를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흔하진 않았지만 그 느낌은 꽤 강렬했다. 내가 그 주제를 잡으려 한 것이 아니라 마치 그 주제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생각할 수 있는 만큼의 말을 늘어놓고, 정리하고 또 정리해서 리뷰로 작성하곤 했다.

이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영화는 영화로만 멈춰있지 않고 '말'이 되고 '글'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주시하지 않으면 영화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본 것을 적어두지 않으면 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는 두려움은
2010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씨네21>에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를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한 동력이었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p.10




영화가 글이 될 때


이렇게 영화가 글이 되는 경험에 매료되었을 때 읽게 된 두 책이 있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어크로스 출판 / 김혜리 저)와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출판 / 신형철 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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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책은 닮은 듯 다르다. 두 책 모두 평론가의 시각으로 영화를 다뤘다는 점은 같다.

차이점은 김혜리 저자는 영화 하나에 대한 한 편의 글을 썼지만(한 편의 글에 다양한 영화가 시시로 등장한다), 신형철 저자는 주제에 따라 영화 두 개 이상을 비교 분석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을 때는 펜을 들고 집중해 읽어야 했고, 그만큼 얻는 것이 많았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를 볼 때는 커피를 머금고 찬찬히 보는 맛이 있었다.


*


책을 읽으며 다시 글에서 영화를 떠올리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영화가 글이 되고 글이 다시 영화로 환원되는 이 경험은 어쩌면 영화를 사랑하고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시간일 것이다. 이 시간 동안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이 시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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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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