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틸 플라워 - 극단화된 절망과 아주 작은 희망 [영화]

글 입력 2018.03.24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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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다. '스틸 플라워'를 보면서, 그리고 보고 난 후에 계속 느껴지는 감정이다. 핸드폰도 사는 집도 없는 20대 초반의 여자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극도로 냉담하고 잔혹한 곳이다. 도저히 한 번에 볼 수 없어서 자꾸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이 불편함은 너무나도 극단적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주 약간의 희망과 굳은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오늘 소개할 영화 '스틸 플라워'는 떠돌이 '하담'의 삶을 있는 그대로 러프하게 보여주며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삶도 이와 같지는 않은가?"



1.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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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이 혼자 큰 캐리어와 가방 하나를 매고 길거리를 헤매는 22세의 '하담'. 잠은 쓰레기장 같은 빈 집에서 해결하고 끼니는 남이 먹다 남긴 빈대떡으로 해결한다. 돈이 없어 알바를 구하려고 하지만 무시를 당하거나 사기를 당하는 등 절망적인 나날이 계속된다. 그러다 하담은 우연히 탭댄스 학원 근처에서 탭댄스의 경쾌한 발소리를 듣고 홀린 듯이 학원 안으로 들어가 수업을 구경하게 된다. 그 때부터 그녀는 길거리에서, 빈 집에서 탭댄스를 흉내 내며 삶에 자그마한 희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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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횟집에서 잠시 일하게 되는데 주인은 계속 돈을 주는 것을 미루고 주인의 애인은 하담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돈을 달라는 하담의 외침에는 차가운 반응만이 돌아올 뿐이다. 화가 난 하담은 횟집의 물고기를 훔쳐 바다로 돌려보내며 화풀이를 한다. 그러다 전에 한 번 얻어먹은 적이 있는 빈대떡 집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그녀의 삶이 그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번 돈으로 학원의 탭댄스 화를 하나 가져가고 계속 그 신발을 신는 하담은 행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전에 일했던 횟집 사장님의 애인에게 몸 파는 여자라고 얻어 맞아 끌려나간다. 절망의 끝에 다다른 순간, 하담은 폐선착장으로 가 파도를 맞으며 탭댄스를 추고 영화는 끝이 난다.



2. 끝없는 절망에도... 나는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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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호흡은 하담의 호흡과 같다. 느리게 있는 그대로를 담는다. 그래서 그 고통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횟집 사장의 애인에게 부당하게 얻어 맞을 때의 억울함과 알바를 구하는 가게에 들어가기 전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립밤을 바르며 그녀 나름의 준비를 할 때의 안쓰러움은 흔들리는 카메라에 전부 포착된다. 관객의 입장에서 하담과 자신을 동일시 하게 되는 고통스러운 1시간 반이 계속된다.

작중 하담은 대사가 별로 없다. 그녀는 그녀의 감정과 의사 전달 등 많은 것을 그저 행동으로 보여준다. 가령 세탁소 아저씨가 일이 힘들 거라고 간접적으로 그녀를 거부할 때 하람은 무거운 통을 들어 보이며 자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식집 알바를 구하려고 할 때, 주소와 번호를 쓰라고 했을 때의 막막함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횟집에서 도마를 닦을 때, 겨우 얻은 일을 뺏길까 두려워 횟집 사장 애인이 집에 돌아가라고 해도 악착같이 도마를 닦는다.

그런 하담이 내뱉는 대사 하나 하나는 뭉쳐있던 감정이 단숨에 나오는 것처럼 매우 강렬하다. 일식집 사장이 손님 대응 인삿말로 '이랏샤이마세'를 시켰을 때, 하담은 쫓겨날 때까지 악에 받쳐서 '이랏샤이마세'를 계속 외친다. 전단지 아줌마가 사기를 치고 돈을 주지 않았을 때 끝까지 찾아가 '일 했잖아요. 돈 주세요.' 라며 분노한다. 그리고 횟집 사장 애인이 빈대떡 집에서 일하는 그녀를 괴롭힐 때 그녀는 바닥에 내팽겨진 채로 '일하고 싶어요.'라고 마지막 절규를 한다.

이 모든 행동과 말에서 그녀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나는 그래도 살고 싶어요."



3. 우리도 '하담'처럼 Steel Flower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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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절망의 최극단을 보여준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절망을 가득 모아 농축된 상태 그대를 보여주는 듯해서 감독이 관객을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로 만들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 하담의 삶은 그 정의 그대로 '절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의 극대화를 조금 잠재워놓고 다시 보면 하담의 삶에서 우리의 삶이 보인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일을 못한다고 모욕적인 언행을 들었을 때, 취업 실패의 횟수를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일 때, 혹은 학교에서 이유 없이 따돌림을 당하는 날이 지속될 때, 우리는 약해지고 자신의 무능함에 낙망하고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는다.

하지만 이런 우리에게도 자그마한 행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하담에게는 그것이 '탭 댄스'였다. 본능적으로 그녀의 마음을 뛰게 하는 경쾌한 구두 소리는 그녀가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이유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그것이 음악이다. 살면서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을 때, 절망의 늪에서 음악은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음악으로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것이 내가 땅만 보지 않고 고개를 들어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은 너무나도 살기 힘들고 각박하다. 오죽하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대견한 일이라고까지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절망 가운데 아주 작은 희망을 가지고 버티고 있는 대견한 우리들 역시 스틸 플라워의 하담처럼 강철로 만들어진 꽃(Steel Flower)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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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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