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키친테이블라이팅 계간문예지 영향력 - 여덟번째 [도서]

글 입력 2018.03.15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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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후원(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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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테이블라이팅이란,
전업작가가 아닌 사람이
일과를 마치고 그 언제라도,
부엌식탁에서 그 어디에서라도 앉아
써내려간 글을 말합니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영향력’의 소개 중 한 부분이다. 살면서 처음 읽어본 문예지다. 방학이 되고 어쩌다 얻어버린 돈을 어떻게 써버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냅다 들어간 텀블벅에서, 성공할 것 같던 못할 것 같던 상관없이 다 후원을 눌러대다가, 소개 초반에 나오는 괴테의 이야기를 읽다가 아무 생각 없이 후원해버린 문예지다. 그래서 이런 문예지라는 것은 책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두께. 코트 주머니에 들어가서 가방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 적혀있는 글들은 그 언제라도, 그 어디에서라도 적었다 하기에는 너무 강력해서 버티기 위해서는 애를 좀 먹이는 글들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들이 움츠리고 있었다. 마치 내 침대 위에 몬스터가 앉아 날 바라보는, 그리고 나는 그 옆 책상에 앉아 아무 일 없는 듯 책을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향력』을 만드는 저희가
가장 깊이 바라는 저희의 '영향력'이 바로,

『영향력』을 읽은 분들이
시와 소설을, 산문을, 키친테이블라이팅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구나. 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글을 쓰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니까. 글을 쓰는 건 맹수를 조련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 언제든지 그 어디서나 글을 쓰려고 준비를 하면, 샤프를 들거나 자판을 두들기는 내 손에 맹수 하나가 있을 것이다. 생각이라는 그 맹수를 어르고 달래서 종이나 모니터에 집어넣는 일이 글쓰기가 아닐까. 그래서 글을 적다가도 어르고 달래는 게 너무 힘든 일이라서, 오히려 내 손이 다 먹힐 것만 같은 두려움에, 그냥 글을 접어버리면 아무 일 없는 듯 사라질 맹수라는 사실에 글쓰기를 멀리해 버린다. 그럼에도 용기 있는 누군가는 일상의 틈에 맹수를 어르고 달랬고, 그래서 이 책을 열었을 때 맹수들을 보고, 침대에 몬스터가 앉아있었으리라.

   
“편의점의 가장 위대한 점은 람보르기니 타고 온 소비자와 버스 타고 온자와 걸어온 소비자 모두 똑같은 할인카드를 내밀게 한다는 것이다.”

산토끼의 바보 - ‘편의점의 바보’ 中
 

 하지만 할인카드가 안 보일 때, 뒤에 몇 명이 기다리든 아랑곳하지 않고 점원에게 “잠시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자만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용기가 없는 사람은 그대로 곧이곧게 지불하는 법이다. 빈 종이도 편의점같이 위대하다. 누구든 빈 종이 앞에서는 멈출 수밖에 없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미리 생각했을지라도 텅 비어있는 종이는 강하다. 빈 종이에 글을 쓴다는 것은 비어있음에 빨려 들어가는 정신을 붙잡으며 한 마리 맹수를 어르고 달래는 일. 그러기에 빈 종이 앞에서는 람보르기니든 지하철이든, 장학금을 받았던 학사경고를 받았던 다 평등하다. 그러기에 빈 종이는 편의점처럼 위대하고, 빈 종이는 편의점처럼 용기 있는 사람에게만 적힘을 허락한다.
 
 그렇게, 위대한 보통 사람들에게 허락된 빈 종이의 모습이, “영향력” 안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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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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