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 Master’s Voice

글 입력 2014.02.0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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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술가가 키우던 개가 있었다. 그 개는 미술가를 사랑했고, 미술가 역시 그 개를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가가 그만 죽고 말았다. 장례식을 치르고 한참이 지나도, 개는 미술가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마냥 주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가의 동생이 형의 목소리가 담긴 레코드를 축음기에 올렸다. 그러자 마술처럼 공간 가득히 죽은 미술가의 따뜻한 음성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개는 축음기의 소리 나오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미술가의 목소리가 흐르는 곳을 미동도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슬프면서도 따뜻한 풍경을 착안해 만들어진 브랜드가 바로 그 유명한 HMV, His Master’s Voice이다.


위의 이야기가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따뜻한 이야기는 마케팅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축음기라는 차가운 기계에 인간과 동물의 사랑이야기를 덧씌움으로써 이 기계는 더 이상 낯선 고철덩어리가 아닌, 사람과 교류하는 따뜻한 도구가 된 것이다. 요즘 유명한 핸드폰의 광고를 보아도 이러한 방법이 꽤나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핸드폰의 카메라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애플의 아이폰 광고, 사랑하는 이와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언제든 화상 전화로 쉽게 닿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삼성의 핸드폰 광고는 기계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지를 강조한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닿아있다. 누군가에게 문자가 오고, 누군가와 채팅을 하고, 연락이 끊어진 누군가의 홈페이지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아예 모르는 사람에 대해 검색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사랑’은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것 중 하나이다. 사랑 이야기가 주는 따뜻함은 아마도 요즘의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테다.


옛날과 같은 농도 짙은 사랑과 순수한 열정이 더 이상 찾기 힘들어진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에 핸드폰이나 인터넷이 없었다는 건 정말 다행이다. 만약 문자가 있었더라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는 얼마나 싱겁게 끝났을까. 문자나 트위터, 미니홈피가 없던 시절에 우리는 짝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녀를 한 번 만나기 위해 몇 십 통의 편지가 오고 가기도 했다.


축음기에서 죽은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가만히 귀 기울이던 개가, 만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산책과 사냥 등 온갖 자신의 할 일들을 하면서 주인의 목소리를 들었더라면 감동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할애하여 그 자리에서 가만히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에 집중했다는 것에 사람들은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느리고 불편한 것을 감수할 때 따뜻함은 배가 된다. 시간을 금처럼 여기는 사회이지만, 가끔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나의 소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선물하고 싶다. 천천히 정성 들여 다가갈 때, 그들과 나누는 교감은 더 따뜻해질 것이다. 글 · 신연우





출처 - 음악저널






[최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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