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태치먼트≫ 관심을 갈망하는 자들의 처절한 사투 [영화]

글 입력 2018.03.1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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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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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쳇말로, ‘관심종자’라는 말이 있다.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거나 그러한 행위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신조어이다. 주로 긍정적인 의미의 관심과 지속적인 애정보다는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이목의 집중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조롱할 때 사용한다.

 우스갯소리로 가볍게 쓰이는 단어지만 이 단어가 불현듯 사회에 등장하여 이젠 인터넷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널리 쓰이게 된 배경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관심받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 인간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특질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아마 모든 사람은 관심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관심을 요구하는 자를 ‘병자’로 특정하며 하대하는 문화를 공유하고 관심을 얻고자 하는 행위를 창피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렇게 사회는 무관심으로 물들기 시작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관심에조차 갈증을 느끼며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섬에 자신을 가두게 된 것이다.

 영화 <디태치먼트>는 그렇게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점철된 사회와 다양한 방식으로 관심을 갈망하고 무관심과 싸우는 인물들을 적나라하게 비추며 유대와 관심의 가치를 일깨운다.


Detachment ; 무심함, 거리를 둠


 기간제 교사 헨리는 문제아가 가득하여 폐교 직전에 이른 학교에 배치된다. 그 속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과 그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인물들을 만나게 되면서 헨리를 포함한 인물들에게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 줄거리 전부이다. 헨리의 인터뷰 장면이 사이사이에 삽입된 이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벌어지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문제아 학생이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진실한 교제 속에서 마음을 열고 변화를 맞는 이야기는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독특한 이유는 학생이 아닌 선생의 상처와 극복 과정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는 데 있다. 상황에 따른 헨리의 심리를 전달하는 인터뷰 장면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이야기가 헨리의 어렸을 적 상처와 그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또한, 그런 소재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인간적인 감동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우울하고 염세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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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무관심이 만들어 낸 상처로 잠식된 헨리가 다양한 유형의 무관심과 그것이 발현된 인간상을 마주하고 그들과 접변하는 과정을 그린다. 중심인물로는 헨리의 할아버지, 거리에서 만난 10대 소녀 ‘에리카’, 학생 ‘메레디트’를 꼽을 수 있겠다. 헨리의 할아버지는 무관심을 온몸으로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헨리의 어머니이기도 한 죽은 딸을 그리워하며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유일한 사람인 헨리가 곁을 떠날까 봐 불안해한다. 무관심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길거리에서 방황하다 헨리의 도움 속에 구제를 얻게 된 ‘에리카’는 헨리의 관심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열고 상처를 극복한, 가장 이상향에 가까운 인물이다. 반면, 학생 ‘메레디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무관심과 학대 속에서 상처를 키우다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헨리를 흠모하게 되고, 그에게 관심을 갈구하다가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택한다. 인물의 사진을 찍고 그것을 이용해 미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취미인 메레디트는 인간에 대해 끝없이 관심을 가지며 더 나아가 자신에 대한 관심을 갈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무관심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비극적인 서사이다.


"우린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어요.
우린 모두 다루어야 할 문제를 가지고 있어요."

- 영화 속 '헨리'의 대사


 세 명의 인물의 공통점은, 헨리의 관심으로 인해 고립을 면했다는 것이다. 에리카와 메레디트의 경우엔 어느 정도 긍정적인 변화를 맞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헨리 자신은 의존할 사람도 없이 시종 고립되어 있다. 지워지지도 않는 유년기의 상처에 끝없이 무뎌지면서 자신이 무엇이 결핍되었는지, 어떤 관심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서조차 무심하게 된 것이다. 너무나 외롭지만, 또 너무나 흔한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한다. 비행 청소년, 왕따, 가정폭력 피해자, 독거노인…. 이들의 외로움은 매체를 통해 자주 다루어지며 더욱 각별한 관심 혹은 동정의 대상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그래서 헨리의 외로움이 더욱 슬프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헨리는 능력 있고, 부족함 없고, 성숙하고, 모범이 될 만한 어른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의 외로움을 다독여주지 않는다. 그가 어루만진 상처들과 버금가는 그것들을 본인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음의 벽을 켜켜이 쌓고 자기 자신에게 무관심을 지속한다.
 
 이 영화의 문제의식은 아동에서 어른들로, 결국엔 인간 전체에게로 확장된다.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아이들은 다시 어른들에게 상처를 주고, 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 상처를 되돌려준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과 연대이다. 영화에서 헨리가 말하듯, 모든 이들은 ‘다루어질 가치’가 있는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마음 한 곳에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아무렇지 않은 척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헨리'들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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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염세적인 영화는 우리는 모두 실패했다는 헨리의 고백과 함께 폐허가 된 교실을 비추며 끝난다. 뚝뚝 끊어진 유대 가운데서 서로에 대한 관심 없이 텅 비어버린 사회를 상징하는 것 아닐까. ‘관심종자’라는 말의 유행은 개인들의 외로움에 무심해 하고 오히려 관심을 터부시하는 사회의 시류를 반영한다. ‘관심종자’들이 건강하지 못한 관심을 갈망하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손 내밀어주며 따뜻한 관심을 건네는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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