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존재가 곧 위대한 유산, 제 69회 서울오라토리오 정기 연주회 ‘베토벤 장엄미사’

글 입력 2018.03.13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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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서울오라토리오 제 69회 정기연주회
'베토벤 장엄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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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하나의 꽃(花)이다. 이미 오래된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다 한들, 한 시대를 풍미한 문화는 시대의 부름에 맞춰 계속해서 피어난다. 동시대의 물음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때때로 고전이란 이름으로 문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하나의 유산이 되어 시대를 보는 혜안을 가져다준다. 그렇기에 문화를 이어나가고 그 명맥을 보존하는 것은 하나의 유산을 만드는 일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는 행위로 해석가능하다.
 
2018년은 유럽문화유산의 해다. 이는 유럽연합(EU)에서 유럽의 역사와 가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정체성 강화를 위해 만든 기념비적인 해로 과거의 유산을 통해서 앞으로의 문화와 새로이 만들어나갈 유산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토론의 장으로도 다가온다. 더욱이 유럽 문화권이 아닌 나라들에 있어서도 유럽의 지성과 예술에 대해서 보다 친숙하고 다양하게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해로 여겨진다. 결론적으로 문화유산이란 단순히 유럽의 경우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문화유산으로부터 타 문화권에 대한 인식과 상호문화적인 대화의 초석이 다져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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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인 서울오라토리오의 정기연주회 ‘베토벤 장엄미사’도 그러한 맥락에서 유럽문화유산을 마주하고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공연으로 다가왔다. 오스트리아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세계적인 작곡가 루드비히 판 베토벤이 남긴 위대한 유산 ‘장엄미사’를 통해서 관객들과 만남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종교를 넘어, 문화를 넘어, 나아가 몇 세기를 넘어 마주하는 베토벤의 음악적 숭고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그 자체로 이미 위대한 유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작품은 오늘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인류가 남기는 문화유산이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게끔 만든다. 더욱이 ‘위대한 유산 시리즈’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인류가 남긴 위대한 곡들을 선보이는 서울오라토리오의 공연을 통해서 베토벤을 마주하니 숭고함이 배가 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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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력을 완전히 잃은 후 극도로 악화된 건강상태와, 경제적 궁핍, 국제 정세의 혼란 속에서 탄생한 베토벤의 장엄미사다. 그렇기에 처음 장엄미사를 보고서는 굉장히 무겁고 우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죽음이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위대한 유산 시리즈를 통해 마주한 장엄미사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전혀 다른 뜻밖의 악상으로 다가왔다. 우울과 무기력으로 뒤덮인 것이 아니라, 숭고와 존경 그 자체로 황홀에 이르는 장엄미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베토벤은 장엄미사를 작곡하면서 ‘예술을 위한 희생’이란 사명감으로 자신의 불행한 삶을 승화시켰다고 한다. 철저히 내면에 이르는 길을 통해서, 자신의 고통을 이겨가며 최상의 작품을 만들며 신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 것이다. 인류가 남겨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의 극치란 이것임을 밝히는 장엄미사다. 곡은 혼성 4부의 독창과 합창 등 방대한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통해 신 앞에 한걸음 더 나아가는 숭고의 과정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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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고 고결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만 그 한가지만으로도
불행을 견디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증명하고 싶습니다.

베토벤
1818.02.01.
빈 시청으로 보낸 편지에서


장엄미사를 쓰겠노라 다짐한 순간부터 베토벤은 숭고한 마음가짐으로 신 앞에 다가서는 구도자 역할을 자처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훌륭하고 고결함만이 진심어린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게 하리라는 그가 남긴 악보의 메모가 그의 굳은 다짐을 대변하는 듯하다. 혼란과 암울만이 반겨주는 삶의 길 앞에 섰던 베토벤은 바닥을 보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한 줄기 빛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고 신의 부름에 답하려 했다.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몸소 실천한 베토벤의 삶이었기에 오늘날 그의 작품이 인류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 되어 계속해서 해석되고 보존되고 있다. 인류애란 무엇인가, 인간의 가능성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 베토벤은 불가능이라 일컬어지는 험난한 도전의 길을 헤치고 나아가 마침내 장엄미사라는 걸작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의 도전과 숭고함을 받드는 과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이 마주하고 분명 되새겨야 할 시대의 정신이자 가치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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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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